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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앤 Nov 02. 2024

어서 와. 이런 시월드는 처음이지?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세 가지 맛 시월드(ft. 며느리 블루스)

 


 첫 번째 그녀는 투게더가 문제이고, 두 번째 그녀는 스크류바가 문제이고, 세 번째 그녀는 쌍쌍바가 문제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시어머니가 존재하고 그녀들의 삶의 궤적을 따르느라 장마철 질척한 운동화를 신은 것처럼 어기적거리며 걷고 있는 며느리 또한 존재하는 법.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져 묻겠다는 취지가 아님을 먼저 밝힌다. 다만 그 질척한 운동화를 벗지 못한 채 계속 걸어야 하는 이 시대 며느리들의 푸념을 담은 블루스 같은 것이라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첫 번째 그녀의 투게더는 철철이 좋은 식재료를 공수해다 주고 틈틈이 아들과 손자 입에 맞는 반찬도 해 나르는 열혈 시어머니다. 그것이 본인에 자식 사랑하는 방법이자 기쁨으로 아는 정 많은 시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반찬을 받아 든 며느리 표정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어디 며느리가 좋아하는 반찬이 아니어서 이겠는가. 그런 건 언감생심 바랄 사람도 아니다. 사는 거리가 20분 남짓 가까운 것도 한몫 거들고 있지만 문제는 투게더병이 심하다는 것. 그녀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시누이 가족까지 언제나 함께 모아서 시시때때로 밥을 먹고 긴 연휴가 생기면 캠핑에 가족여행에 단합대회 분위기를 유도하시는 그 투게더병이 문제인 것이다.


" 나 가족여행 또 가야 되나 봐."


" 칠순 기념여행 갔다 온 게 몇 달이나 됐다고 또 가?"

" 지난 연휴에 캠핑도 갔다 오지 않았어?"

"이번 소집 목적은 또 뭐야?"


"평생소원"


"평생을 왜 또 붙이시냐? 아주 거절금지 대못 박으셨네"

"아무리 여행경비를 대주셔도 나는 못한다"

"어떡하냐, 우리 수진이. 베트남 가서 쌀국수, 분짜 놔두고 투게더 또 먹게 생겼으니"


듣고 있던 언니들은 벌떼같이 들고일어나 지친 그녀를 대신해 고생하는 여동생 달래는 친정언니처럼 열불을 냈다. 투게더도 가끔씩 다 같이 숟가락 꼽고 먹어야 즐거운 추억이 되는 것이지 시시때때로 그것도 시누이집까지 10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모시고 이벤트 행사업체 만년 대리 같은 며느리 노릇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아무리 싸돌아다니는 거 좋아하는 대문자 E 며느리도 이제는 지쳐서 시름이 깊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 그녀의 스크류바는 짐작대로 배배 꼬여 알 수가 없는 속을 가진 시어머니와 3년째 대치상태이다. 서로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가시방석 같은 그런 상태이다. 여기는 상속, 땅이 걸려 있어 더 애매하고 어려운 사정을 갖고 있다. 요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대한 속 시원한 지원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처갓집 도움으로 집을 늘려갔으나 결정적인 경제적 지원이 필요했던 그때 부모는 매몰찼고 서운했던 아들이 돌아서 버린 경우다. 완고한 남편의 입장이 변하지 않아 여자도 두 손 두 발 들고 기다리는 중이다. 이제 그녀는 남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헷갈리는 중이다. 그냥 세월이 흐르기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대치만 하고 있다.


"명의만 남편 거였어. 팔 수 없는 땅. 이 정도면 사기 결혼 아니니. 세금 계속 내서 뭐 하나 싶고 세금 고지서 날아오면 짜증 나 죽겠어"

"그 땅을 팔자 한 게 나라고 생각하시나 봐. 그 땅 팔아 나온 돈을 내가 쓰는 게 싫은 거겠지"

"니들 호미 하나씩 사놔. 안되면 나 그 땅에 감자든 고구마든 심어야 덜 억울할 거 같아. 니들 먹을 만큼 캐가. 아니 그거 캐서 팔아 볼까. 진우 학원은 보내야 할 거 아니니."


"언니 언제 심을 거야. 말만 해. 나 농부의 딸이다."


