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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Feb 18. 2021

뉴욕, 나의 뉴욕

뉴욕 여행기

이 맘 때 쯤 되니 생각나는 곳이 있다. 아니 어쩌면 일년 내내 그 추억으로 버텨냈으니 내 마음 속에 우뚝하게 세워진 곳일지도 모르겠다. 작년 가을, 사방을 헤메이며 갈피를 못 잡는 내게 주어진 것은 단 한 장의 항공권이었다. 목적지만 정해진 채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은 채로 당당하게 JFK 항공으로 향했다.



뉴욕. 말로만 들어보던 뉴욕이다. 비행기에서 온 갖 걱정들과 기대심을 안고서 드디어 도착했다. 마중 나온 이모는 몇년 만에 보았는데도 여전히 엉뚱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환하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뉴욕의 공기는 참으로 선선했다. 어디를 가는 지 그리 분주한 사람들은 제 갈길이 바빠서인지 이 낯선 곳이 그들에게는 익숙해서인지 여행객인 나를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내게 자유를 선물해주었다. 누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레 그 도시의 주민으로 스며들 수 있는 이 곳이 바로 뉴욕이구나.



자본으로 만들어진 도시.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으며 이 도시에 있는 자유마저 사낼 수 있는 도시. 어딜 가든 물값이 상당히 비싸게 느껴졌지만 그 마저도 이 곳에 있다는 축복으로 여겨졌다. 뉴요커도 아니고 돈 많은 백수로서 이 곳을 누비는 여행자는 더더욱 아니고 그저 이방인일뿐이지만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었다. 이방자로서 나는 이주민이었던 이모에게 많은 것을 여쭤보며 마치 이곳에 정착한 주민인 마냥 행세할 수도 있었다.



맨허튼은 가로와 세로의 정렬  아래 아주 정돈된 도시였다. 북적거림 속에 맺어진 정갈함은 길치인 내가 전혀 헤메지 않고 어디든 다다를 수 있도록 하였다. 한 없이 걸으면 타임스퀘어가 나오고 또 반대로 걸으면 쇼핑의 거리인 소호가 나왔다. 또 더 열심히 걸으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볼 수 있었고 센트럴 파크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낡은 운동화 한  채는 어디든 열려 있는 그 도심을 구석구석 누비며 서성이기에 충분했다. 이방인을 향해 길을 묻는 어리숙한 그 도시의 친절함마저도 뉴욕에 스며들기에 어렵지 않게 해 주었다.




언제나 분주한 도시. 그 누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도시. 이방인도 주민도 하나가 될 수 있는 포용의 도시. 그 곳에서 나는 자유를 배웠다. 이 곳에서는 내가 무엇을 해도 손가락질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모와 도심 어딘가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몇몇의 친구들. 그마저도 그 곳에서 터전을 가꾸느라 바쁘기에 나를 신경쓰고 나와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온전히 홀로 사방을 누리고 다닐 수 있었다. 누군가의 취향에 맞는 식사 메뉴를 선택하며 갈등할 시간도 없었으며 내가 무얼 했다고 물어보아도 유명한 명소 몇 군데만 이야기하면 그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 누구도 몰랐다. 물론 나는 모든 것들이 신선했기에 내가 구경하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다 재잘재잘 이야기해주고는 했다.

오늘은 길거리에서 흑인들의 춤을 봤어요. 진짜 재밌었다니까요. 오늘은 뮤지컬 위키드를 봤어요. 처음 보는 뮤지컬인데도 너무 매력적인 거에요. 또 오늘은 모마에 다녀왔어요. 휘트니보다 더 괜찮았어요. 블루보틀 커피는 너무 맛있는 것 같아요. 아 이모 드리려고 원두랑 쿠키도 사 왔어요.



혼자 그 넓은 곳들을 둘러보기에 3주라는 시간은 충분하면서도 부족했다. 온전한 해방감을 만끽하기에는 더 없이 감사한 시간이었지만 이 시간이 영원히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밤마다 자본의 세계는 바뀌는지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은 매일 다른 광고를 내비추고 세계의 전망을 일러주고는 했다. 밤이 되면 더더욱 빛나는 도시.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바뀌고 금세 그 변화에 아무렇지 않게 적응하는 도시. 내가 한 동안 머물렀다가 떠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갈 도시. 그 도시에서 나는 자유를 느끼면서 동시에 내가 얼마나 한 없이 작은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나의 작은 발걸음은 온 도시를 배회하기에는 불충분했고 나의 작은 몸뚱아리는 이 공간에 있으면 금세 체력이 바닥나 다음을 기약하며 이모네 집을 향하고는 했다. 내일 다시 보면 되지, 모레 다시 또 와서 둘러보면 되지 하는 마음은 밀리고 밀려 지금 이 곳까지 왔다. 여전히 나는 자유롭지만 뉴욕에 대한 향수로 둘러싸여 끝내 보지 못했던 거리의 끝자락을 회상하고는 한다. 그 때 만약 조금 더 시간을 내 거리의 끝을 맛보았으면 어땠을까. 또 조금 더 용기를 내 홀로 펍에 들어가보았으면 어땠을까. 이러한 나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나의 나약함과 나의 초라함을 내비쳤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 곳을 조금 더 누비었다면 좋았을텐데.



오늘 뉴욕에서 얼떨결에 사귀게 된 친구한테 생일축하 문자를 보냈다. 벌써 일년 전이라며 그 때가 그립다며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고는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그 곳에서만큼은 진심이었으니 다행이다. 서로 그 곳이 그립다며 다시 가고싶다는 짧은 대화를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그 시간과 그 장소를 추억한다.


아마 나는 언제든 다시 비행기 티켓을 끊어 돈으로는 뭐든 살 수 있는 그곳에 도착해 자유를 느낄 수 있을테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느꼈을 그 낯설고 어색했던 공기는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하고 익숙하게 다가올테다. 처음 가는 곳의 서툴음과 신선함은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하며 이내 여전함의 미묘와 변화라는 시간의 힘을 느끼게 해줄 테다. 다시 돌아갈 수는 있어도 그 때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여행자에게 새로운 곳을 탐색하는 열망을 가득 실어준다.


보고싶다, 뉴욕. 가고싶다. 또 보고싶다. 그 때는 조금 더 용기 있는 모습으로 다시 찾아갈게.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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