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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뚜두 Jun 09. 2022

X세대가 노래를 추억하는 법

이별 여행_ 원미연

나쁜 여자가 부르는 이별 여행 


코로나로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노래방이었다고 말하는 걸 들을 때가 있다. 물론 나는  ‘방’ 컨셉의 노래방보단 코노를 즐겨 찾는 사람이라 아쉽다고 할 건 없지만 가끔 TV에(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처럼)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사람들과 어울려 놀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언제였을까? 처음 노래방을 갔을 때가. 

그대들은 기억이 나는지...   

나는 조금 아리송한 게 아버지 계원(그 시절 아버지들은 다들 하고 있었다) 모임에 소고기 얻어먹으러 갔다가 노래방까지 따라 간 적이 있는데 그때가 처음인지 아니면 교회 형 누나들과 갔던 중2때가 처음인지 헷갈리는 거다. 그러나 분명치는 않아도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기억을 선택해 보라 하면 나쁜 누나가 불렀던 이별여행의 추억이 있던 곳, 바로 그곳이라 말할 수 있겠다.            

                                       

교회 중등부 애들 중 나하고 경진과 병진 등 3명은 두 명의 고등부 형들과 함께 담뱃재로 지저분한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 3층에 이르렀다. 선배들과 함께였지만 노래방은 처음 가보는 거라 긴장한 채로 복도를 걸었다. 각 방 유리문 너머로 어지럽게 돌아가는 조명과 춤을 추고 있는 듯 한 사람들의 뒤통수가 보였는데 대부분은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었다. 9시도 전이었는데 이미 만석인 듯했다.                            

얼레벌레한 우리들은 형들이 이끄는 대로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그린룸’에 도착했고 문을 열자 룸 안은 담배 연기에 찌들어 있었다.   

아 뭐야 왜케 늦었어? 

아이고야. 혼자서 너구리 잡냐? 왜케 줄담배를 피운겨? 

뭐라 대꾸하려던 나쁜 누나가 혹처럼 따라온 우리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리더 격인 현상이 형이 대꾸했다.

얘들 한 번도 노래방 안 가봤다기에 데려왔어. 건 그렇고 언제 왔냐? 

30분도 더 됐지. 저 봐라, 코인도 몇 개 안 남았다. 얼른 충전하고 와(초창기엔 시간 기준으로 할지 곡 수로 할지 선택 가능. 만 원에 20곡 국룰).

우리가 쭈뼛쭈뼛하자 나쁜 누나는 우리들을 보며 말했다.

아 빨랑빨랑 앉아서 예약부터 해. 누나 목 아파~ 

우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앉아서는 멀뚱히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노래방 첫 느낌은 이상했다. 비닐 소파 쿠션도 엉덩이 한 쪽이 푹 꺼져서 이상했고 무엇보다 냄새에 적응이 안 됐다. 꾸리한 냄새? 오줌 냄새 같기도 하고 맥주 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참, 니네 동요 부르고 그러면 안 된다 ㅎ 

나쁜 누나는 얼어있는 우리에게 농담을 날리더니 담배를 꼬나 물고(상상이 안 되겠지만 그 당시 실내 흡연은 국룰이었다)는 리모컨을 들었다. 

391번! 

천장 조명이 돌고 간주가 시작됐다. 나 역시 잘 아는 곡, 이별여행이었다. 당시 가요 톱10 상위권을 오랫동안 차지했던 곡으로 좋고 싫고를 떠나서 자주 듣다보니 저절로 가사를 외울 정도였는데 반가우면서도 의외라 생각했다.  

뭐지? 이 누나가 이런 노래를?


나쁜 누나는 소위 말하는 노는 애였다. 처음 교회에 머리를 물들이고 온 사람도, 찢어진 청바지에 나시만 걸치고 예배당에 온 사람도 누나였다. 뒤뜰 주차장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 걸린 사람도 누나였다. 그 당시 선배들이 쉬쉬하는 통에 중등부 애들은 알지 못했지만 이미 누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었다.  

그때 용어로 깡패, 날라리, 여깡. 뭐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교회 어른들, 특히 학생부를 담당하는 장로님은 그런 누나를 못 마땅해 했는데 수련회 같은 행사에 애들 물든다고 오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가 다니던 그 교회엔 소위 노는 선배들이 많았다. 싸움 좀 한다는 형들, 머리 좀 물들인다는 누나들이 몇 몇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교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돈을 뺐거나 하기 싫은 일을 시키거나 아니면 때리거나. 오히려 힘이 없어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는 후배들이 찾아가면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들을 때로 의지하기도 했고 미워하지 않았다. 아니 꼭 그래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재밌었고 기타를 잘 쳤으며 공부 얘긴 꺼내지도 않았다. 그랬다. 그냥 그들이 좋았다.   


너네 나쁜 형들이나 누나들하고 어울리지 마! 알았지? 

네? 

중등부 예배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 괜히 어울려서 놀지 말고. 알았어? 

