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에게 짓눌려 바스라졌다.
2017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하고 잔혹한 시간이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내 믿음은 그 해에 완벽하게 부서졌다. 세상의 모든 악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악에 물어뜯기지 않으려 반항하던 내 육체와 정신은 너덜너덜하게 닳아 바스라지기 직전이었다. 소멸하기 직전인 날 위해 유언장 대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해의 기억들을 모두 글 속에 토해내고 나면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날 아프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 잔인했던 2017년의 상처와 고통을 되짚으며 글을 마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 심은영의 소설 '달팽이'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