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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 Jan 24. 2022

책을 덮고서 비로소 시작되는 여행 이야기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무수히 많은 이유로 우리는 여행을 꿈꾼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휴식, 힐링, 쉼을 얻기 위하여 익숙함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새로운 장소를 향해 떠나는 여행. 코로나로 인하여 이동의 제약을 받고 일거수일투족 명부를 작성하고 큐알코드 인증을 하면서 자신의 행적을 보고하고 공적 기록으로 남는 삶 속에서 모두들 간절히 '떠남'을 꿈꾸고 회상한다. 


그런 우리에게 각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여행의 이유'를 묻는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다. 이 책은 산문이라고 표지에 분명히 적혀있다. 소설가가 쓴 산문은 어떤 느낌일까. 소설가의 여행은 어떨까. 어떤 곳을 갔었고 어떤 것을 보았을까. 제목과 작가로부터 많은 것을 상상하고 예상하며  각자의 여행 장소, 경험을 떠올린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다소 어리둥절할 수 있다.


'도대체 여행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 거지?'


 제목과 다르게 글은 여행을 다녀온 소설가의 감상이 아니다. 추구의 플롯과 관련하여 여행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고 깨닫고 되돌아오는 주인공처럼 저자의 첫 중국 여행에서 얻게 되었던 메시지로부터 시작하여 '여행'을 떠나게 하는 내면의 프로그램에 대해, 여행의 경험에서 되돌아보는 장소와 환대, 노바디와 섬바디의 경계에 대해, 의무의 공간인 집에 스며든 상처로부터 회피하고 단단한 땅 위에서 느끼는 땅 멀미를 통해 여행 전후로 달라져있는 자신에 대해, 낯섦을 통해 익숙한 정체성을 확인받기 위한 내밀한 고백에 대해 책은 여타 다른 문학작품, 저자의 경험, 인문 에세이를 인용하며 리듬감 있는 호흡으로 글을 이어나간다. 


글을 읽다 보면 '소설가'이기에 쓸 수 있는 문장과 표현, 한 편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글의 구조를 느낄 수 있다. 더불어 개인적인 작가의 경험이지만 모두가 공유하고 생각해봤을 법한 주제에 대해 감각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가령 55쪽에 쓰인 본문을 보면 그렇다. 


나는 호텔이 좋다. 

모든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거나, 철저히 혼자가 된다거나, 죽음을 각오한 모험을 떠나야 한다거나, 진탕 술을 마셔야 된다거나 하는 것들. '약발'이 떨어지기 던에 이런 경험을 '복용'해야, 그래야 다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있다. 


-p. 55,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중에서-


약발과 복용이란 단어에 강점을 두기 위해 찍은 작은따옴표는 평범한 단어에 힘을 주게 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단어를 음미하고 경험을 복기하게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여행과 관련된 수많은 책들과 소설을 인용하면서 책을 덮은 후 다른 책을 읽고 싶게 하는 것 역시 이 책의 주는 즐거움이다. 책으로 떠나는 여행, 새로운 분야, 몰랐던 책 목록을 알게 하는 기쁨. 여행은 실로 큰 것이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페넬로페의 침대에 누운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을 ㅣ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때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중략).. 그러나 지혜의 여신이 그를 다시 고난의 여행길로 끌어냈고 그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기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울 곳으로 돌아갔다.


자주 떠도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오디세우스와 같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방랑을 멈추고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는 어떤 곳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할까? 과연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p. 132. '그림자를 판 사나이' 중에서-



여행을 꿈꾸는 이유, 여행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집요하게 그 이유를 탐색하고 여러 가지 시선으로 자신 내면의 이유를 바라보았다. 소설가의 시각으로 플롯의 흐름으로, <오디세이아>라는 고전을 통해서, 그림자를 잃고 영영 떠도는 방랑자가 된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소설을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주어져야 하는 장소와 환대의 의미를 통해 여행의 이유에 대해, 스스로가 여행을 쫓아 보냈던 과거의 시간과 지금 현재의 삶을 지켜보며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해냈다. 


작가의 여행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 마무리되면서 새롭게 시작한다.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책은 여행 티켓과도 같아서 과거 각자의 자연스럽게 각자 떠올리게 된다. 이제껏 떠났던 여행의 발자취에 대해, 무엇을 얻었는가. 나의 여행 안에 이어져온 추구의 플롯에서 내면적 동기와 외면적 목적 중에서 우리가 얻어낸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비로소 독자의 여행은 시작된다.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한번 자신이 떠났던 여행을 바라보고 어떤 방향을 향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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