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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 Feb 17. 2021

소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소원을 이루어 주는 나무가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소원을 빌겠는가? 상상만으로 많은 이들은 설레게 된다. ‘소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고, 구체적인 풍경과 나무를 상상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나무가 존재한다면 나무에 소원을 빌고 이루어지는 과정을 그려낸 이야기가 흥미로울까, 아니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나무의 비밀을 알아내는 과정이 더 흥미로울까.       


두 가지의 재미를 모두 담은 책이 여기 있다. 제목은 ‘녹나무 파수꾼’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과 녹나무를 지키며 나무의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여러 사람의 사연과 추리가 합쳐지니 소설을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미혼모에게 태어나 경제적으로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주인공 레이토는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 후미를 위해 빨리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만 쉽지 않다. 억울하게 해고된 중고기기 판매 업체에게 복수하려는 마음과 퇴직금을 챙기려는 마음에 가게에 침입하게 되고 이 때문에 꼼짝없이 경찰서에 잡혀가게 된다. 이대로 끝일 것 같은 그에게 돌아가신 엄마의 이복 언니이자 호텔 경영과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야마가와 가문의 당주 ‘치후네’가 등장하고 경찰서에서 합의를 해준 후 가문이 지켜오던 녹나무의 파수꾼을 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오갈 곳 없던 레이토는 소원을 빌어준다는 것은 미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정 기간이 되면 밤마다 찾아와 녹나무를 기념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궁금해한다. 하루는 녹나무에 찾아오는 사지 도시아키의 뒤를 밟는 딸 사지 유미와 함께 녹나무의 비밀과 최근 들어 이상해진 아버지의 행적을 찾으려는 유미와 함께 녹나무의 비밀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 소설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성장소설’ 일 것이다. 자신이 버려지듯 태어났으며 자신의 출생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흘러가는 방향대로만 살아가는 레이토가 치후네와 함께 성장하는 과정과 평생을 가문의 당주와 사업에 충실했던 치후네가 갖고 있던 가족에 대한 속죄와 사랑 그리고 어디에서도 받지 못한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둘 모두가 서로에게 위로받고, 시작했을 때 보다 더 풍성하고 따뜻한 존재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레이토와 치후네의 인연이 시작하게 된 것은 둘이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란 주제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주제이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존재인 가족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서로 진심을 전하고 싶지만 늘 말의 홍수 속에서 오해가 생기고 부족한 용기와 미안함에 제대로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는 늘 갈망한다. 오해 없이 진심으로 다가가기를,  말과 행동의 의도가 사실은 이러한 진심이라고 전하고 싶지만 ‘언어’라는 수단은 때때로 본질을 흐리고 우리들의 의도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이렇듯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관계인 ‘가족’은 소설의 큰 줄기이자 배경이 된다.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녹나무의 비밀을 밝히는 추리 못지않게 등장인물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가족에 대한 사연은 각각 다른 색이지만 우리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가족이라는 관계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우리는 때로 너무 많은 말을 하며 필요 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앞서 상상한다. 오롯이 마음과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마음을 열고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상상은 우리를 두근거리게 한다. 마치 텔레파시처럼 말이다. 가능성 없는 상상이지만 한 번쯤은 모두 그런 판타지를 품어 봤을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판타지를 상상하고 소망했던 마음으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 한 명 한 명의 사연과 입장이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면서 마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언어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 모두를 언어만으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녹나무의 파수꾼」 p.373     


이 부분을 읽으며, 그리고 책의 끝장까지 다 읽은 후 잠시 옛 친구가 떠올랐다. 서로 간의 오해로 크게 다투었던 친구였다. 그때 친구는 말했다.      


“정말 내 마음을 꺼내서 보여줄 수 있으면, 말없이 마음만으로 대화가 될 수 있다면.. 그런 상상을 가끔 해. 지금 내 말이 절대로 너에게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아. 할 말이 없네. 그만하자.”     


당시에는 화가 났다. 일방적이었다고 생각했고, 이기적으로 날 폄하하는 듯한 친구의 말에 더욱 사납게 다그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가시처럼 박혀버렸던 친구의 마지막 말은 십 년,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 책을 읽은 후 오랜만에 그 친구가 떠올랐다. 학창 시절의 우리보다 지금 우리는 조금 더 자랐으니까,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나이를 먹고 살아온 시간만큼 우리는 마음과 마음보다는 말과 말 사이의 행간을 읽기도 힘겨워하는 요즘이니 어쩌면 그때 그 오해 그대로 남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관계란 참으로 복잡하다. 세상에 태어나 만나게 되는 1차적 사회집단인 혈연 집단에서부터 날실과 씨실처럼 우리의 인생은 여러 관계가 차곡차곡 쌓이고 촘촘히 맺어지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완성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연이란 끈으로 맺어지는 과정에서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오해 없이 온전히 들려주고 싶은 삶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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