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먹계획은 성실하게

일주일 식단을 짜둡니다

by 스너푸킨

결혼 전에는 건강 & 살찌지 않으려고 먹는 것을 신경쓰는 편이었다. 약속이나 모임으로 외식이 잦은 편이어서 약속이 없는 날에는 오트밀 참치 미역국/죽 원툴로 돌리거나 단백질 쉐이크로 떼우기도 했더랬다.


결혼하고는 아침을 챙겨먹는 남편과 같이 먹는 것을 핑계삼아 후덕한 뱃살도 두둑하게 생기고 얼굴도 더더욱 댕글댕글해졌지만(사실 원래 댕그랗..), 같이 음식을 준비해서 나눠먹는게 식구(食口)라고 하지 않던가. 오빠는 가끔 먼저 먹으라고 하지만 나는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같이 먹고싶다.


누가 뭐라고 한 적은 없는데도 왠지 같은 음식을 계속 해서 돌려먹는 것에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어느샌가 새로운 메뉴를 찾고 준비하는게 점점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괜찮다고 하지만 항상 괜찮다고 하는 괜찮봇이기 때문에 어느날 비장하게 남편을 불러서 말했다.

나: "오빠가 해줘야될게 생겼어"

남편: "뭘 해야될까?"

나: "앞으로 오빠가 일주일 식단 짜는걸 해주면 좋겠어".


그 뒤로 일요일 저녁에는 남표니랑 냉장고 앞에 붙어있는 보드에 세상 신중하게 일주일 식단을 짠다. 집에 있는 야채나 고기를 조합하고 새로운 메뉴도 종종 넣는다. ‘오늘 뭐먹어야되지?’ 고민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식재료도 남김없이 사용하게 되어서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가끔 외식이나 포장해서 먹는 음식을 넣을 때에는 주방에서 둘다 해방이라며 더 신이 나기도 하고 말이다.


저속노화 식단, 지중해식 식단, 저탄고지 식단이며 그런 것이 좋다고 하는데 우리집은 그냥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먹는 집밥 식단이다. 시부모님 찬스로 해산물과 야채를 챙겨주시는 덕분에 고기, 해산물, 야채 등 가리지 않고 골고루. 우리집은 그냥 ‘골고루 식단’이다. 우리 부부가 잘 쓰는 표현으로 휘뚜루 마뚜루 있는 것으로 적당히 챙겨먹는 식단. 아침이나 주말은 조금 비워두어서 융통성 있게 그때그때 정하는 자리를 남겨두고 남은 것을 먹기도 하고, 스무디나 과일로 간단히 떼우기도 한다.

냉장고에 붙여놓은 화이트보드에 식단을 적는다

몇 달간 메뉴를 같이 정하면서 우리 둘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식습관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잘 알게되었다. 자주 먹는 홍합 파스타는 홍파, 목요일은 샤브샤브 데이가 되었다. 점심에 샤브샤브를 먹고 남은 육수로 저녁에 우동사리를 넣어서 먹는다. 몇번의 시도 후에 정착해서 이제는 간단히 ㅇㄷ으로 적고 있다. 오빠가 적을 때는 you know로 적는다. 그도 알고 나도 아는 그 메뉴라면서.


식단을 미리 정하기 시작하면서 의외로 생긴 좋은 점은 한 사람이 바빠지게 되더라도 정해진 메뉴를 미리 준비하기 시작하면 된 점이다. 다 소진한 식재료는 보드 한켠에 적어두고 장볼 때에 참고하고는 한다.


먹는 것에 꽤 진심인 우리는 플레이팅도 정성껏한다. 한국에 부모님께 안부도 전할겸 뭐먹고 사는지 보내드린다. 그럴싸하게 차려진 밥상을 보고 ‘찍어서 카톡에 남겨볼까봐’ 하면 남편은 어느샌가 보내놓고 ‘이렇게?‘ 하고 보여준다.

이제 낼 모레면 마흔쨜인데 여전히 밥은 잘 해먹고 사는지 남편이 집안일은 잘 도와주는지 궁금해하시는 부모님은 우리가 보내는 사진들을 꽤나 재밌어하신다. 가끔 우리는 ‘맛있게 해먹었네’ 같은 반응을 기대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단백질이 부족한건 아니냐며, 반찬이 너무 적은 것은 아닌지 피드백을 주시고는 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새럼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보내는 밥상 사진들. 잘먹으니까 걱정마요!

잘 챙겨먹고 체중이 자꾸 는다면서 배를 두드리는 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나: “오빠, 나 계속 이러다가 건강한 돼지가 되면 어떻게하지?”

(모태마름인 남편은 살찌는 걱정을 별로 해본적이 없다)

남편: “그래도 그냥 돼지인거보다는 좋잖아“

..응? 우리 남편 T였나? 동공이 흔들.


그런가? ㅎㅎ 그래- 우리 건강하게 재미있게, 지금처럼 잘 먹고 잘 살아보쉐 :)











keyword
작가의 이전글A/W 맞이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