학생부를 총괄하던 장로님이 우리를 불러다 놓고 엄하게 말씀하셨다. 얼마 전에 고등부 선배들이랑 같이 영화관에 갔던 걸(터미네이터2를 보러) 들켰던 터라 장로님은 더욱 화가 난 표정으로 우리들의 다짐을 받으려 했다.  

왜 대답이 없어? 

네. 알겠습니다.

걔네가 진짜 교회 다니는 애들 같니? 너희도 중학생이지만 한 번 생각해봐라. 그런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러 와? 아주 그냥 날라리판도 아니고 여기는 교회야 교회. 어디서 그런. 

우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곤 조용히 학생관 건물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그 누나 진짜 여깡이래? 병진이가 우리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몰라. 

모르긴 뭘 몰라. 보면 모르냐. 진짜 여깡 같잖아!

우리들도 바보는 아니어서 주워들은 얘기가 있었다. 남고 누구랑 연애하다 정학을 맞았다는 둥, 새아빠한테 맞아서 고막이 한 쪽 나갔다는 둥, 30만 원 주고 부모님 몰래 낙태를 했다는 둥, 어떤 아저씨랑 여관에서 나왔다는 둥.... 병진이는 그런 얘기들을 하나둘 끄집어내며 어쩌면 진짜 나쁜 누나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한 번도 내 눈으로 본 적도 없는 일로 누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은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오는 길에 누나를 마주쳤는데 누나는 가는 날 불러 세우고는 슈퍼에 가 바나나맛 우유를 사줬다. 

바보냐? 목욕하고 빈손으로 집에 가게. 이거 하나 빨면서 가야지.  

그럼에도 그녀는 정말 나쁜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소위 학폭 가해자였을 수도 있고 거리를 활보하다 애들 삥이나 뜯었던 여자인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 누나에게 괴롭힘을 당한 아이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나는 그녀를 나쁜 여자라 부르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째선지 여러 선배들 중에서도 그 나쁜 누나가 20년이 넘은 지금에서도 가끔 생각이 난다. 그리고 나까지 그녀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쭙잖은 동정은 아니지만 그녀는 이미 미움 받을 만큼 받고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경진이랑 병진이도 노래를 한 곡씩 뽑았다. 

태진아의 거울도 안 보는 여자 

그리고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병진이가 노래를 다 마치자 형들 중 한 명이 담배를 꺼냈다. 

아우 야, 너까지 피면 어떡하니? 애들 얼굴 노랗게 뜬 거 안 보여? 

나쁜 누나가 담배를 꺼내 문 형에게 타박하자 형은 못 이기는 척 말하며 방을 나섰고 그 바람에 다른 사람들까지 우르르 몰려 나갔다. 

야! 

네?

너는 왜 노래 안 해? 너만 안 했잖아. 얼른 해. 애들 오기 전에 

저는... 저기 

나는 누나에게 알겠다고 말하고는 391번을 눌렀다.

어? 뭐야 이거, 니 노래야? 

아녀 저기. 누나 한 번 더 부르라고요. 아직 노래 생각이 안 나서. 

누나는 한참 날 쳐다보다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나쁜 여자가 부르는 두 번째 이별여행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대전 은행동에서 우연히 누나를 만날 수 있었다. 조이너스인지 꼼빠니아인지 20대 숙녀복 매장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던 그녀는 쇼윈도를 정리하던 중 거리를 걷고 있는 우리를(나 그리고 고등부 반주자 누나)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짓하며 안으로 불러들였다. 어떻게 지내는지, 교회에 별일은 없는지 잠시 수다를 떨던 누나는 우리를 데리고 옆에 있던 아이스크림 가게로 데리고 가 초코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주고는 다음에 꼭 교회에 놀러간다고 말하며 매장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그 누나를 만난 적이 없다. 한두 번 소식을 들릴 때도 있었는데 그 마저도 뜸해졌고 그렇게 그녀는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누구나 한 번쯤, 이별여행을 하게 된다. 무엇과 이별하느냐, 어떻게 이별하느냐는 별개지만 이별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시절 무엇과 이별했을까? 아니, 지금의 나는 그 무엇과의 이별을 겪으며 지금의 내가 된 걸까. 어쩌다 가끔 나쁜 누나가 불렀던 이별여행이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왠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 얼굴은 가물가물해져도 그 누나의 얼굴만은, 검은 마스카라에 연푸른 아이섀도를 칠한 그녀의 얼굴만은 잘 잊히지 않는다. 

생각도 철도 없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누나에게 

“누나는 어디 학교 다녀요? 우리 누나는 대전여고 다니는데. 혹시 친구인가 해서요” 

말했던 내가 미워지는 오늘이다. 

나와 같은 사연으로 원미연의 이별여행을 좋아했던 X세대가 있을까? 


이렇게 아련하면서도...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그렇지만 슬픈 기억. 그것이 내가 이 노래를 추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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