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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Dec 15. 2021

'직장인'의 한계를 알면 조금 더 행복해지더라

소작농에서 주인님으로 가는 과정의 어디쯤

직장인이 주도적으로 산다는 건 모순적이다. 적어도 출근해서 퇴근하기 까지는.

직장은 근본적으로 내 시간의 통제권을 일부 상실하는 대신 돈을 받는 구조다.

사장이 아닌 한에야 내가 하는 일도(임원이라고 하더라도), 내 복장도(자율복장제라고 하더라도), 온전히 내 뜻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회사에서 부여하고 있는 자유 혹은 자율은 사실상 제한적이며 그 자체가 일정 부분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 역설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수년 전 내가 신입이었을 때, 직장인 익명 어플인 '블라인드'가 굉장히 핫했다. 나 또한 하루에 한 번씩은 들어가서 '회사 게시판'과 '그룹사 게시판', '산업 게시판' , '자유 게시판'을 번갈아가며 최신글을 읽으며 퇴근 후 시간을 소비했다. 출근하면 동기들과 어떤 글이 올라왔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주요 소재이기도 했다. 회사 내 게시글은 인사나 총무에 대한 불만이나 특정인에 대한 가십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화제성이나 휘발성이 강하기도 했다.


블라인드 앱의 유행은 홍보 담당자였던 내가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 의견들은 여론을 대표하는 것일까? 해당 직원들의 동향에 대한 파악을 근거로 다양한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했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10명 중 9명이 좋아해도 1명의 악플이 있을 것 같은 업무에는 몸을 사리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 블라인드 앱을 없앴다. 자산 형성에 대한 글이나 동기부여 관련 책들을 자주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결론적으로 블라인드의 많은 글을 볼 때마다 직장인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여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제보성 글들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런 글들이 나에게 어떤 삶의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인가?


'직장인'이라는 아이덴티티는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사실을 자꾸만 흐릿하게만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속되어 있는 삶'이 매우 안정적이라는 것을 체득해 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일반직장에 이르기까지... 이 길이 가장 보편적이므로 정답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자본가는 신문에서만 보는 인물처럼 돈이 애초에 많은 부류일 것이고, 사업가는 아이디어가 신박하거나 타고난 추진력이 있는 부류일 것이고, 그럼 나에게 남은 길은 애초에 직장인의 길일 수 밖에. 이 직장인의 삶이 덜 고달프기 위해서 누군가는 애초에 자격증을 확보해놓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직장인은 위에 서술했듯이 기본 전제는 같다.


회사는 내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내 노동력에 대한 보상을 책임져 줄 뿐이다) 회사는 나에게 자유를 부여해 주지도 않는다. (내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제공받기 위한 일정 자율을 보장할 뿐이다) 회사는 내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승진을 보장해주지도 않고, 성과를 낸 만큼 성과급을 챙겨주지 않는다. 하지만 주어를 '회사'에서 '나'로만 바꿔 보면 많은 것들을 나 스스로 바꿀 수 있다.


나는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다. 나는 나에게 궁극적인 자유를 부여해줄 수 있다. 나의 자산 증식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이를 실천한다면 나에게 훨씬 더 큰 보상을 안겨줄 수 있다. 그렇기에 내 자유를 제한하는 이 삶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자유의 일부를 회사와 거래하여 월급을 받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내 삶은 온전한 자유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돌려 돌려 한 이유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한시적이며, 그 한계를 아는 것이 출발점으로 삼는 데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내 삶은 점차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과정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조금 더 당당하게 내 시간을 제공하고, 더 소중하게 이 기간 동안 내 자유를 더 확장하기 위한 여러 수단들을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나의 40대는 조금 더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환경에서, 값지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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