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
다음 중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①시험에서 1등을 하여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고등학생.
②복권에 당첨되어 50억을 수령받고 기쁜 마음으로 가족에게 소식을 알리는 사람.
③좋아요가 수천 개, 수만 개가 달리는 소셜 미디어의 인플루엔서
④승진 결과 발표일, 승진했다는 소식을 듣고 온 가족과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축하 파티를 받는 사람.
문제가 어려운가? 아니면 너무 쉬운가? 이번에는 보기를 한 번 바꿔보고자 한다. 다음 중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①시험에서 1등을 하였으나 함께 기뻐할 친구나 가족이 없는 고등학생.
②복권에 당첨되어 50억을 수령받았으나 돈을 쓸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사람.
③좋아요가 수천 개, 수만 개가 달리지만 진정한 친구나 가족은 한 명도 없는 인플루엔서.
④고대하던 승진 발표일, 승진했으나 함께 축하할 가족과 친구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
행복을 전해주는 소식에는 변함이 없으나 주인공의 상황이 달라졌다. 곁에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행복을 가늠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본질에는 타인과의 관계, 즉 사회성을 띤다. 타인의 인정, 기쁨을 함께 해주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 때로는 자신의 성공을 바라봐 줄 불특정 다수의 일반 대중들을 상상하면 쉽다. 그렇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 이 물음에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서 행복의 본질을 찾아본 책이 있다. 행복의 기원을 찾아서 ‘어떻게’를 ‘왜’로 바꾸어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찾아낸 서은국 박사의 「행복의 기원」은 잘 차려입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허상을 벗겨놓은 채 솔직하고 당당하게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말한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향해 진화해온 동물로서 가장 강력한 행복감은 ‘사회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이 말은 행복감을 느끼는 성격과 기질이 타고난다는 뜻이다. (책 속에는 ‘유전자는 공평함을 모른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무엇이라? 내가 이제까지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 유전자 때문이라고?
책은 인간은 ‘생존’이라는 자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진화해온 인간은 동물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인간이 동물이라니, 만물의 영장이며 다른 동물들보다 합리적인 이성의 발달과 언어와 글을 사용할 수 있는 우리가 어떻게 동물이라 할 수 있는가?
사실이 아닌 생각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과학의 매력이고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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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저명한 물리학자 캐롤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물리적 법칙과 화학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생명이고, 인간이다. 그 과정에는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인간은 수천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시계보다 복잡한 존재지만, 이 복잡성 자체가 초연적인 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 p. 47 챕터 3.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행복」 중에서 -
복잡성 자체가 초연적인 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는 사피엔스.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다는 이성의 힘과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지구별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오만함에 대해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끝없이 의미를 부여해온 것도, 언어능력이 발달할 수밖에 없던 것도 어쩌면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사피엔스의 나약함에 기인한 ‘생존’을 향한 진화였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생존’이란 단어가 절박하게 느껴지지 않는 풍요로운 사회에도 이 말이 유효할까. 우리가 말하는 생존의 무게와 의미가 원시시대와 많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본질은 여전하다. 이 시대에 우리 모두들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숨을 돌릴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난 행복한가? 지금의 난 어떻지?’
이때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 혼란스럽게 느껴진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답하다면 정상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으로는 행복을 알 수 없다. 행복은 구체적인 경험이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초콜릿의 달콤함을 음미할 수 있는 작은 ‘쾌’를 쫓는 경험이 바로 행복이다. 책을 읽다 보면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작은 것에 소중함을 느껴보자라는 정신 승리와 같은 주문이 틀렸다고 시원하게 말할 수 있다. 각자의 DNA 속에 새겨진 행복감의 그릇의 크기와 깊이가 다르다고 깔끔하게 인정하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어 행복에 대한 강박을 풀리도록 해준다.
더불어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키워드는 바로 ‘사회성’이다. 행복감을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동기, 보상을 바로 사람과의 만남이며 이는 수천 년간 생존을 위하여 진화해온 뇌 속에 프로그래밍된 전략이라는 뜻이다. 수십 번 등장하는 말, 번식과 생존. 나약한 사피엔스 혼자서 살아남기에 지구는 험난했으며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요인은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인간 집단의 힘이다. 여전히 우리들의 뇌 구조에 박혀있는 생존 전략으로 인해 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앞서 보기에 주어진 상황만 되돌이켜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대면 만남이 줄어들며 급격히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고 행복 지수가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러한 시대적 흐름과 함께 높은 통계치를 기록한 사회적 변화가 있었으니 바로 ‘반려동물’ 시장이다. 실제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는 2019년 591만 가구에서 2020년 638만 가구로 부쩍 늘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한 자녀 가구,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관계의 친밀도가 떨어지면서 점차 애정과 사랑을 나눌 대상을 찾는 본능적인 흐름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책에 나온 말처럼 너무 이성의 힘을 과하게 맹신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말은 아픈 사람에게 아프다고 느끼지 말라는 말과 똑같다는 저자의 말이 정말 시원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본질보다는 보이는 증상에 더욱 신경을 많이 쏟는다.
돈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그래서 초콜릿 같은 시시한 것에 마음 두지 않게 하고, 이런 자극을 음미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심지어 사람이라는 자극에도 관심을 덜 갖게 한다. 돈을 생각할수록 카페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덜 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사양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하지만 초콜릿을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될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
- p. 111 챕터 6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중에서-
많은 이들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의 주변의 것을 더욱 살핀다. ‘저 사람은 돈이 많아서 행복한 것일 거야.’, ‘저 사람은 예뻐서 행복한 것일 거야.’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말한다. 돈 때문에, 외모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무엇을 소유하든, 어떤 재능을 지녔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행복함의 원천은 돈, 재능, 외모와 같은 요인이 아니라 바로 친밀한 관계에 놓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소박하고 맛있는 식사를 자주 하고 그 순간을 음미할 수 있는 경험과 감각이라고 말이다.
행복하고 싶다면, ‘어떻게’라는 방법이 아닌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왜’ 행복감을 느끼는가. 그 후에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현재에 주어진 초콜릿을 음미하고 있는가? 시시한 즐거움을 놓치고 거대한 언덕 위의 목표만을 향해 무의미하게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