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서 포기하려 할 때쯤 찾아온 기회
투고 메일에 대한 출판사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아무 답변이 없거나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거나. 메일을 ‘읽고 씹는’ 출판사는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서 투고 제의를 거절하더라도 답장을 해주는 출판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애타게 답변을 기다리는 예비 작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는 것 같아서.
투고 메일을 몇 차례 더 발송해도 상황에 진전은 없었다. 보낸 메일함의 용량만 점점 쌓여갈 뿐이었다.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책도 처음 쓰는 사람이니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이러다 출판사와 계약을 못 맺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바람이나 쐴 겸 엄마와 2박 3일로 국내여행을 떠났다. 여행 첫 날 저녁 8시, 경주의 야경 명소인 동궁과 월지를 걷고 있는데 대뜸 전화벨이 울렸다. ‘010’으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였다. 평소 같으면 무시하고 안 받았을 텐데, 혹시 주차 때문에 온 건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너머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OOOO 출판사인데요. OOO씨 맞으시죠?”
일주일 전 투고 메일을 보냈던 한 출판사의 편집장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나는 깜짝 놀랐지만 애써 담담한 척 대답했다.
“보내주신 기획서와 원고 잘 봤습니다. 한번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우리는 사흘 뒤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드디어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는 건가! 너무 설레서 동궁과 월지의 멋진 야경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