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 필드의 패러다임
시드 필드의 3막 구조는 '1막 - 플롯 포인트1 - 2막 - 밀착점1 - 중간점 - 밀착점2 - 플롯 포인트 2 - 3막' 이다.
이제 드디어 시드 필드의 패러다임에 대한 내용이다.
시드 필드의 3막 구조를 확장시킨 패러다임 이론은 주로 2시간 짜리 영화들을 텍스트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니 시리즈나 영화보다 짧은 드라마에는 적용이 애매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미니 시리즈도, 30분짜리 미드폼 드라마도, 짧은 시간으로 쪼개서 만드는 숏폼도 패러다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이야기를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시작–중간–끝'으로 규정했는데, 이것이 훗날 3막 구조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시드 필드는 이 3막 구조에 좀더 확실한 인과관계를 연결하기 위해 몇 개의 포인트를 강조해 패러다임 이론을 완성했다. 이 포인트들은 그가 영화사의 스토리부서 책임자로 있으면서 2천편이 넘는 시나리오와 1백 편이 넘는 소설을 읽은 다음에 구체화 된 것이다.
시드 필드가 강조하는 것은 이야기의 구조이자 시스템이다.
시드 필드의 3막 구조는 이야기를 네 토막으로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1/4 지점이 1막, 1/4에서 3/4 지점까지가 2막, 그리고 3/4부터 끝까지가 3막이다. 그 이야기의 정 가운데, 즉 2/4 지점이 바로 중간점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작품이든 칼 같이 그 지점에 각 단계가 와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작가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유연성'이기 때문이다.
1막의 끝이 스토리의 4분의 1 지점에 와야 한다고 하지만, 스토리에 따라서 5분의 1 지점에 올 수도, 3분의 1 지점에 올 수도 있다. 다만, 가장 기본적인 위치는 바로 4분의 1 지점인 것이다. 그 1막의 끝임과 동시에 2막의 시작인 지점이 수치적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앞 당길 수도 뒤로 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균일하게 이야기를 네 등분한 뒤 각 포인트를 유연하게 앞뒤로 조정해서 맞추는 것이다.
두 시간 짜리 영화에서는 이 구조가 얼추 다 들어맞는다. 하지만 미니 시리즈 형태에서는 다른 식으로 구조를 봐야 한다. 가령, 12회 분량의 미니 시리즈는 대개 1회가 1막이고, 2회부터 2막이 기형적으로 길게 이어지다, 9회 쯤부터 3막으로 넘어간다. 혹자는 3막 구조를 물고기에 비교하기도 한다. 머리가 1막, 몸통이 2막, 꼬리가 3막 이런 식으로. 그렇다면 미니 시리즈도 물고기에 비교가 가능할까? 가능하다. 몸통이 긴 갈치나 장어로 비교가 가능하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1막은 점점 그 길이가 짧아지고, 2막은 길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물고기로 치면, 몸통을 살의 더 많이 먹고 싶어하는 대중들의 니즈를 반영한 결과이다. 또한 1막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2막을 즐기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대중들이 이야기들에 단련(?)이 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귀하던 시절이었던 오랜 옛날 작품인 '일리아드'나 '오딧세이'를 보면, 1막이 그 긴 이야기의 절반이 넘어간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중들이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런 지루한 도입부를 좋아할 대중들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1막의 용도가 2막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보게 만드는 역할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짧고 강렬한 임팩트를 가진 1막이 선호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웹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을 보면, 예전에는 왜 회귀했는지, 빙의했는지, 환생을 했는지를 설명하는 도입부를 길게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회빙환이 되는 다양한 레퍼런스가 나온 최근에는, 자고 일어났더니 '회빙환했네'하는 식으로 1막을 해치우고, 2막으로 넘어간다. 그 이유는 독자가 2막을 빨리 경험하게 하고, 오래 즐기도록 위해서인 것이다.
그럼, 시드 필드의 패러다임 이론에 대해 알아보자.
1막 : 설정
시드 필드는 1막에 대해서, 내가 아는 한 가장 확실하고 화끈하게 설명을 한다.
1막은 이야기를 설정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며, 때문에 모든 씬은 이야기를 진전시키거나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를 드러내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씬이든 이 두 가지 목적에 위배되면 가차없이 삭제를 해야한다고 강변한다.
