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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앤 Oct 24. 2024

까불어도 괜찮아

잉여의 반란은 시작되었다.



"여보, 나 까분 거 같아. 이럴 줄 몰랐는데 어쩌지?"

"괜찮아, 까불어. 나도 까부는 중이야. 나도 11월 2일 시험이야. 남한테 피해 안 주는데 뭐 어때?"




 과제와 씨름하는 나를 격려하며 다독이던 남편에게 무선 마우스 고맙다는 말만 전하고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그런데 이 정도면 피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조악한 과제를 첨삭할 은경 선생님을 떠올리니 부끄럽고, 죄송해 폐 끼치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하루종일 몸 쓰고 마음 쓰며 종종거리는 거 같긴 한데 표가 나지도 않고 빛도 안나는 일을 하며 나는 점점 빛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곤 했다. 괜찮아,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내 빛이 네게로 가 네 삶을 더 밝힐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러나 실은, 괜찮지 않았다. 괜찮은 척했을 뿐이다. 어느 순간 잉여가 아님에도 잉여가 된 기분을 느끼는 나를 달래기에 이 허기짐은 너무 길고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날로 생기 있고 찬란하게 돋아나는 너를 보며 그 싱그러움과 반짝거림이 문득문득 부러워 묘한 질투가 느껴졌다면 나의 모성은 의심받아야 할까? 그 싱그러움에 크게 기여했다손 치더라도 풀리지 않을 이 꽁한 마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것이다. 타인의 이해 영역이 아닌 오로지 나의 영역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해를 바랐던 푸념이나 넋두리가 되려 상처와 다툼으로 돌아올 수 있는 내 안에 요단강 내지는 삼도천.     

 




마음속에 그 깊은 강을 파 놓고 모른 척 살고 있었던 건 비단 나뿐 아님을 밴드에 올라오는 그녀들의 글을 읽으며 느낀다. 이 묘한 동질감과 애틋함. 그래서 또 깨닫게 된다. 이미 잘 알고 있어 이러한 장을 만든 거구나. 이 애틋한 시선으로 이미 바라보고 계시겠구나.


하여 나는 이 조악한 과제를 맘 편히 제출하기로 했다. 이것이 내 맘 편하고 싶은 핑계여도 괜찮다. 다만 나의 이 소심한 고백이 보잘것없다 자책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잉여의 반란일지 모르는 이 일의 끝이 어떠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으로선 내 안에 보름달이 둥둥둥 떠올랐다는 것만이 확실하고 선명할 뿐이다. 이 끝이 개기월식이 될지, 달을 찾아 떠나는 달탐사가 될지, 그리하여 종국에는 그 달에 발자국을 남기고 올 역사적 사건의 시초가 될지는 알 수가 없다. 그게 무엇이든 나는 오늘의 이 설렘과 분투가 그저 반갑고 좋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미래를 위해 나의 오늘을 불쏘시개로 쑤셔 넣는 것 같은 기분에 자괴감에 빠지던 내가 아니던가. 삼도천에 빠질 듯 휘청이던 내가 오로지 나를 위해 오늘을 사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꽉 차게

만족스럽다.





그러니,

결과야 어찌 되었든 이 아줌마를 그냥 내버려 두어라.


잉여빵은 그동안, 마이 먹었다 아이가.





 

 이 글은 브런치 작가 도전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던 어느 날, 버거운 그 주 과제를 받아 들고 막막해서 푸념하던 내 모습을 스케치한 소소한 글이다. 별 것 없는 이 글을 발행하는 것은 아직 이곳에 작가로 서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을 동기들을 응원하고 싶어서다.


 우리는 이미 한 인간을 키우는 중이며, 그러는 사이 스스로도 키우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눈물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제 힘으로는 우는 것밖에 못하던 아이가 일어나 걷는데 만도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던가. 그러니 우리의 이 첫걸음이 다소 늦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우리 뒤에는 '다정한 관찰자'인 선생님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 매니저 선배님도, 으쌰으쌰 응원하는 코 흘리개 동기들도 있으니 말이다. 합격한 자의 가소로운 응원이라 해도 달게 받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다. 그래서 함께 커 나갈 생각이다. 이런 내 마음까지 꺾을 수는 없으니 부디 당신의 좌절을 꺾고 일어나 쓰고 또 쓰길 바란다. 그래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성경 구절을 몸소 증명해 주길 바란다.

건투를 빈다. 동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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