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트의 길을 찾아 나서다.

내 작은 발로 타박타박 벌어서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by 자까

만약 당신이 평생을 조현병 환자처럼 살아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내가 에스토니아에서 만났던 한 화가는 소련 시절 그들의 생활에 대해서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들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다른 조현병 환저처럼 살도록 요구되었다고. 마음속에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욕구와 열망이 넘치고 있었으나, 말로는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만 말하도록 조종 당하고 있어 그들은 사회적으로는 인격과 개인적 성격을 박탈당한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창살 없는 강옥 속에 살고 있었다고.


내가 이번 연재를 통해서 알리고자 하는 일은 바로 그러한 사회적 강압을 몸으로 휘어 감아 바수어버린 거대한 용처럼 세상에 나타난 사건에 대해서다. 바로 현대사가 '발트의 길(The Baltic Way)'라 부르는 인간띠 말이다. ('발트의 길'이 어떤 길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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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은 내가 2년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작업이었다.


1989년 열렸던 발트의 길 행사 30주년이 되던 2019년을 맞아 뭔가 나의 능력과 재능에 걸맞은 성과를 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래서 2018년부터 나는 발트의 길 행사에 참가하였거나 그 행사를 추진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당시의 이야기와 경험을 들어보고 그것을 모아 책으로 내보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리투아니아어, 라트비아어, 에스토니아어를 모두 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뭔가 한국에 기여해 볼만한 일로서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남들이 찾지 못하는 새로운 정보를 얻는 데 효과적인 능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 구사능력은 생각보다 효과적인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우선적으로 발트의 길을 주도했던 주요 인물들을 섭외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세계 전체를 놓고 보아도 흔치 않은 발트 3 국어를 모두 할 줄 아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현재 각국의 정치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장본인들이 모든 걸 마다하고 흔쾌히 시간을 내어 인터뷰를 해줄 정도의 매력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역사적인 행사가 세상에 나오는 데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한분은 내가 무슨 방법을 써서 연락을 시도해 봐도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중에 듣자 하니 병환으로 인하여 다리를 절단하여 현지 언론에도 두문불출하고 계시던 참이라 했다.


다행히도 나름 여러 사람들이 내 인터뷰에 응해주었고, 더 인터뷰를 해야 할 사람들의 연락처를 주거나 그와 연락이 닿을 사람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발트의 길이 성사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도 있고, 나름 그 역사적인 자리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을 공유해준 예술가 분도 계셨다.


위에 이야기한 섭외가 되지 않는 중요하신 분들 말고도 아직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너무 늦기 전에 2018년부터 시작한 나의 작업을 조금이라도 정리해서 이 공간에 공유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나에게 귀한 경험을 공유해주신 그분들께 너무 큰 죄를 짓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언젠간 책으로도 낼 수 있겠다는 자그마한 희망도 가져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과연 내 작은 발로 타박타박 걸어서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요즘 들어서 무릎이랑 발목도 시큰시큰 아픈데....




그건 그렇고, 서론이 너무 길다.

요즘엔 이전에 비해서 다행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발트의 길'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 사건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발트의 길’이란 영어로는 Baltic Way라고 쓰고 리투아니아어(Baltijos kelias)와 라트비아어(Baltijas Ceļš)는 그 영어단어에 해당하는 표현을 자기네 언어식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에스토니아만 특별하게 영어로 Baltic Chain 즉 ‘발트의 사슬(Balti kett)’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사실 에스토니아는 처음엔 ‘발트의 띠’라는 표현을 사용하려고 하였으나 사슬이라는 표현이 인류의 통합을 표현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서 이 표현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사실 한국어에서 '사슬'이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는 에스토니아어에서의 느낌과 상당히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이 사건은 그러니까 1989년 8월 23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까지 이르는 약 600km의 거리를 200만 명이 손에 손을 잡고 만든 거대한 인간띠이다. 잘 느낌이 오지 않는다면 서울에서 전라도 광주를 두 번 왕복하는 거리를 사람들이 빼곡히 손을 잡고 서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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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은 발트 3국이 소련 지배하에 들어가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독소 불가침 조약이 조인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으며, 그 소련 지배의 부당함을 만방에 천명하기 위해서 기획된 행사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온 세계가 망각하였거나, 아니면 부인하였던 이 작은 나라들의 존재가 서방의 뉴스를 통해서 온 천하게 알려지게 되었고 심지어 단신이긴 하였지만 한국 뉴스에도 소개되긴 하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 뉴스를 시청하진 못했다. 나는 그때 뉴스 따위는 볼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자율학습에 갇혀 있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진행하는 나의 단독 프로젝트는 이 '발트의 길' 위에 섰던 사람들을 만나 나도 다시 한번 당시의 감동과 전율을 느껴보는 것이다.


헤인즈 발크 (Heinz Valk)


P1070219.JPG 노래하는 혁명의 순간들이 보이는 전시물 앞에서 포즈를 잡아주신 발크 씨


이 역사적인 순간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인물 중 에스토니아에서 내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바로 헤인즈 발크라는 노익장이었다. 나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와 같은 성을 가진 이 분은 ‘노래하는 혁명(Singing Revolution)’이라고 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경구를 창조해낸 장본인이기도 하고 당시에는 언론인과 유명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내 기억에 나는 처음에 발크 씨와는 이분 아내의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 같다. 그러나 별로 어렵지 않게 연락이 닿아 탈린 시내에서 약속이 잡혔다. 탈린 구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나 탈린 시청 쪽으로 오다 보면 단아한 도시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지하도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바로 그 찢어질듯한 지하도의 입구에 ‘인민전선 박물관(Rahvarinde muuseum)’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는 대규모 합창제가 열리는 노래 대전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민전선(영어로 Popular Front)이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각 공화국에서 자주와 독립운동을 이끌어 나갔던 정치기구를 말하는데 정당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정당 이상의 지지를 얻어 20세기 후반기 냉전체제를 붕괴시키고 소련 공화국들의 독립을 주도했던 정치단체를 말한다. 에스토니아를 비롯하여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조지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에서도 인민전선이 결성되어 독립으로 가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으며 다른 나라의 인민전선이 결성되는 데 포문을 연 곳이 바로 에스토니아라고 한다. 그 박물관은 인민전선의 시작부터 노래하는 혁명, 발트의 길까지 인민전선의 창설과 주요 활동 관련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마 그 날은 월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왜냐면 보통 박물관들은 월요일에 문을 닫는데 그날은 박물관이 문을 닫은 날이었고, 박물관 측에서는 일부러 한국에서 온 손님을 위해서 특별히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