" 파는 것도 걱정 마. 나 이 동네 맘 카페 최우수회원이야. 공구 띄워서 우리 진우 학원비 벌어보자"


듣던 동네지기들은 근심 어린 그녀를 위로하느라 헛소리 같은 농담으로 물 먹은 패딩처럼 축 쳐진 현실을 꾹꾹 눌러 털어내는 탈수기처럼 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아파트 이자도 부담스러운데 밤낮 토끼눈을 해서 합심했던 부부의 주식까지 반토막이 나버리니 여자는 멘붕에 빠졌고 결국 집을 팔고 전세살이에 들어갔다. 그래도 더 좋은 학군으로 가 큰아들 교육환경을 업그레이드해 줬다는 걸로 상처 입은 자존심을 달래며 말이다.





 세 번째 그녀의 쌍쌍바는 사연이 깊고도 복잡하다. 왜 쌍쌍바 일 것 같은가. 욕이 나올 정도로 힘들다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이유만은 아니다. 여기는 주요 등장인물이 한 사람 더 나온다. 말리는 게 더 밉다는 시자가 붙은 것 중에 가장 얄밉고 비겁한 캐릭터 시누이 말이다. 평생 남편에게 한이 많은 이 시어머니는 장남을 남편이자 삶의 기둥으로 알고 사셨고 결혼한다고 데려온 며느리는 세상 제일 잘난 당신 아들에게는 턱 없이 부족한 여자이며 아들을 뺏긴다는 느낌에 곱게 보지 않는 그런 류에 시어머니였다. 이도 부족해 철딱서니 없고 윗사람 노릇 못하는 시누이까지 합세를 해 쌍으로 덤벼드니 쌍쌍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행히 여자는 무소의 뿔 같이 대찬 성격에 할 말도 하고 기도 죽지 않는 잔다르크 스타일이었다. 언제나 쌍쌍바 보다 두 수를 먼저 내다보며 기가 막힌 상황판단으로 대처하니 제 꾀에 나가떨어진  쌍쌍바가 뒷목 잡고 쓰러지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녀의 아우라에 눌렸는지 이제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는 상태다.


" 이번주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내려 보냈어."


"뭐야, 승현이 아빠 경산 또 간 거야. "


"괜찮아, 언니. 내가 어머님이랑 통화해서 입장정리했어."

"아버님 병세도 안정기 접어들었으니 이제 어머님도 승현이 아빠 너무 몰아세우지 마시라고"


"그래 가까이 사는 시누이가 있잖아. 너 혼자 주중 주말 애 셋이랑 지지고 볶고 너도 좀 쉬어야지."


"언니, 발목 철심제거 수술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목요일"


"목, 금 애들 등교할 때는 내가 살필게"

"하교 후 학원 출석 확인은 내가 할 수 있어"


그녀가 어찌 잔다르크가 될 수밖에 없었겠는가.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이다. 가슴 아픈 아이까지 품어야 하는. 누구보다 행복을 자주 느껴 그것으로 상쇄하고 힘을 얻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칼을 빼들고 당당히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직 오늘의 행복만을 위해서.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정신없이 휘두른 칼에 스쳐 스스로 상처입지 않았는지 살펴주고, 그녀의 앞길에 자질구레 떨어져 있는 휴지를 치워주는 것. 어쩌다 주운 오백 원짜리 동전 같은 존재, 딱 그 정도의 오지랖을 품은 동네 푼수 아줌마로 남는 것뿐이다. 




이것이 요즘 즐겨 듣는 단짠 단짠하다 마라맛으로 끝나는 우리들의 며느리 블루스이다. 19세기 중엽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자 미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음악처럼 우리의  하소연 내지는 푸념도 딱 그 정도 의미인 것이다. 누구 하나 더 나가 투쟁가를 부르지도 이별가를 부르지도 않는다. 제 차례 블루스 한 곡씩 뽑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 발등에 떨어진 그날의 일과를 일사불란하게 해치우며 하루를 살아낸다. 현세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 블루스를 한다는 에릭 클랩튼. 갱년기 길목에 들어서 휘청할 이 여인들에게 이 정도 블루스는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블루스는 19세기 중엽, 미국 노예 해방 선언 이후 미국으로 넘어온 미국 남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창시한 장르 혹은 음악적 형태를 말한다.

40년 넘게 블루스 음악을 하는 것은 현세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예요. 태어나서 처음 들은 음악이 블루스였고 방황하던 사춘기에도 의지할 것은 블루스뿐이었죠. 내 언어와도 같은 이 음악의 순수함을 믿어 왔고 언제까지나 그럴 것입니다.   <에릭 클랩튼>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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