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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Apr 16. 2023

6. 제 목적은 자살처럼 보이지 않는 자살이에요.

방콕에서 자살하기 



“우리 오빠가 공항에서 일해요, 전 그 호텔 말고 공항에서도 청소부로 근무하고 있고요. 마침 오빠한테 가려던 찰나에 당신을 본 거예요. 그러다가 당신의 이야기를 엿듣게 된 거죠.”


정말 우연인 건가? 우연치고는 너무 나사들이 잘 들어맞는다. 난 메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더 자세히 들어 보려고 얼굴을 메이 쪽으로 돌렸다. 메이는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오빠 사무실에 외국인이 들리면 거의 모두 그 호텔로 보내요. 어찌 보면 안 좋은 상술이긴 한데 그래서 당신도 그 호텔에 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전 근무하는 날도 아닌데 일부러 동료에게 부탁을 하면서까지 근무일을 바꿔서 당신을 기다렸어요. 듣자하니 당신 태국에 죽으러 온 거 맞지요?”


나이트클럽의 어두운 조명이 익숙해지자 메이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중국 피는 섞이지 않은 태국인 가문에서 태어났는지 얼굴은 가무잡잡했지만 얼굴이 빛나보일만큼 피부에 윤기가 흘렀다. 몸매가 잘 드러나는 붉은 원피스와 맞추려 했는지 입술엔 붉은 립스틱이 칠해져 있었고 살짝 향수를 뿌린 것 같았다. 술이 적당히 들어가서인가 도드려저보이는 메이의 풍만한 몸매는 황홀한 기분을 자아냈다. 어차피 나도 죽으러 왔고  이 여자도 죽으려 하는 것 같은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강렬한 관계를 같이 가져보고 죽는 게 어떻겠냐고 묻고 싶어질 만큼 육감적인 몸매였다. 


나는 그런 표정을 감추려고 얼른 메이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사실 자살을 하기 위해 여행을 하긴 하는데 꼭 그게 태국이어야 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제 목적은 자살처럼 보이지 않는 자살이에요. 그렇게 죽을 곳만 있다면 그게 어느 곳이건 상관없어요.”


무덤덤하게 이야기해보려 했으나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소리를 질러야 하다 보니 혈압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설픈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지라 서로의 의사가 잘 전달되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말은 나름 세세하게 전달한 것 같았다. 메이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나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내 말이 제대로 들리기나 했을까. 


나는 그래도 상관없이 메이에게 자살여행을 떠나기로 작정한 날부터 오늘까지 벌어진 일들을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그런 이야기라도 주고받고 있어야 나름 나이트클럽에서 이야기할 사람이 있는 댄디한 외국인처럼 보일지도 모르니까.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우리는 술을 홀짝이면서 잠시 말을 끊었다. 사람들은 연신 팔을 흔들며 물결처럼 출렁이거나 쏟아지는 조명에 눈이 팔려서 계속 감탄을 멈추지 않거나 남녀가 끌어안고 몸을 흔들기도 했다. 모두 나와는 관계없어 보이는 풍경이었다. 메이와 함께 있으니 적어도 혼자 온 궁상맞은 동양인이라는 오해는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끝내 대화 중 벌어진 침묵의 틈을 이기지 못하고 메이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메이 씨는 왜 자살을 하려고 해요?”


메이는 뭔가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3년 전 싱가포르에서 돌아오자마자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어요. 언제나 제 곁에 계실 것 같았던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거예요. 길을 건너시다가 오토바이에 치인 거였죠.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약 일주일 간 계시다가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절에서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처음 보는 일기장을 하나 발견했어요. 아버지가 사망을 예상하셨는지 아버지의 인생을 정리한 일기장이었어요. 어렸을 때 이야기, 친척들 이야기, 동네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가 들어있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면서 일기장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 놀라운 구절을 하나 발견했죠. 내 손으로 직접 장례를 치르고 온 아버지가 내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토록 내 곁에서 잘 보살펴 주시고 든든한 나무처럼 계시던 분이 제 친아버지가 아니라니..... 다른 식구들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어찌 되었건 오빠도 저랑 친남매는 아닌 거잖아요.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 존재에 대한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친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거지, 나는 왜 버려진 건지. 돌아가신 아버지는 왜 이런 식으로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신 거지. 뭔가 부끄러우셨던 건지. 도저히 답변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어머니한테라도 물어볼 텐데 어머니도 제가 싱가포르에 가기 전에 이미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오빠랑 둘이서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죠. 오빠도 장례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은데 별 이야기를 안 했어요.”


