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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뚜두 Jun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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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를 뒤적이다

내가 저장해 놓은 노래들이 나이를 꽤나 먹었단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데이빗 보위, 커트 코베인, 산울림, 야마구치 모모에, 에이미 와인하우스, 유재하...

자세히 보니 가수가 사망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리스트를 훑으며

문득 쇠락한 도시의 뒷골목을 걷고 있는 듯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들의 노래는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거란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놀던 시절은 이제 끝이 났다는 것. 

너의 스타들은 각 분야의 판테온 신전으로 영전되어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거지만 너의 삶은 그저 저물고 있다는 것.


나는 한 번도 스타가 되고자 소망해 본 적이 없었음에도 어째선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일순간에 지난 추억들이 아스라이 꺼져갔다.

과거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구태여 어떤 시절을 좋아한다고 구분해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언제나 현재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현재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나온 것만 같다.


이제라도 지금의 것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할까?


겨우 플레이리스트 목록을 통해 인생을 논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서른, 잔치가 끝난 지 오래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미래, 그 존재를 손 안에서 주물러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던 시절은 끝이 나버렸다는 깨달음이 김포한강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흐름 사이로 차갑게 스며들고 있다.

그 쓸쓸함이 구태여 일요일 오후 문득 찾아왔고 나는 그 감정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트렌디한 음악을 찾아 들으려다

원래 즐겨들던 폴더를 플레이시키곤 눈을 감는다.

김포에서 당산으로 향하는 광역 버스.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고 가끔씩 덜컹이는 이 느낌이 좋다.

지금 이 순간 나를 태운 버스는 햇살에 반짝이는 한강 변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날씨가 맑다고 했다. 젖혀진 커튼 사이, 미분양 오피스텔을 홍보중인 애드벌룬이 하늘 높이 두둥실 떠가고 있다.


미래. 과거. 현재

이 순간 나는 시간에 구속된 존재가 아니라

시간의 도랑 위를 거니는 사람인 것만 같다.  

무한으로 반복되는 플레이리스트 속 음악을 들으며

저녁 메뉴를, 만나게 될 지인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일요일 오후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고

해가 저물수록 한낮의 열기는 시들어 가고

바람은 선선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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