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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호 Dec 21. 2019

두 개의 섬 7화

오르골과 음악에 대하여

오르골과 음악에 대하여





운하 옆으로 난 길가는 각종 군것질거리들이 팔려나가는 활기찬 상점가가 있었다. 겨울의 섬의 특산품인 거대한 새우와 게를 직화로 구워주는 상점이 있는가 하면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아기자기한 단 것들도 다양했다. 겨울의 섬은 단 음식들을 귀엽고 예쁘게 만들기로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에 그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경험 삼아 몇 가지를 집어먹어 보았고, 확실히 그의 나라와는 다른 맛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 활기찬 상점가의 끝에는 고풍스럽고 오래된 사거리와, 그 사거리를 내려다보는 엄숙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오래된 동화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이 웅장한 건물은 마을을 가득 채우는 음악의 근원지이기도 했다. 그것은 전통적인 현악기나 금관악기의 소리는 아니었지만, 마치 바람이 작은 종을 두드리는 것 같은 아련하고 애틋한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채우고 마을에 온기를 덧대었다.


그 유명한 오르골당을 향해 걸으며 그는 음악에 대해서 생각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긴 유사 이래로 사람의 가장 큰 벗은 음악이었다. 물질적 존재로 스스로를 달래던 형이아학의 존재에서 인간은 음악을 만남으로서 비로소 형이상학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형체를 갖추지 못한 모든 것들 사이에서 인간다움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는 거리에서 춤을 추듯 걸었다. 어렸을 적 음악에 취했을 때처럼 흥겨움이 마음속에서 저절로 돋아났다. 때론 어깨가 들썩이고 때론 가련한 아련함에 손가락이 저리듯 꿈틀대었다. 춤 같은 몸짓이 그의 깊은 곳에서부터 비롯되어 숨겨져 있던 감정들을 몸의 표면 위로 드러내었다. 그 순간 그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설령 그에 대해서 잘 모를지라도 그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의 흥겨움은 곧 길과 사람을 타고 번져나갔다. 음악도 감정도 전염성이 있다는 점에선 인간을 숙주로 삼을 수 있었다. 깊은 곳에 내재된 기분을 꺼내는 것은 타인이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분을 받아 들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동조하고, 서로 연결될 수 있었다.


문득, 그에겐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음악을 듣는 것처럼 간단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율의 조화에 기뻐하면 그 기쁨이 타인에게도 전해질 수 있었고, 결국 자신도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 그건 언어나 공동체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사람이 모두 함께 살게 해 준 원동력 중 하나였다. 듣고 동조하며, 보고, 이해하며, 느끼고 사랑하며, 사람은 함께 살았다. 표현되고 받아들여지는 것들의 연속성 속에서 사람은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그는 오르골당의 무거운 나무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그리곤 탄성을 내질렀다. 그곳에서는 작은 빛무리들이 음악을 따라 떠다녔다. 세공된 유리조각 사이로 온갖 반짝거림과 빛남이 모두 날개를 달고 비산하고 있었다. 수천 개의 음률 사이로 수만 개의 색채가 어우러졌다. 모두 다른 날개의 요정이 드높은 천장의 나뭇결을 추억처럼 희롱하고 있었다.


그는 첫사랑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심정으로 음악을 뒤적였다. 어쩌면 이곳에서 작은 기념품 하나쯤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곧 음악의 향연이 그를 지배했다.





8화에서 계속.


매주 수요일 토요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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