메이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 후 저는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왜냐면 이런 번민들이 너무 지겹고 짜증이 났거든요. 게다가 싱가포르에서 잘 나가던 제 직장을 버리고 태국으로 왔는데 제 사는 꼴이 너무 신물이 났어요. 하지만 막상 죽을 용기는 없고.... 그래서 맨날 제 자신을 세뇌하면 살았어요. 난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다. 난 평생을 살아도 그 아무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다. 넌 실수투성이의 인생이다. 계속 되뇌었죠, 내가 얼마나 병신 같은 인간인지, 사회에 적응 못하는 패배자라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죽게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당신을 만났으니 내가 되뇌었던 것들이 현실이 된 것 같았어요. 저처럼 병신 같은 인간이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죠.”


메이의 말에는 얼핏 수긍이 되지 않았으나 나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주제넘게도 메이에게 이런 질문을 해버렸다. 


“다시 싱가포르에 돌아가면 되지 않아요?”


마치 죽을 사람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하는 상담사처럼 분수 넘고 오만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메이는 그다지 여의치 않고 답변을 해주었다. 


“아내가 있는 직장 상사랑 연애를 해서 임신까지 했는데 그만 아이를 사산했어요. 직작 상사랑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러면 저한테 좋을 게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직장 상사는 여전히 나를 잡아두려고 했는데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의 감점을 가지고 있는 내 사진이 수치스러웠어요. 상사는 내가 원하면 부인이 모르게 싱가포르에서 정착할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원하면 남아서 일을 할 수 있었는데도 떠나온 게 실수였죠. 태국에서는 그 정도 돈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주 적어요. 모아놓은 돈도 없고요. 이런 병신 같은 결정이 어디 있어요.”


이 정도면 메이의 이야기는 충분히 들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연히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올 것이었다. 


“그럼, 어디서 어떻게 죽어요?”


나의 갑작스럽고 노골적인 질문에 메이는 살짝 당황하는 듯한 느낌이었으나 머리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우리 오빠로부터 삼센역이라는 역 들었죠? 역이 아담하고 예뻐서 사람들이 셀카를 찍으러 많이 가요. 그러다가 적잖이 기차에 치어 죽죠. 우리 같이 거기에 가요. 역은 작은 데 빠른 열자들이 안 서고 자주 지나가요. 거기서 같이 뛰어들면 돼요.”


나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요. 기차에 뛰어드는 거라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럼 뭐 하러 태국에까지 왔겠어요.?”


“그럼, 어떻게 죽고 싶은데요?”


“죽더라도 최소한의 위엄은 지키고 싶어요. 시신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찢기는 죽음은 싫어요.”

메이는 아까와는 달리 약간은 째려보는듯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죽고 싶긴 한 거예요? 죽고자 하는 의지가 아직 없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죽을 거 살이 찢기고 뼈가 으스러진들 어때요? 청소할 사람에게 미안해서 그래요?”


나는 잠시 말이 없어졌다. 메이의 말이 맞기는 하는데 뭐라 받아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적어도 집에 유골함이라도 보내야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기차에 뛰어드는 일은 도무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살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난 왜 여전히 죽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내 생각을 읽은 듯 메이가 말했다.


“그럼, 거기서 제가 죽는 거라도 도와주세요. 저를 따라 죽거나 아니면 자살 생각 따위는 싹 잊고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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