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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 Feb 04. 2022

오늘의 행운의 손님, 소원을 들어드립니다.

히로시마 레이코 글. 쟈쟈 그림. 길벗스쿨.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읽고 대충 줄거리를 본 후 생각한 것은 '권선징악'이란 주제였다. 하지만 책은 1권, 2권으로 이어지더니 10권을 훌쩍 넘어 13권까지 출판되었다. 11권까지 시즌1이었으며 12권부터는 새로운 시즌으로 시작한다고 저자가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꽤 길게 이어질 듯하다. 


단순히 권선징악에 신기한 과자를 파는 옴니버스 구조로 책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수 있을까? 많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빠져드는 이 책이 지닌 재미의 포인트는 무엇일까. 




1. 다양한 손님, 예상할 수 없는 소원의 결말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전천당은 과자가게다. 매일 팔각정이라 불리는 기계를 통해 제비뽑기 하듯이 행운의 동전을 뽑는다. 예를 들면 1982, 5.라고 할 때 1982년 발행 5엔짜리 동전이 그날의 행운의 동전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행운의 동전을 지닌 손님에게만 전천당은 나타나고 손님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는 과자를 판다. 


처음에는 이 부분에서 인간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욕망을 채워주는 과자, 그리고 그에 따른 불행한 결말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그러한 권선징악 구조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 상황을 만난다. 정확히는 전천당은 '소원'을 들어주는 가게이며, 이는 욕망과 욕구, 더 나아가 행복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전천당은 그 순간의 운을 파는 가게이며 그 운을 행운으로 만들지 불행으로 만들지는 손님의 선택에 달려있다.


물론 모든 운이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전천당에서 파는 과자에는 주의사항이 있는데 항상 주의사항을 들려주는 주인 베니코의 음성은 과자에 홀딱 빠진 손님의 귀에 잘 들리지 않거나, 포장지의 너무 구석진 곳에 작은 글씨로 적혀있어 손님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도 많다. 이렇듯 행운의 기회는 찾아오지만 그 운을 잘 조절하는지 못하는지는 손님에게 맡겨진 것이다. 


주인공의 나이, 성별이 매우 다양하며 갖고 있는 고민과 이루고 싶은 소원이 매우 다양하여 한 권에 약 5~6개의 에피소드가 담겨있으나 겹치거나 질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행운의 손님이 2명일 때도 있고 동물인 경우도 있으며 어린 남자아이였다 직장인 여성이나 남성인 경우도 있다. 소원은 시험을 잘 보게 해 주세요, 날씬해지고 싶어요, 키가 크고 싶어요..라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부터 유적을 발견하고 싶어요, 항상 승부에서 이기고 싶어요,  악몽을 꾸는 딸아이를 구하고 싶어요, 강해지고 싶어요 등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만한 소원도 다양하다. 


이 책을 읽기에 적당한 연령이 어느 정도인가 고민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성인이거나 중고등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소재와 상황이지만 미취학 아이나 초등 저학년이 읽기엔 지나치게 세속적이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정서를 다루는 에피소드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5권에 등장하는 <숙녀 코코아>의 경우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주인공 미야의 속물적인 욕망은 꽤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버추얼 배지>는 게임 세상에서만 살고 있는 사토루가 주인공이다. 게임 세상에서 인정받는 자신이 더 좋아서 현실 세상보다 게임 세상에서의 삶을 더 좋아하던 사토루가 등장하는데 읽는 이에 따라 이런 주제를 어떤 연령까지 허용해야 할지 고민이 들 수도 있다. 






2. 시리즈를 이어가는 힘. 라이벌 플롯



이 플롯의 중요한 규칙은 서로 적대하는 두 세력이 동일한 힘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은 같은 크기의 약점을 지닐 수도 있다. 같은 힘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세력의 크기가 물리적으로 똑같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근육이 발달한 거인에게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은 지능으로 맞설 수 있다. 레슬링 선수들의 시합은 두 선수의 체중이 비슷할 때 흥미를 끈다. 


.....