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초보자들은 이렇게 핵심 또는 알맹이만 가지고 쓰게 되면, 왠지 불안하고 뭔가 빠뜨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장황하게 쓰고, 군더더기를 덕지덕지 붙이기도 한다. 그래서 1막이 언제 끝날지 모르게 길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최종고를 뽑을 때는 결국 알맹이와 핵심만 남기고 다 삭제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시작부터 알맹이만 가지고 쓰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다. 그래야 원하는 위치에서 1막을 마칠 수 있는 것이다.
1막에서는 '설정'을 해야 한다.
주인공과 함께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해야 한다. 특히, 주인공에 대해선 직업, 사생활, 인물 간의 관계를 그려줘야 한다. 그리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시작되며, 2막으로 넘어가기 전에 플롯 포인트1을 설정해 준다.
플롯 포인트 : 다음 막으로 넘어가는 계기
플롯 포인트는 다음 막으로 스토리를 넘어가게 하는 부분으로, 각각 2막과 3막 전에 존재한다. 2막 전에 나오는 것을 플롯 포인트1이라 하고, 3막 전에 나오는 것을 플롯 포인트 2라고 한다.
이 말은 주인공이 기존에 진행 중이던 이야기에 본격적이고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 에피소드, 사건이라 보면 된다. 이 플롯 포인트는 중대한 일, 극적 사건이어야 하고, 씬이나 시퀀스일 수도 있으면, 한 줄의 대사일 수도 하나의 행동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스토리를 다음 막으로 이동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스토리는 하나의 흐름인데, 흐름을 말하지 않고 핵심요소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영웅서사구조 5단계로 설명하면 매우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영웅서사구조 5단계는 도입부를 만드는데 있어서 최고의 스토리텔링 방법론이니까 말이다.
1막에서 주인공은 '보통세상'에서 현재 상황(직업, 사생활, 인간 관계)이 보여진다. 그는 어떤 꿈이 있다(꿈이 아직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그런 주인공에게 '모험의 소명'이 온다. 여기서 모험의 소명이 바로 플롯 포인트 1에 해당 된다.
그 다음 스토리는 '소명의 거부', '정신적 스승과의 만남', '첫관문 통과' 순으로 진행되며 1막을 완료하고, '친구를 만나고, 적을 알게 되며, 시험을 치르'는 2막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 매커니즘을 '계약 결혼' 스토리에 적용해 보자.
패러다임 구조를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할 일이 바로 결말을 먼저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결말에 어울리는 시작을 정하는 것이라고 했고.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결말은 결혼 계약서를 찢고, 혼인 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하는 것으로 정했다. 여기에 시작은 남주가 일과 사랑 중에 일을 선택했다며, 절대로 결혼하지 않고 연기 생활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고 치자. 또한 이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여러 질문들에 대한 대답으로 여러가지 이야기 거리를 확보해 놓았다고 치자, 그 다음 패러다임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 놓은 이야기 거리를 인과관계에 맞게 배치하여 스토리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서울 변두리의 작은 동사무소에 9급 공무원인 여주 유하연은 친구와 술자리에서 결혼 포기 선언을 한다. 아니, 포기 당한 것이다. 어머니는 파킨슨 병으로 투병 중이고, 태어나서부터 쭉 살아온 집은 어떤 이유로 넘어가게 생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은 그녀에게는 사치일 뿐이고, 결혼 상대자에게는 부담을 지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포기했다기보단 포기 당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탑배우가 계약결혼을 제안한다면, 바로 이 부분이 플롯 포인트1 지점이다. 왜냐하면, 이 제안이 계약결혼 시작이라는 2막으로 스토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영웅서사 관점에서 볼 때 '모험의 소명'이기도 하다.
여기서 시드 필드는 극적 요구(dramatic need)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극적 요구는 주인공이 이야기를 통해서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꿈, 목표, 욕망이다. 즉, 이야기가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패러다임 이론의 각 포인트는 이 극적 요구와 밀접하게 관계가 되어 있다. 그래서 패러다임 이론은 주제 지향적이라 하는 것이다.
탑배우가 여주에게 계약결혼을 제안하는 것은 여주가 현실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던 결혼이라는 극적 요구를 자극하는 일이다. 당연히 주제와 관련이 있다.
