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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Feb 22. 2022

하면 되기야 된다

하면 된다. 되기야 된다. 된다라는 건 결과적 측면이다. 과정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측면이다. 된 것만 봤을 때는 한 건 잘한 일이다. 그러나 되기까지의 고통과 인내를 생각해본다면 한 게 과연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되었을 때만 보기 때문에 되기 전은 잘 보지 못한다. 물론 되었다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한 가치를 평가절하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렇지만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 무리하게 하면서까지 되게 할 것이냐, 무리하지 않고 안 되는 그대로 둘 것이냐 말이다.


1. 중요한 회의가 잡혔다. 중요한 회의이기 때문에 검토해야 될 사항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보고도 여러 번 해야 했다. 여러 번의 보고 과정 중에서 기존 보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상사가 기존의 지시를 번복하고 수정하는 일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인쇄소에 이미 맡겨 놓은 회의자료를 수정해야 될 사항들이 생겨버렸다. 인쇄소에 다급히 전화를 하니 이미 인쇄 작업이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내일이 회의이기 때문에 지금 수정을 하게 되면 인쇄소는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사가 얘기한다. 해달라고 요청하라고. 저번에도 그런 적 있지 않았었냐고, 요청하면 해 줄 거라고.


2. 회사에서 필요할 물품들이 있어서 구매를 하게 되었다. 대량으로 구매를 해야 돼서 여러 군데서 견적서를 받아서 가격을 비교하게 되었다. 동일한 제품을 가장 낮은 가격으로 제시한 업체를 선정하였다. 견적서를 제시했기 때문에 제시한 가격으로 구매를 진행하려고 했다. 상사가 얘기한다. 깎아보라고. 견적서는 이미 제시했지만 그 가격은 판매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제시한 금액이고, 계약 대상자로 선정된 다음에 다시 한번 가격에 대해 네고를 해 보라고.


밤을 새워서라도 자료를 수정해달라고 요구를 했고, 결국 인쇄소에서는 밤을 새워서 자료를 수정해서 다음날 회의에 늦지 않게 가져왔다. 자료를 완벽히 준비해서 회의도 잘 끝낼 수 있었다. 물품의 가격을 최대한 깎아서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예산을 절감할 수 있어서 회사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하니까 되네? 된다. 하니까 정말 됐다. 그런데 왜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걸까.


일단, 무리한 요구인 것 같다. 비정상적인 요구인 것 같다. 그래서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께름칙하다. 상사는 하면 되니까 하라고 하지만, 하는 게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 요구를 해야 하는 나 조차도 정상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데 요구를 받는 쪽은 말해서 무엇하랴. 요구를 하면 항의를 받을 것 같고, 화를 낼 것 같고, 관계가 불편해질 것 같다. 더불어 요구의 방법이 고민된다. 웃으면서 요구해도 불편하고, 강압적으로 요구해도 불편하다. 웃으면서 요구하면 돌아이처럼 보일 것 같고, 강압적으로 요구하면 내가 쓰레기가 될 것 같다. 바짓가랑이 붙잡고 부탁해보자니, 너무 비굴해 보인다. 요구의 내용 자체가 무리하니, 무슨 수단과 무슨 방법을 통하더라도 결국 불편할 수밖에 없다. 돈을 가지고 있는 쪽이 갑이라곤 하지만, 아무리 갑이라도 정도가 있고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선을 넘는 요구인 것 같다. 


흔히들 "하면 된다"는 역경을 이겨내고, 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면서까지 혼신을 다하는 경우에 적용하는 말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한 경우에는 불편함과 어려움을 내가 감당할 것이  말 것이냐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잘 된 결과에 대한 보상도 나의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난도 나의 것이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갑을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에 "하면 된다"를 적용할 때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냥 나 혼자 열심히 하고 나 혼자 밤을 새우는 일에 "하면 된다"를 적용할 때는 몸은 불편해도 마음이 불편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회사일이란 게 나 혼자 하는 일이란 건 사실 많이 없다. 누군가 관계되어 있고, 누군가는 같이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하면 된다"를 실천하자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상사의 눈에는 일을 잘하는 것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결국 해 낸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해 본 사람은, 해 봄을 당해본 상대방에 입장에서는 결국 당한 것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불편한 상황을 감수하면서, 그리고 훌륭한 결과를 기대하면서 해 볼 것이냐, 아니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타협해 볼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들이 자꾸만 생겨나게 된다. 과정에서의 갈등 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최선일진대, 쉽지가 않다. "하면 된다"고 하는데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되는 건" 맞는지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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