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구독해서 입기로 합니다
결혼식이나 회사 행사가 있을 때 나에게 유니폼 같은 투피스가 있다. 치마를 평소에 즐겨 입는 편은 아니고 회사에서도 갖춰 입을 일이 별로 없어서 정장 원피스랄게 거의 없다. 10여 년 전 친언니 결혼식에 필요해서 샀다가 지금은 결혼식 전용 유니폼이 되었다. 이것도 끽해야 1년에 (많아야) 1-2번 정도이다. 시간이 지나서 닳아가고는 있지만 색도 디자인도 무난해서 이만한 옷을 찾기가 어려울뿐더러, 적당해서 입을 날을 대기하며 옷장 한구석에 (말 그대로) 고이 모셔두고 있다.
재택 100%를 하면서는 더더욱 옷을 갖춰 입을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옷을 정리하고 사는 것을 간소화하는 자연스러운 절차를 밟게 되었다. 같은 옷을 돌려 입다 보니까 1년 전에도 5년 전에도 행사장에 붙박이 귀신같이(!) 같은 착장으로 사진이 남고 있다는 정도랄까.
어쩌다 한번 입을 옷은 더 사서 모셔두고 싶지는 않지만 새로운 옷을 입고 싶기도 하다. 친구가 Rent the Runway (RTR)이라는 옷 대여 서비스를 추천해 주었다. 옷도 구독해서 빌려 입을 수 있다니! 옷을 미리 입어볼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착장 리뷰를 보면서 몇 개 골라볼 수 있다. 평소에 입고 싶었던 옷을 찾아볼 수도 있고, 파티나 여행, 결혼식 등 상황에 따라 평소에 자주 입지 않는 옷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가격대는 한 달에 5벌 정도를 빌리는 데에 $89 정도. 옷은 새 옷은 아니고 드라이 클리닝한 상태로 온다. 가격대가 높은 구독 플랜에서는 소위 명품 브랜드 옷을 고를 수도 있다. 또 원하면 정가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옷을 구매할 수도 있다.
구독 종류에 따라서 한 달에 5개에서 10개 등 아이템 개수를 선택할 수도 있다. 새 옷은 아니더라도 드라이 클리닝해서 잘 세탁된 옷을 받아 볼 수 있고 옷 이외에도 선글라스나 가방 같은 액세서리도 대여가 가능했다.
이번 겨울에는 결혼식은 없지만 겨울 옷은 가격대도 높고 부피도 많이 차지하는지라 몇 벌 빌려 입기에 좋다. 원하는 옷을 고르면 3-4일 안에 재사용할 수 있는 가방에 옷이 고이 포장돼서 배송된다. 이번에는 스웨터와 가방을 포함해서 5개를 골랐고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입었다. 한 달이 끝날 때에는 가방에 다시 리턴 주소를 넣어서 택배 픽업을 신청하면 다음날 집에 가지러 온다.
유행에 잘 따르는 편도 아니고 패션에 일가견도 없지만 그래도 옷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기는 하다. 주로 어두운 옷을 깔끔하게 입자는 주의인데, 생각보다 밝은 옷도 잘 어울리는구나 알게 되었고, 너무 여성스러워 보여서 망설였던 트위드 재킷도 입기에 괜찮구나 싶기도 했다.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여도 의외로 다른 방안이 있을 수 있는가 보다. 그리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많은 위험을 지지 않더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을 부지런히 찾고 경험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