다음 탑배우가 여주에게 제안을 하는 계기는 작가가 만들어 내면 된다. 스토리를 만드는 방식 중에는 한 시점에서 그 다음 다음으로 인과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도 있지만, 때론 인과관계를 건너 뛴 스토리를 만들고, 그 사이를 채우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작가들이 후자의 방식을 많이 활용한다. 그것이 예상하기 힘든 스토리를 만드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에, 탑배우가 우연히 그 동사무소에서 촬영을 했던 인연이 있고, 그때 어떤 악연이 둘 사이에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서로의 감정이 안 좋은 상태에서 각각의 이해관계로 인해 계약결혼을 하는 것이 스토리 전개에 유리할테니 말이다.
기왕에 영웅서사를 이용했으니, '소명의 거부', '정신적 스승', '첫관문의 통과'까지 사용해 보자.
여주 유하연은 탑배우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을 한다. 그게 말이나 될 소리냐, 라는 것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가 제안한 금액이면, 집도 지킬 수 있고 어머니의 병치료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정신적 스승'이라는 인물이 나오지 않지만, 그녀에게 처한 현실이 그 역활을 해주는 것이다. 그녀는 그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첫관문 통과'라 할 수 있는 결혼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것이다.
2막 : 대립
2막은 모든 작가들의 진정한 숙제라 할 수 있다. 대중들이 1막이라는 에피타이저를 먹고, 기다리는 메인 디쉬이기 때문이다. 이 2막을 아주 맛있게 만들어야 3막의 디저트까지 완벽해 지는 것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의 2막의 시작은 둘이 계약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되돌아 갈 수 없고, 앞으로 전진만 있을 뿐이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된 것이다. 2막의 시작도 주인공의 극적요구와 매우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둘이 계약 결혼을 하고 어쨌든 부부가 됐으니까.
만약 당신이라면, 여기서 알콩달콩한 계약 부부생활을 쓰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했다간,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당신의 2막의 끝, 즉 3막의 시작이 무엇일지 생각해 내야 한다.
결말은 남녀 주인공이 결혼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구청에서 혼인 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거기서부터 스토리를 역산해 보면, 3막은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무릎 꿇고 프로포즈하는 장면 정도가 괜찮을 것이다. 거기서 다시 역산을 해보면, 플롯 포인트 2는 그들의 계약 결혼이 온 천하에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좋을 것 같지 않은가. 그래야 남주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프로포즈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다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중간점이다.
중간점 : 반전
중간점은 전반부와 후반부를 구분할 수 있는 어떤 에피소드 또는 사건으로, 그것은 반드시 주인공의 극적 요구와 관계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주인공의 상황이나 관계, 목표 등이 완전히 뒤집히거나 강화되는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까지 믿었던 진실이 깨지거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관계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고, 목표가 수정되고, 새로운 적대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주인공의 목숨이 위험해지거나, 직업이나 사랑을 잃기도 하며, 멘토가 죽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다소 수동적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능동의 화신으로 변신하거나, 중요한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나는 이 중간점에 대한 개념이야말로 시드 필드 패러다임 이론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결말과 시작, 그리고 중간점을 안다는 것은 스토리의 뼈대를 쥐고 있는 것과 같다. 사건이 어디로 흐를지, 갈등이 어떻게 심화되는지, 주인공이 언제 능동적으로 변해야 하는지까지 전체 구조가 자동으로 정렬되기 때문이다. 결말은 이야기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시작은 그 결말에 어울리는 출발점을 정해주며, 중간점은 그 둘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스토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힘 있게 전진하도록 만드는 축(軸)이 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의 스토리 상에서는 파파라치에게 계약 결혼생활을 들통나서 협박을 받는 것이 어떨까? 아니면, 둘이 얼떨결에 동침을 하게 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아이디어도 괜찮을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인 당신의 판단과 안목이 필요한 일이다. 단, 조건이 있다. 그 중간점이 주인공의 극적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하고, 주제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점을 어떤 것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론은 변하지 않지만, 2막의 스토리는 달라질 수 있다. 파파라치에게 들키는 중간점은 파파라치의 협박에 대응하면서 둘 사이가 진짜 부부처럼 되어가는 스토리로 전개될 것이고, 실수로 동침하는 중간점은 그 일을 계기로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스토리로 전개될 것이다.
