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나. <자연스러움의 기술> ,넥서스북스.
그저 즐겁고 신나서 했던 일들, 성장한다고 믿었던 내면적 가치가 자본, 돈, 재테크 등 현실적인 요건에 맞물려서 자꾸만 평가되고 가치를 매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요즘이다. 가만히 있으면 자꾸만 휩쓸리는 기분이다. 뒤에서 채찍질을 하는 것만 같고 주변에서는 끝없이 달린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숨이 차고 뒤쳐지는 피곤함.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 사회가 변하는 것인지 돈이라는 가치가 너무 영향력이 크다.
위로가 필요할 때,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날에는 예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 읽으며 위로를 얻는다. 마침 새해를 시작하는 기간이라(2월이지만, 설날을 기준으로 하면 아직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는 1월이라 생각한다.) 새롭게 한 해를 꾸리기 위해 다시 읽은 책, 김윤나 작가의 <자연스러움의 기술>.
나무가 햇볕을 받고 흔들리지 않도록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가며 자라는 자연스러운 삶처럼, 우리 스스로가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나' 답게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다양한 상담 사례를 살피면서 가치, 욕구, 신념, 감정, 강점에 대해 살펴보는 책이다.
나에게 어울리게 옷을 입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체형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옷장에 두어야 할 옷,
버려야 할 옷, 사야 할 옷을 내 힘으로 분류할 수 있지요.
...
마찬가지로 하루가 억지스럽고 끌려가는 마음이 든다면,
당신 자신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최신 유행의 옷이나, 남들이 좋다는 집이 아닙니다.
어떤 옷을 입을 때 가장 나답고 매력적인지 나는 어떤 곳에서 일하고 잠을 잘 때
안정감을 느끼고 에너지가 높아지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p.15-16-
첫 번째로 저자는 사람이 성장하는 데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삶의 과제를 마주할 때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승진만을 향해 달리던 한 남성과의 상담 사례를 통해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10년 뒤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으며 독자에게도 지금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진짜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 혹시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짜 자기'를 진짜 '나'라고 착각한 채 타인의 가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스스로 묻고 생각하게 한다. 이 챕터를 읽으며 떠오른 드라마의 한 장면이 있다. 바로 2019년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수많은 패러디와 유행어, 밈을 탄생시켰던 'sky 캐슬'이다.
드라마는 한국 최상위권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 경쟁과 그들만의 세상을 꾸려 살아가는 sky캐슬 단지에 살아가는 세 가족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중 주인공 예서의 아버지 강준상은 학력고사 시절 전국 1등을 차지했으며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고 주일대 병원의 병원장이 되려는 인물이다.
여러 사건이 진행되면서 강준상은 자신의 딸인 줄 모르고 응급 환자로 실려온 혜나를 외면하게 되고 그 결과 혜나는 죽게 된다. 나중에 진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며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어머니에게 찾아가 오열하며 이야기를 한다.
강준상(정준호): 어머니는 항상 이런 식이죠. 네 좋아요. 그러면 해법 좀 알려주세요.
윤여사(정애리): 애비야
강준상(정준호): 저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학력고사 전국 1등까지 했고, 어머님이 의대가라고 해서 의사 됐고! 어머님이 병원장 되라고 해서..... 그거 해보려고 기를 쓰다가.. 내 새끼인 줄도 모르고... 혜나를 죽였잖아요!
강준상(정준호): 낼모레가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놈으로 만들었잖아요, 어머니가!
드라마 속 강준상은 자신의 가치가 아닌 부모의 가치에 맞춰진 삶을 살았다. 그 결과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 명예, 지위, 부를 가졌으나 결국 남은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울부짖음과 자신의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들 모두 어느 정도 강준상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가치를 내가 원하는 가치로 착각한 채 불편함을 모르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대부분 그렇게 하니까. 10년 뒤를 상상해보자. 내가 강준상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때 난 어떤 삶을 살아야 타인을 원망하지 않고 온전히 책임지며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저자가 '가치'를 다른 다섯 가지 주제 중 가장 먼저 정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알아차리고 정립하지 않으면 내가 지닌 신념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 나의 감정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나의 욕구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최근 혼란스럽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휩쓸리는 듯한 불안함과 조급함에서 길을 찾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으며 시작이 되는 '가치'부분에서 오래 머물렀다. 2년 전 이 책을 만났을 때만 해도 가치라는 것은 명확했던 것 같은데, 희미해지는 인생의 나침반을 다시 점검하고 그동안 살펴보지 못했던 나의 감정과 강점에 대해, 한동안 참았고 외면했던 나의 욕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책은 가치 외에 신념, 욕구, 감정, 강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연스럽게 '나다움'을 발휘하기 전 우리는 수많은 외부의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간다. 부모의 양육 태도, 주변 환경 등 생존하기 위해서 그에 알맞게 행동하고 '~~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사고 구조가 무의식적으로 자동화되어 발현되는 것이 바로 '신념'이다. '신념'은 비합리적이고 잘못될 수 있다. 신념이 올바르지 못하면 관계를 맺을 때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으며 '해야 한다'라는 당위성에 스스로를 괴롭힐 수 있다. 이러한 신념에 대해 점검하고 내가 바라는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고 있는지, 혹시 타인을 위해 회피하고 참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이를 감지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느끼고 그 감정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감정'을 살피며 책은 이어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잘하지 못하는 것에 너무 신경 쓰느라 정작 내 강점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강점을 찾아보고 잘하는 것에 몰입하며 느끼는 즐거움과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책은 끝난다.
지금의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이 외로울 때가 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꾸만 주변 사람과 갈등이 생기거나 외롭고 고립되는 순간이 있다. 변하지 않고 여전히 해왔던 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나에게 틀렸다고,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날. 그런 날 외로워말고 이 책을 한번 읽어본다면 좋을 듯싶다. 쉼표를 찍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감사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