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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Mar 26. 2023

4. 방콕에서 만난 은혜로운 죽음의 천사

방콕에서 자살하기 

방콕 공항에 도착해서는 공항활주로에서 공항건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는데 버스를 타기 위해서 이동한 잠깐 동안 대만의 열기와 함께 낯선 습기가 동시에 내 폐부를 찔렀다. 들이마시는 온기에 내 식도와 허파가 타버릴까 봐 걱정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가만히 서있다간 정말 열기에 허파가 녹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열기에 금방 적응이 되었다, 자살하려고 하는 나의 의지가 아마도 내 의지력을 강하게 붙잡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죽기 전에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던 만큼 이 도시는 담담한 심정으로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지만 너무 급박하게 찾아온 터라 난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 어디서 죽는 것이 좋을지 어디에 가면 자살을 할 수 있는 약을 구할 수 있을지....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공항 내에 즐비한  관광안내소 중 한 곳을 찾아갔다. 내가 생각했던 태국사람들과 많이 다르게 얼굴이 하얗고 듬직한 훈남이 한 명 앉아있았다. 

"시내로 나가고 싶은데요."

그가 모니털을 바라보고 무심히 대답했다. 

"어떤 것을 보고 싶으신데요?" 

난 쭈빗쭈빗하다가 엄마에게 성적표를 보여줄 때처럼 마지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내에 나가보고 싶긴 한데, 그거 말고 자살할 곳을 좀 추천해 주세요."

그 훈남 직원은 고개를 들어 흠칫하는 게 싶더니 호탕한 웃음을 짓다가 말했다.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네...."

"자살은 한국에서도 하면 되는데, 왜 굳이 태국까지 오셨어요? 한국이 자살률 1위라고 하던데."

그 직원 말이 맞기는 했다. 한국에서 죽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요.... 아무튼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직원은 잠시 숨을 삼키더니 얼굴빛도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오토바이랑 차가 많다 보니까 차도에 그냥 서있기만 해도 차에 치어서 금방 죽을 거예요. 삼센 역이라는 간이역이 방콕 시내에 있는데 거기서 셀피를 찍다가 많이 죽어요, 굳이 셀피를 찍지 않더라고 기차가 올 때 뛰어들면 충분히 잘 죽을 수 있어요. 약간 외진 곳에 가서 덩치 큰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면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구요. 차오프라야 강에서 죽을 수 있긴 한데, 꼭 사람이 꽉 차 있는 배를 타세요. 그런 배들이 강둑을 들이받고 승객들이 죽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아니면 여긴 비가 자주 오니까 그 시간에 맞춰 차오프라야 강변에서 일부러 서계서 보세요. 그리고 물담배를 엄청나게 피우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 시도해 보세요. 더 말씀드려요?"

완벽하지 않은 영어였지만 이해하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저런 내용을 마치 외운 듯 달달 이야기하는 것도 놀라웠다. 그런 사람을 이곳에서 바로 만나게 되다니. 마치 나를 위해서 그 누군가가 보내준 은혜로운 죽음의 천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맘 같아서는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살스폿 관광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었다

"여기서 국왕의 사진을 찍다가 잘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알아서 하시구요"

그리고 다시 덧붙였다.  

"이 공항에서 시내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택시 밖에 없고 여기서 구입을 하게 되면 800바트에요. 그런데 700바트까지 해드릴게요."

수완나품 공항사정과 환율에 무지한 나는 천사에게 호텔예약과 더불어 달라는 대로 돈을 지불하고 택시에 올랐다. 공항 안에서 눈을 반짝이고 나를 보고 있는 태국 여자 청소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직원의 말은 맞았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무질서하게 섞여서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시내를 빼곡하게 채운 탑들과 사원의 지붕들은 내가 열기구를 타다가 떨어지면 탑에 찔러 내장을 내보이며 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사실 열기구에서 떨어지면 어디건 간에 죽을 밖에 없다.


택시 기사는 나를 어딘가에 세워주고 지도에는 세븐일레븐과 SCB라는 은행 앞으로 가면 호텔이 있을 거라고 했다. 같은 거리에만도 그 편의점과 은행이 수십 군데다. 게다가 SCB가 Siam City Bank인지 Siam Commercial Bank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기사는 이런 낯선 곳에서 내가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한 거지? 


그래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을 붙잡아 비행기에서 배운 간단한 회화로 실례를 구하고 길을 물어보니 일단 앞으로 쭉쭉 가면 된단다. 그러다가 땀을 바가지로 흘린 나는 마침 신호등 앞에서 있는 직장인처럼 생기는 타이인들에게 또 컷훗캅 인사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영어를 잘하는 그 사람들은 걸어서 가기엔 힘들 것 같으니 택시를 타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타이어로 뭐라 뭐라 적어주며 기사에서 보여주면 된단다고 이야기하더니 옆에 서있는 택시도 잡아준다. 택시 기사는 그 사람이 써준 말과 지도를 번갈아 보더니 알았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호텔로 향한다. 망할 공항직원 같으니라고.  


그 기사 역시 꽤 유창한 영어로 왜 거기에 서있었나며 묻는다. 그리고 내가 그 큰 짐을 메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며,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리고 곧 택시를 이용할 것 같아서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단다. 공항에서도 분명히 바가지를 쓰고 온 지라 혹시 이 기사도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됐다. 그러나 바가지는커녕 미터기에 나온 요금만 받았다. 대체 태국 사람들은 영어를 왜 이렇게 잘 하는 것일까. 만 북적북적한 이 도시는 잠시 동안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 내 마음을 또 들뜨게 만들었다. 


공항 훈남이 추천해 준 짐을 풀고 잠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호텔에서는 인터넷이 공짜가 아니라서 무선 인터넷이 제공된다는 근처 호프집에 나와서 인터넷에 연결했다. 

아까 공항직원이 말해준 것을 바탕으로 해서 자살할 계획을 정리해보고자 했다. 인터넷이 공짜라고 좋아하기엔 맥주 값이 너무 비싸다. 그러나 상관없다. 난 비행기 사고로 받은 보상금이 충분하고 그 돈이면 자살을 하고도 남는다. 남는 돈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맥주나 사 먹으면 된다. 


자그마한 피처 하나를 시켰는데, 예쁘장한 직원이 잔이 비워질 때마다 와서 채워주고 간다. 날씨 때문인가 맥주가 금방 미지근해진다. 그것을 알아챘는지 그 아가씨가 뭐라 뭐라 태국말로(!) 묻는다. 내가 못 알아들은 체를 하자 다시 영어로 묻는다. 


"얼음 넣어드릴까요"


일단 나는 노트북을 열어 그 직원이 말한 곳을 검색해 보았다. 이것만은 제대로 된 정보를 준 것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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