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생활은 나를 부끄럽게 하는 면이 있다.
열심히 한다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고, 결과야 어찌 되었든, 무엇을 하든 남들이 열심히 하는 것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 그렇다.
나는 느슨과 몰두의 갭이 중요한 사람인데, 한국에서는 나의 느슨한 지점이 부끄러워진다. 나의 최선은 최선이 아닌 것도 같고, 좀 더 악착같아야 하는 건 아닌가 싶고, 그래서 나는 이번 생에 성공하기 글렀나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돌아가면 다시 나는 내 방식대로 사는 일에 대한 만족을 느끼면서 살겠지만.
있는 동안 한국책을 잔뜩 읽었다.
미쳐 충전이 필요한 줄 몰랐던 내 마음의 한 구석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지금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쓰면서 살지만, 내가 가장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모국어로 쓰인 글을 통해서만 채워지는 그런 감성이 있다.
문지혁의 소설 <초급 한국어>와 백수린의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 그리고 한강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가 좋았다. 무게와 결이 다른 글들이지만 다양하게 섞어가면서 읽었더니 너무 좋았다.
나는 어떤 단어로도 포착할 수 없으나 분명 거기에 존재하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때로는 우리를 압도하고, 송두리째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키기까지 하는데도 타인에게는 결코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감정에 대해서.
그런 감정은 밤의 들판에 버려진 아이처럼 인간을 서럽게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우리에게 한밤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가르쳐주는 소설들이 있는 한, 우리는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 백수린의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
내가 좋아했던 만화책 <어쿠스틱 라이프>를 10살의 조카가 낄낄대면서 좋아하는 게 너무 신기했다. 언니와 나 조카 셋이서 누워서 뒹굴대면서 함께 책을 읽던 시간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경유까지 해서 15시간을 넘게 날아와서 비가 오는 에든버러로 돌아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엄청나게 붐비는 공항을 보면서 여름이 돌아왔구나 싶었다. 지금부터 8월 말까지 도시 곳곳이 관광객들로 꽉꽉 들어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내에서 집까지 갈 우버를 부르는데 평소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헉-하고 놀랐다.
근소한 차이로 출근하기 전의 그를 집 앞에서 만났고, 마치 오랜 시간 못 만난 사람처럼 안아주는 다정한 품에서 아, 집에 왔다-하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고, 집안은 으슬으슬 춥고, 공기는 건조해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게 되는 이 도시가 언제 이렇게 나에게 다정한 집이 되어버린 걸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은 얼마나 가벼운지, 작은 변화에도 금세 고개를 숙이고 내 삶의 방향을 의심하고 만다. 언제쯤은 스스로의 삶에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건 그저 헛된 바람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오히려 그런 깨달음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면, 우리 모두 그저 아마추어처럼 흔들흔들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안주하지 않는 아마추어로, 삶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살면 될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