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일 년간 몸 담았던 돌봄 교실은 크리스마스이브를 기점으로 운영이 종료되었다. 아이는 학교를 마치면 그곳으로 가 해가 지도록 또래 친구들, 한 살 많은 형, 네 살 위의 누나 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교실 안에서는 보드게임을 하고, 밖에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 땡 등을 하며 놀았다. 작은 상자 텃밭에 토마토와 상추, 치커리 등을 키우기도 했는데 보드랗고 싱싱한 초록색 이파리는 아이 손에 들려 종종 집으로 와 저녁 찬거리가 되어주었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하는데 정말로 그랬다. 학교보다도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인지라 나도 아이도 돌봄 교실에 정이 담뿍 들었다.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다 카드와 쿠키를 준비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카톡 메시지로 대체된 시대에 나는 다이소에서 카드를 만지작 거리며 오랜만에 설렜다. 한참을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커다란 복주머니와 2022년이 대문짝 만하게 쓰인 카드를 집어 집으로 왔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한 줄 쓰고는 더 이상 쓸 말이 없어 애를 먹긴 했지만 다 쓴 카드를 보니 내심 뿌듯했다. 카드와 함께 보낼 쿠키는 빵집에서 샀다. 러스크와 초코 파이를 골고루 사 와서 포장지에 나눠 담으니 아이들이 다 함께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쿠키를 먹는 장면을 떠올랐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것은 현 시국에서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에 마스크를 내리고 가림판 없이 다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것은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것', 그리고 '당신과 있어도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안탑깝게도 돌봄 교실은 이 두 가지가 충족되지 못했다.
<교수처럼 문학 읽기>의 저자 토마스 포스터는 문학작품 속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 것은 언제나 친교 행위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친교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공유와 평화를 의미하기도 하고, 숨겨진 욕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과 유대관계가 있음을 내포하기도 한다. '같이 밥 한 끼 먹는 것'에 뭘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현실에서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는 건 배를 채우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카타르에서 거주할 때 일이다. 기존의 살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새로운 동네에서 처음으로 친해지게 된 이웃은 공교롭게도 히잡을 쓴 무슬림이었다. 세 아이를 키우는 다둥이 엄마 이기도 했던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놀이터, 우리는 얼굴이 눈에 익자 서로 인사를 하며 통성명을 했다. 그녀의 둘째와 셋째는 나의 아이들과 동갑이어서 이따금 같이 어울려 놀기도 했다. 무료한 일상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그녀와 급진적으로 친해진 건 티타임을 가지면서이다. 동네 이웃들과 함께 빵과 음료를 마시며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녀는 자신이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영국 국적을 가진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카타르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것 등을 이야기했다. 한 번은 라마단 때 만났는데 금식 중인 줄 알았던 이웃은 현재 몸이 좋지 좋지 않은데 이 상태로 아이 셋을 돌보기엔 무리라서 금식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녀와 나는 종교만 다르지 똑같이 육아의 고단함을 느끼는 한 아이의 엄마였고, 외로움을 느끼는 이방인이었다. 그녀는 라마단이 끝난 후 만찬을 즐긴다는 이드 알 피트르 기간에 볶음밥을 만들어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미묘한 맛 때문에 가족들은 외면했지만 나는 밥알을 입안 가득 씹으면서 그녀의 호의, 우리가 함께한 시간에 대해 떠올렸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곱게 포장된 쿠키를 보며 이게 다 뭐냐고 했다. 나는 말없이 아이의 손에 카드와 쿠키를 들러주며 함께 나누어 먹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온전히 전달되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