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돈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면 즐기는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 '속도'다. 한 명이 빠르게 앞서 나가고, 다른 한 명은 아직 준비가 안 됐을 수도 있다. 그렇게 눈높이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매번의 선택에서 양쪽 모두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서로의 속도는 다를 수 있지만, 지지하고 대화할 수 있는 눈높이를 맞춰가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오늘은 그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실질적으로 효과적인 루틴과 습관들을 정리해 보았다. 우리 부부에게 실제 도움이 되었던 사례들이 중심이다.
1. 투자하고 싶은 동네에 먼저 살아보기
결혼을 준비하던 2022년 당시, 나는 분당이라는 지역을 꽤 확신에 차서 이야기했다. 신분당선이 강남과의 연결성을 높여줄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 인프라나 교육 환경도 꽤 탄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강남에 출퇴근하는 일이 없었고, 신분당선이 정확히 어디를 지나가는지도 잘 몰랐다. 부동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그저 ‘살기에도 좋고, 투자하기에도 좋은 동네’ 정도로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우리는 분당 정자역 인근의 오피스텔을 임대로 구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이랬다. 내가 “임장 다니는 것보다, 직접 살아보면서 내 동네로 만드는 게 더 빠르지 않겠어?”라고, 그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살기 시작한 정자동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산책을 하면서 야탑 - 서현 - 수내 - 정자 - 미금 - 오리 등 분당의 구조를 익히게 됐다. 그리고 각 동네의 분위기, 인근 학군, 상권의 활기와 사람들의 주요 연령대 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경험은 단순히 ‘좋은 동네’가 아니라 ‘왜 이 동네에 사람들이 몰리는가’를 체험하는 시간이 됐다.
실천 팁: 살고 싶은 지역의 부동산 카페(예: '분당 맘카페', '정자동 부동산 모임')를 가입해 지역 소식을 팔로업하고, 매주 한 번은 함께 해당 지역의 공인중개소를 직접 방문해보자. 네이버 부동산에만 의존하지 말고, 현장의 ‘온도’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살면서 보는 임장’은 감정과 데이터가 연결되는 순간이다.
2. 가계부 함께 공유하기
우리는 결혼 초기, 각자의 소비 성향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고 꽤 놀랐었다. 나는 ‘투자를 위한 저축’을 우선하는 스타일이었고, 아내는 ‘지금의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차이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가계부 공유’였다. 처음엔 부담이 컸다. '왜 이 제품을 샀어?'라는 말이 오가다 보면 감정이 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공유의 목적’을 명확히 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 낮에 차 한 잔을 마시며 구글드라이브의 엑셀시트로 만든 가계부를 보았다. 내가 정리한 엑셀 파일엔 월별 생활비 내역에서부터 시작해, 다양한 소득과 투자 내역을 기입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기입하면 연도별 자산 증가 흐름까지 연동되어 장기간의 목표 속에서 우리의 현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달엔 외식비가 지난달보다 15% 줄었네?” 같은 이야기가 오가면서, 우리는 소비에 대한 ‘공감대’를 쌓을 수 있었다.
실천 팁: 엑셀, '가계부 앱(브로콜리, 뱅크샐러드 등)'을 사용하되, 시각화된 차트를 함께 활용하자. 특히 ‘가계부 요약표’나 ‘카테고리별 소비 추이’를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대화가 한층 더 원활해진다. 소득 대비 저축률을 1%포인트씩 늘려가는 것도 작은 성취감을 줄 수 있다.
3. 자산 목표를 시각화하고 공유하기
돈을 모으는 이유가 단지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지치기 쉽다. 우리는 자산 목표를 단순히 수치로 보지 않고, 삶의 형태로 구체화하기로 했다. '45세에 둘 다 프리랜서로 전환', '월세 수익 300만 원 확보', '아이 교육비는 자산에서 나오게 하기' 등 삶의 장면들이 곧 자산 목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비전 보드’를 놓았다. 우리의 현재 자산 상태, 향후 3년간의 투자 계획, 그리고 '경제적 자립'에 원하는 포인트를 그려봤다. 놀랍게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정리하니 ‘이 돈을 왜 모아야 하는가’가 명확해졌고, 자산 증가가 곧 인생 설계와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실천 팁: 구글 프레젠테이션이나 미로(Miro) 같은 협업 도구로 '우리의 자산 로드맵'을 시각화하자. 이때 목표는 단순히 “5억 모으기”가 아니라, “2027년 현금흐름 3000만원 달성”, “부부 건강 루틴(주 3회 30분 스피드우킹)처럼 구체적인 수치로 잡는 것이 좋다. 시나리오 플래닝처럼 그려보거나, 연도별로 점차 확장되는 목표에는 동기부여가 훨씬 강해진다.
4.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집 구조를 설계하기
우리의 신혼집은 거실이 참 넓었다. 아무 것도 없는 가전에 좁고 긴 책상 하나와 몇 개의 조명, 책장 정도가 전부였다.
우리 집 거실에는 TV가 없었다. 고로 소파도 필요 없었다.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서 시각 자극을 제거하니, 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하는 행위는 책을 보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식사를 하는 것으로 굉장히 심플했다.
또 다른 루틴으로는 ‘침대에 폰 안 가져가기’였다. 이 규칙 하나로, 하루의 마무리를 함께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사소한 일상이나 돈 이야기를 자기 전에 슬쩍 꺼낼 수 있었다. “이번 달 카드값 나왔더라”, “지금 사두면 괜찮은 청약 지역 없을까?” 같은 이야기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흘러나왔다.
실천 팁: '주간 머니 토크' 시간을 만들자. 매주 일요일 저녁 30분만 확보해, 소소한 재테크 뉴스, 서로의 지출 후회담, 궁금한 금융상품 등을 이야기해보자. 간단한 화이트보드를 하나 거실에 두고, 그 주의 목표나 투자 아이디어를 써두는 것도 대화를 유도하는 데 좋다.
5. 개별 명의의 자산 확보하기
아내가 경제에 큰 관심이 없을 땐, 자산 얘기를 꺼내도 반응이 미지근했다. 대신 ‘부채를 줄이자’는 말엔 반응이 컸다. 나는 반대로, 저금리 시대에 무리해서 원금을 갚기보단 투자로 불리는 게 낫다고 봤다. 이 관점 차이를 좁히기 위해, 아내 명의의 부동산 자산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게 하나의 ‘공감 도구’가 될 거라 기대했던 거다.
처음엔 ‘내가 뭘 알아야 하나’라고 말하던 아내가, 본인 명의의 집이 생긴 후부터는 관심이 달라졌다. 부동산 앱을 하나 둘씩 깔기 시작하더니, 아파트 입지에 대한 요소에서부터 좋은 세입자를 받아들이는 방법, 절세 방법 등 기본 지식을 부지런히 늘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투자 뉴스나 금리 이슈가 나오면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이 아내일 정도다. ‘내 것’이 되어야 관심이 생긴다, 그 사실을 몸소 체감한 경험이었다.
실천 팁: 첫 시작부터 배를 불리울 수는 없다. 소형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부터 시작해도 나쁘지 않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 혜택이 적용되는 상품은 특히 유리하다.
투자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결혼 이후의 재테크는 어느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부부에게 '돈'은 공동의 고민이고, 공동의 전략이자, 그 자체로 대화를 풍부하게 만드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여정은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을 넘어, 서로의 가치관을 조율하고,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과정이 된다.
돈공부의 속도가 다르다고 답답해하지 말자. 중요한 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그걸 위한 루틴이라면, 오늘 당장 한 가지부터 시작해보자. 돈은 결국, 둘이 함께 모을 때 더 멀리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