이 플롯에서 초점과 대상은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작품이다. 라이벌의 의도는 상대를 꺾는 것이다. 그러나 인물의 동기는 무엇인가? 무엇이 그의 야망에 기름을 붓는가? 분노, 질투, 공포? 대결에 참가하는 인물들을 살펴라.



 - <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로널드 B. 토비아스 지음, 김석만 옮김 > 중에서



라이벌 구도라고 불리는 '라이벌' 플롯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세력이 동일한 힘을 갖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갖게 되고 서로 적대적인 지점으로 돌아서는 기준을 보고 독자들은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이러한 라이벌 플롯은 전천당 시리즈를 이어나가게 하는 큰 힘이다. 



1-2권은 대략적인 전천당 가게의 과자들을 소개하고 전천당의 운영 규칙에 대해 소개한다. 아직 베니코가 선한 인물인지 악한 인물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3권부터 본격적으로 이 시리즈를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화앙당>의 주인 '요도미'이다. 요도미와 베니코는 외면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거대한 몸집에 하얀 머리, 그러나 주름 하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베니코와 다르게 요도미는 열 살 남짓한 아주 예쁘게 생긴 소녀다. 외모와 달리 목소리는 걸걸하고 긁는 듯한 노파의 목소리이며 다가가기 쉽지 않은 뭔가 섬뜩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러한 두 인물은 '과자'라는 공통적인 힘을 지녔으며 과자의 힘에 대한 승부를 겨루면서 라이벌 플롯을 완성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베니코와 전천당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각 에피소드를 좀 더 긴장감 있게 몰입하며 읽을 수 있게 된다. 


"당신은 운을 팔지. 그게 진짜 행운이 될지, 아니면 불행이 될지는 과자를 산 손님한테 달렸어. 나로서는 그건 너무 불친절해. 기분 나빠. 구역질 날 것 같다고."


"저런, 저희 <전천당>의 영업 방식에 불만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럼, 싫고 말고! 그렇게 어중간한 건 딱 질색이야. 팔 거면 팔고, 말 거면 말아야지. 어느 쪽이든 선택하는 게 어때? 우리 가게의 영업 방식을 조금이라도 배우면 좋겠는데 말이야.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악의'거든. 사람이 가진 나쁜 마음 말이야."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3권. p. 147-


1,2권에서 풍기던 미스터리하고 불확실했던 전천당의 정체성이 분명 해지는 순간이다. 자신의 과자 가게의 과자 힘이 더 강하다고 말하는 요도미의 일방적으로 보일 수 있는 승부에 응하면서 전천당과 화앙당의 과자는 손님에게 다가간다. 


행운의 동전을 뽑고, 동전을 대가로 소원을 들어주는 과자를 파는 전천당과는 달리 화앙당은 과자 값을 후불제로 받는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과자를 받고 손님의 악한 마음, '악의'를 과자값으로 받는 요도미의 과자는 달콤하고 빠져들지만 항상 뒷맛이 씁쓸하거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맛이 까끌거린다는 특징이 있다. 


전천당 손님이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시점에 화앙당의 요도미는 방해를 하게 된다. 요도미는 보통 전천당의 과자가 지닌 힘보다 더욱 강력하고 확실하여 소원을 무조건 들어줄 수 있도록 하는 과자를 팔지만, 그 과자의 끝은 항상 행운이 아니다. 어떤 차이일까. 


"<전천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행운의 손님. 자, 안으로 들어오셔서 찬찬히 둘러보십시오. 원하시는 과자를 분명히 찾으실 테니까요."