핀치 : 꼬집듯 조여서 압박하라
핀치는 시드 필드가 가장 최근에 찾아낸 개념이다. 2막을 중심점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때 각각 전반부와 후반부의 중간 쯤에 자칫 늘어지거나 지루해질 수 있는 구간을 핀치(pinch)라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핀치는 단어 뜻 그대로 꼬집거나 압박해서 이야기를 끌어 올리는 구간이다. 이 핀치 지점은 플롯 포인트 역할을 하지만, 플롯 포인트처럼 필연성을 갖고 있지는 않고, 다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데 그 효용성이 크다. 즉, 핀치 1은 중간점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하고, 핀치 2는 플롯 포인트 2가 스무스하게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탑배우와 동직원>으로 예를 들어 보면, 중간점에서 남녀 주인공이 동침을 하게 되므로, 핀치 1은 둘의 계약 결혼이 들통날 뻔하는 사건이 어떨까 싶다. 그래서 부부인 것처럼 보이려고 각방을 쓰던 그들이 안방에서 함께 안방에서 밤을 보내면서 사단이 나는 식으로 푸는 것이다. 이 상황을 개연성 있게 하려면, 미뤄두었던 집들이에 친구들이 놀러와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 술에 취한 남녀 주인공을 쉬라고 안방에 밀어넣는 식으로 하면 된다.
핀치 2는 플롯 포인트 2 지점인 계약 결혼이 들통나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등장시킬 에피소드여야 한다. 여러 후보들을 놓고 고민해야 하는데, 그 중에 이런 게 어떨까 싶다. 중간점 후보로 올려놓았던 파파라치에게 들통나는 에피소드 말이다. 즉, 핀치 2는 파파라치가 그들이 계약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에피소드이면 좋을 듯싶다.
이렇게 되면, 패러다임 이론에 의해 2막 전체의 구조가 짜지는 것이다.
영웅서사구조 + 패러다임 이론
2막에 해당하는 패러다임 이론이 '2막 - 핀치1 - 중간점 - 핀치2 -플롯 포인트2'이라면, 영웅서사구조는 '협력자, 적대자, 시험 - 심연에의 접근 - 시련 - 보상 - 귀환의 길'이다.
두 서사 구조가 어느 것은 대응이 되지만, 또 어느 것은 대응이 되지 않는데. 이것이야 말로 다양한 서사구조를 공부하는 것의 묘미이다. 서사구조 간의 포인트들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서 스토리가 한층 더 풍부해 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패러다임 이론은 구조적 접근이고, 영웅서사는 캐릭터적 접근이라. 하나의 스토리를 각각 두 가지 관점에서 보는 훈련을 꾸준히 하게 되면, 스토리에 대한 통찰력까지 얻을 수 있게 된다.
시드 필드에 의하면, 2막은 모든 내용들이 대립이라는 키워드에 수렴된다고 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꿈(목표, 욕망 등)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장애물을 돌파하게 된다. 당신이 주인공의 꿈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다면, 즉, '주인공이 이기고, 얻고,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에 따른 장애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립은 필연적으로 긴장감을 유도한다. 그것이 스토리를 보고 즐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대립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대립과 외부에서 들어오는 외적인 대립, 그리고 두 가지가 조합된 복합 대립 등이다. 가령,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과거 연애의 트라우마 때문에 고백을 못하는 내적 대립이 있을 수 있고, 결혼 계약기간 만료의 도래라는 외적 대립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두 가지 상황이 함께 오는 복합 대립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시드 필드는 2막이 어때야 한다는 대전제는 알려주지만, 어떻게 써야 한다는 것은 말해주지 않는다. 이럴 때 영웅서사가 그 부분에 있어서 유용한 지점이 있다. 가령, 패러다임 이론은 2막을 어떻게 시작해서 핀치1을 지나 중간점에 도달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반면, 영웅서사는 2막 시작을 '협력자, 적대자, 시험'으로 시작하라고 알려준다.
계약 결혼을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그들이 통과해야 하는 시험은 첫날 밤을 어떻게 치뤄야 할까 하는 게 될 수 있다. 협력자는 인물일 수도, 유형의 사물일 수도 무형의 마음일 수도 있다. 둘 사이의 결혼 계약서가 잘 지켜져야 한다는 미션이라면, '신체접촉은 하지 않는다' 같은 계약 내용이 협력자일 수도 있다. 반면, 적대자는 한 방 한 침대를 써야만 하는 상황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시험을 통과했다면, 다음 시험은 계약 결혼 중에 부부로서 외부 행사에 나가는 것일 수도 있고, 그 다음 시험은 그들의 계약 결혼이 파파라치(적대자)에 의해 들통날 위기에 처하는 것일 수도 있다(핀치 1에 해당한다). 여기에 협력자와 적대자를 잘 설정해서 대립을 잘 세우면 스토리에 긴장감이 생길 것이다.
