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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Sep 06. 2023

초등 1학년 아이에게 유럽 여행 이란?


이번 여름휴가 때 초등학생인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 지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부럽다"라는 의견과 "유럽? 힘들 텐데?? 차라리 휴양지를 가지 그래?"


나는 휴양지를 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임을 안다. 몹쓸 성실성 때문이다. 편히 쉬지 않고 인고의 검색 끝에 볼거리를 찾아갈 게 분명하다.


영국 여행은 나의 로망 중 하나였기도 하다. 그렇게 두 아이들과 여행길에 올랐다. 짧은 일정 탓이었을까? 아니면 큰 기대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쉬움 없는 여행을 즐기고 오겠노라 다짐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모으고 일정을 빈틈없게 짰다.


나의 계획은 이랬다. 오전에 관광지 한 곳, 점심 겸 휴식, 오후에 관광지 한 곳. 물론 아이들의 체력과 관심사도 고려했다. 목적지를 가기 위해 걷다 보니 스마트 워치의 걸음수가 2만 보에 육박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는 다리 아프다고 징징 걸렸고 집에 가고 싶다고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해도 되는 것보다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말했다. 길거리에서는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가 되니 장난치지 말 것,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과 부딪칠 수 있으니 앞을 잘 보고 다닐 것, 사람들 많은 박물관에서는 손 놓지 말 것 등등.


주위 사물에 관심이 많아 종종걸음을 멈추고, 옆을 보며 걸어 다니는 둘째는 나에게 더 많은 잔소리를 들었다.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한 후 숙소로 오면 긴장이 풀어지며 아이들에게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애들은 좋은 기억을 더 많이 가졌을 거야."라며 나를 다독였다.



나는 문득 둘째가 여행을 마음에 어떻게 아로새겼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며칠 전 활동지를 통해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는 여행 가기 전 런던 아이와 빅벤을 직접 볼 수 있다며 흥분하던 아이였다. 패딩턴 인형을 기념품으로 사 오겠노라 고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들 보다 더 강렬했던 딸아이의 여행 기록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평소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해보기'보다는 오히려 평소보다 행동의 가짓수를 줄이는 데서 나온다. 사진을 많이 찍는 것보다는 최대한 사진기를 덜 쓰고 오랫동안 걸어 다니며 수많은 풍경들을 가슴에 담는 것이 훨씬 기억에 남는 여행이다.



사진 찍기조차도 풍경에 대한 소유욕임을 깨닫게 되니 디지털카메라에 담긴 사진보다는 마음속의 스크린에 담는 풍경의 꿈틀거림이 훨씬 따뜻하고 풍요롭게 느껴진다. 사진 찍지 않고 여행하기, 한국 음식 찾아다니지 않고 철저히 현지 음식으로 버티기, 호텔에서 수건 한 장만 쓰기, 인터넷 하지 않기,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하지 않기, 이런 사소한 절제의 노력을 계속할수록 몸은 자유로워지고 생각은 해방되었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욕망으로부터, 익숙한 집착으로부터 내가 해방되고 자유로워지는 희열을 느꼈다. 그것들이 없어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바로 그것이 없어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깨달음. 그것은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 예행연습이기도 하고 욕망의 거미줄에 내 소중한 자아를 내주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p67, 정여울 저, 홍익 출판사




비움의 미학은 집 정리할 때만 유효한 게 아닌데 나는 여행의 낭만보다는 팍팍한 삶만 보여준 게 아닐는지.

다음번 여행 땐 조바심을 내려놔야지. 머릿속으로는 공원에 두 아이들을 풀어놓고 커피 마시며 온종일 공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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