"여기는 <화앙당>, 너의 욕망을 이루어 주는 가게지."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4권, p. 15-



그렇다. 전천당은 '운'을 팔고, 화앙당은 '욕망'을 이루어 준다. 전천당에서 파는 운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조절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힘을 조절하고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화앙당의 악의와 대립되는 '선의'다. 인간에 대한 믿음, 선택이라는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베니코의 애정은 책에서도 곳곳에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선과 악을 넘어서 '도덕적 기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깊이감 있는 에피소드 역시 존재한다. 전천당 과자와 화앙당 과자를 다룬 <족집게 통조림과 꾀떡> 이후에 등장하는 <늑대 만주>는 학교 폭력 에피소드를 다룬다. 유타에게 괴롭힘을 받던 요스케. 유타는 화앙당의 꾀떡을 먹은 후로 다소 이상해져 버렸다. 그 후로 요스케를 건드리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던 요스케. 그러나 다른 무리가 등장하여 소심하고 약한 요스케를 괴롭히고 괴롭힘을 그만 당하고 싶다는 요스케의 소원으로 전천당에 이끌려 <늑대 만주>를 얻게 된다.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보다 더욱 강해진 요스케는 자신이 당했던 것에 대한 복수심을 위해 힘을 사용하게 되고 그런 요스케를 향해 선생님은 형편없는 짓이라 말한다. 


'괴롭히는 게 형편없는 짓이라고요? 그런 거라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죠! 내가 얘네들 때문에 여태껏 얼마나 괴로웠는데! 그래서 갚아 주려는 것뿐이라고요! 그게 뭐가 나쁜데요?'


-이상항 과자 가게 <전천당> 4권. <늑대 만주> p. 52 중에서-



이런 요스케에게 우리는 무어라 말해줄 수 있는가. 비록 화앙당의 과자가 아닌 전천당 과자의 부작용이지만, 이 순간에도 요스케는 선택해야만 한다. 운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고 단순히 잡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어느덧 선의의 마음으로 힘겹지만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선택의 방향을 향해 추를 옮기게 되는 것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이다. 




3. 상상하는 재미가 가득한 다양한 과자들, 에피소드를 넘나드는 등장인물과 과자


앞서 다소 복잡한 이야기를 한 듯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이 책은 어린이 동화다. 어린이 동화답게 다양한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인어 젤리, 맹수 비스킷, 늑대 만주, 카리스마 봉봉, 헌티드 아이스크림, 여우 전병, 복수 딱지, 발표왕 주스 등 직관적으로 과자의 효과를 알 수 있게 하는 이름부터가 재미있다. 인내 연필, 붕어빵 낚시, 수면 저금통,  길잡이 개구리와 같은 장난감과 물건까지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갖고 싶은 과자와 장난감이 가득하며 내가 만약 전천당에 간다면 어떤 과자를 갖게 될지, 어떤 소원을 빌고 그에 알맞은 과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더불어 1권 <카리스마 봉봉>에 등장했던 노리유끼의 경우 12권까지 관통하는 빌런(악역)으로 전천당에 반하는 등장인물로 요도미와 또 다른 긴장감을 주며 <복수 딱지> 에피소드와 12권 새로운 시즌을 여는 프롤로그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직접적인 에피소드로 등장하진 않지만 <괴도 롤빵>에 잠깐 등장하는 미카와 형사는 정의를 구현하는 역할로 화앙당 요도미가 결정적으로 전천당에 반발심을 갖게 하는 계기로, 여우 전병의 힘을 믿지 못하여 전술 캔에 갇힌 사나에를 발견하는 역할로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또한 수없이 나열되는 과자 이름 역시 책의 앞 뒤로 연관되어 등장하여 독자의 추리력을 자극시키는 재미도 선사한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각의 에피소드를 즐기기에도 충분하면서 책 한 권이 갖는 구성과 시리즈 전체로 봤을 때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이 책에 큰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서사의 힘이라 말할 수 있다. 


어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읽을거리와 감상 거리가 풍부한 책으로 12권부터는 요도미가 아닌 의문의 남성이 등장하여 전천당의 정체를 밝히려 하고 있다. 실험실이 등장하며 손님들에게 인터뷰를 하고 과학적인 접근으로 전천당의 과자를 분석하는 등 이제까지와 새로운 흐름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 최근 출간된 13권까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전천당. 13권 에필로그에서 새로운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낼 인물의 등장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14권이 기대되면서 이 시리즈의 결말은 언제쯤 끝맺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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