패러다임 이론에서 2막 시작에서 핀치1을 지나 중간점에 도달하는 과정은 영웅서사구조에서 '협력자, 적대자, 시험'의 반복이다. 시험(미션)들을 돌파하면서 이야기의 극적 긴장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다 '심연에의 접근'에 도달하는데, 여기가 바로 패러다임 이론에서 '중간점'인 것이다
중간점(또는 심연에의 접근) 이후에 핀치 2에 이를 때까지 영웅서사에서 '시련'을 토대로 스토리를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 중간점의 설정을 '둘이 동침하는 것'으로 정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둘 사이에 닥친 관계적, 사회적, 내면적 '시련'을 스토리로 만들어 후반부의 긴장과 압박을 끌어올리면 된다. 여기서 '시련'이란 개념은 영웅서사에서처럼 죽음의 위기 같은 것일 필요는 없다. 관계의 붕괴, 감정의 혼란, 사회적 압력, 직업적 리스크 등 로맨스 장르가 다루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해석해야 한다.
패러다임이 다루지 않은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보상'이다. 보상의 중요성에 대해서 내가 영웅서사구조를 설명하는 글에서 내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피를 토하며 강변했던 것이 기억날 것이다. 하지만 패러다임 이론에서는 보상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다.
보상에 대응하는 곳은 핀치 2이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물론 핀치2가 보상의 내용으로 정확하게 대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핀치 2 앞에 보상이 오거나, 핀치 2 뒤에 보상이 오게 된다. <탑배우와 동직원>에서 핀치 2가 파파라치에게 계약결혼이란 사실을 들키는 내용이라 할 때, 그 전에 보상이 온다면 두 남녀가 시련 끝에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어 둘만의 파티를 열고 있는 시퀀스가 올 수 있다. 그렇다면 핀치 2의 내용이 극적 긴장을 한 껏 이끌어 낼 것이다. 만약 똑 같은 보상이 핀치 2 뒤에 온다면, 둘만의 파티 장면에서 긴장감이 올라갈 것이다.
그 다음이 플롯 포인트 2와 귀환의 길이다. 이 부분 역시 서로 대응하기도 하지만, 플롯 포인트2가 먼저 오고, 귀환의 길이 후에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귀환의 길이 플롯 포인트 2 앞에 오는 길은 거의 없다.
플롯 포인트2는 '그들의 계약 결혼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오는 귀환의 길은 '탑배우가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계약 결혼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막 : 해결
3막은 '남주인 탑배우가 여주인공에게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에필로그로 혼인 신고를 하거나,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족을 소개하는 장면 정도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3막에서 주인공은 변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에 대한 챕터에서 내가 설명했던 것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주인공이 스토리를 통해 변하지 않으면 그 작품은 재미없는 작품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 여주인공은 처음에 사랑에 소극적이었지만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또한 낮은 자존감에서 자신이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남주의 경우에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에서 이타적인 사람을 변했다. 또한 처음에는 감정 표현을 두려워 했지만 나중에는 진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생각만큼 재미가 좀 덜하다고 생각될 수가 있다. 그럴 때는 리사 크론의 말을 금과옥조로 삼을만하다.
"만약, 엔딩이 재미가 없을 때는 클라이맥스로 돌아가 주인공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라."
<탑배우와 동직원>의 귀환의 길에서 남주는 불이익을 감수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커리어, 명예, 팬덤, 이미지, 금전 등등)을 잃는 것이 필요하다. 열받은 소속사 사장으로부터 심각한 구타를 당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다음에 영웅서사를 활용하면 '부활'이다. 팬들이 남주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우호적으로 돌아선다. 배우의 스캔들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유명 감독이 캐스팅을 제안해 올 지도 모른다.
그 다음 '영약을 갖고 귀환'에서 주인공은 비로소 무릎을 꿇고 여주에게 프로포즈를 하면 된다.
이처럼 시드 필드의 패러다임 이론에 영웅서사를 결합하면, 이야기는 단순히 구조적으로 탄탄해지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이 어떤 여정을 통해, 무엇을 깨닫고, 어떤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까지 명확해지기 때문에 플롯과 캐릭터, 외적 사건과 내적 여정이 하나의 축으로 맞물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