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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 Mar 04. 2021

낙관주의자가 아닌 '가능성 옹호론자'의 시각으로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김영사

눈을 뜨기 두려울 정도로 각박한 현실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하루다. 오랜만에 열어본 초록 창의 검색어와 관련 기사를 보는데 가슴이 먹먹해지고 고통스러웠다. 되도록 뉴스나 기사와 거리를 두며 무슨 일이 있는지 머리기사만 읽고, 댓글을 읽는 것은 피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제되지 않은 소음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기사들은 때때로 사건의 크기를 풍선처럼 부풀리고, 논점과 쟁점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중들을 자극하고 선동한다. 이번 주는 유난히 시끄러운 기사가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더욱 크게 와 닿는 기사 분야가 있는데 학교폭력, 생활 속의 악플, 갑질, 성과 관련된 범죄 기사이다. 가장 가깝고, 두려우며 심각하다고 느껴지는 일인데 최근에 읽어본 관련 기사들의 상당수가 이 부분에 해당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문제에 늘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내며 작은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자세라는 것은 학교 교육과 대학교 전공 시간에도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이다. 그래서 기사 한 개만 읽더라도 내 의견이 어떤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끝없이 고민하고 연관 짓는 예민함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사건, 사고 소식과 빠르게 바뀌는 언론 보도, 대중들의 반응에 감각을 깨우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때가 많다.      



두렵고, 피곤하고, 도망치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이토록 무서운 곳인가. 어떻게 아이를 낳고 양육할 수 있으며 내 한 몸 간수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원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생존’이란 말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진심을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해야 하는 불안함과 살고 있는 기분이다. 이렇듯 불신감이 기본 감정이 되어 세상을 분류화하고 타자화하는 나 자신을 볼 때면 힘이 빠진다.      


당신은 세상을 오해하고 있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책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스 로슬링’ 박사가 쓴 책 『팩트풀니스』이다. 의학과 통계학, 공중 보건학을 전공으로 한 그는 아프라키 몇몇 지역에서 공중 보건을 위해 일을 하고 세계 보건과 관련된 연구 사실과 통계적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강의 활동을 펼쳤다. 그는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생각보다 세계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편적이고 훌륭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도 세상의 발전을 부정하며,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미 이룩한 발전을 외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터무니없고 스트레스다.
....중략...
나는 가능성 옹호론자로서 이 모든 발전을 바라보고, 앞으로도 더 발전하리라는 확신과 바람을 갖고 있다. 낙천주의가 아니라 상황을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세계를 건설적이고 유용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p.100    

       

왜 많은 사람들은 저자와 같이 세계를 가능성 옹호론자의 시각이 아닌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그는 우리가 진화 과정에서 겪게 된 10가지 뇌의 생존 본능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에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심각한 무지와 싸우며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에 주목하자는 생각으로 ‘갭 마인더 재단’을 설립하여 객관적 자료와 통계, 수치화한 각종 도표를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교육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 책은 그동안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며 저술하였다. 책은 저자 ‘한스 로슬링’ 박사의 목소리로 서술되지만 그의 아들 ‘올라 로슬링’과 며느리 ‘안나 로슬링’와 함께 저술되었으며 이 책을 집필하는 데에 몰두하다가 저자 한스 로슬링은 2017년 2월에 세상을 떠난다.           


그가 한 평생 연구하고 알리고 싶어 했던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은 ‘팩트풀니스’ 즉, ‘사실 충실성’이라고 표현된다. ‘사실 충실성’이란 무엇일까? 객관적인 통계와 수치, 데이터로 증명된 사실과 긍정적인 변화가 본능에 가려진 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세계에 대한 오해를 직면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책은 현상에 가려진 본질을 ‘사실 충실성 실천하기’라는 챕터로 실천할 수 있도록 책은 친절하고 따뜻하게 안내하고 있다.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


저자가 설명하는 열 가지 본능 중 첫 번째 본능은 ‘간극 본능’이다.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하는 강력하고 극적인 본능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간극 본능을 첫 번째로 제시한 저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저지르는 오해이며 대다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득 수준에 따른 삶의 모습이 다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극빈층의 삶과 부자의 삶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한 나라의 삶의 모습을 떠올릴 때에도 이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지낸다. 가장 흔히 사용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표현이 그렇고 책에 제시된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가진 ‘서양’과 ‘그 외의 나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데이터를 통해 우리들이 지닌 극단적 세계관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설명한다. 양 극단 사이에는 전 세계의 75%나 되는 대다수의 사람이 중간 소득 국가에 살아가고 있으며 소위 말하는 ‘가난한 개발도상국’이라는 집단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간극 본능’이 만들어낸 착각이다. 정확히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분류로 저자는 소득 수준에 따라 네 단계의 삶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리고 간극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사실을 바탕으로 한 세계를 인식하는 ‘팩트 풀니스’ 즉 사실충실성을 첫 번째 장의 마지막에 제시하며 이 책은 시작된다.           



그 뒤로 ‘세계는 점점 나빠진다’고 여기는 부정 본능, 모든 변화를 나타내는 그래프는 끝없는 증가, 상승의 직선을 향해 갈 것이라는 ‘직선 본능’, 생존을 위한 가장 오래된 본능이지만 지금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장 왜곡시키는 ‘공포 본능’, 단독으로 제시되는 수치만으로 평가하는 오류를 조심해야함을 알리는 ‘크기 본능’, 가장 쉽게 일상에서 일어나는 범주화가 만들어내는 오해와 오판에 대한 ‘일반화 본능’, 국민, 국가, 종교, 문화에 따른 결정론으로 쉽게 세상을 단정 짓게 하는 ‘운명 본능’, 전문가들만의 이야기보다 다양한 관점이 어울려야 진정한 해결책이 나온다는 것을 염두해야 할 ‘단일 관점 본능’, 사건의 원인과 해결을 떠올릴 때에 구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탓할 비난할 대상, 개인을 찾는 우리 안의 ‘비난 본능’, 우리 안의 다급함을 자극시켜 많은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세상의 흐름을 나타내는 ‘다급함 본능’까지 하나하나 객관적인 수치와 변화를 통해 경계해야 할 사항에 대해 알려준다.          



흥미로운 건 수치가 아니라, 수치가 말해주는 그 이면의 삶이죠.
                                                                            p.37         


책을 만나기 전 통계와 수치에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도 존재할 것이다. 객관성이라는 가면 아래에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무의미한 숫자놀이를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통계에 의존하는 태도에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수치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느낌만으로 세상을 오해하며 이제까지 인류가 이룩해온 발전을 부정하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한다.      


수치가 아닌 이면의 삶과 흐름을 읽고, 우리가 정말로 두렵게 느껴야 할 위험이 무엇인지 분별해내는 올바른 안목을 지니고자 노력했던 저자의 삶이 묻어나기에 다양한 수치와 통계가 딱딱하지 않고 따뜻하다.                     

사실 충실성은 지금 저 뉴스는 부정적 면을 보도한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보다 우리에게 전달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점점 좋아져도 그것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주변 세계에 대해 항상 지나치게 부정적 인상을 받기 쉽고, 이것이 대단한 스트레스가 된다. 부정 본능을 억제하려면 나쁜 소식을 예상하라. 


..(중략)..
•뉴스에 많이 나온다고 해서 고통이 더 큰 것은 아니다. 나쁜 뉴스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세상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좋아졌기 때문일 수 있다.      
                                                                                   p.107. ‘부정 본능’ 중에서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각박하고 불안하다 했었다. 불신감으로 타인을 의심하고, 두렵다 했다.      

그때마다 이 책을 다시 꺼내서 읽는다. 상황은 나쁘기도 하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으며 우리들의 감각은 더 예민해지고 법과 규제, 국민 정서와 시민의식은 조금씩 더 발전하고 있다. 두려움에 떨고 문제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힘없는 개인에게 돌리려는 때에 좀 더 큰 안목을 갖고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 옹호론’의 가능성조차 보지 않은 채, 보이는 현상에만 집중하는 경솔함이 아닐까. 느리고 고통스러워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기 위한 진통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서평을 쓰는 와중에 뉴스에 보도된 미담 기사를 접했다. 돈이 없어 배고파하는 어린 두 형제에게 자신의 가게에 언제든 와서 먹을 수 있다고 치킨을 제공해준 업주에게 손편지를 써서 보낸 형의 사연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시민들이 선한 업주를 돕기 위해 치킨을 주문을 하여 업주가 깜짝 놀랐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말했다.      


“제가 아니었어도 누구나 그 상황을 만났으면 그렇게 했을 거예요. 저는 큰 일을 한 것은 아니에요.”     


세상이 아무리 부정적이고 힘들고 각박하게 변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말하는 ‘세상’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개개인의 상호작용과 연결고리가 이뤄낸 관계망이다. 날실과 씨실처럼 촘촘하게 이어진 우리들의 실천과 마음으로 세상은 만들어진다. 개별성을 범주화하고 일반화하지 말기. 혼란스럽고 세상이 두려워지는 ‘느낌’이 가득하다면, 당신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아직은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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