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23살에 느껴버린 '걷기'의 매력
산티아고 순례길와의 첫 만남
2013년,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외국어고 스페인어과에 재학 중이던 나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스페인 한 달 여행을 가게 됐다. 스페인까지 간 김에 포르투갈도 보고 오면 좋겠다고 생각해 넣은 여행지가 바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였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포르투에 가면 되겠다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넣은 도시. 바로 그 도시가 나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사람들이 다 배낭을 매고 있어. 여기 배낭여행지로 유명한 건가?"
"어 그러네. 뭐지?"
뭔가 분위기가 낯설었다. 여느 여행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랄까. 초췌한 몰골의 사람들이 큰 배낭을 매고 걸어 들어왔다. 4명 이상의 사람들이 원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배낭을 내팽겨치고 광장에 드러누웠다. 그들의 얼굴엔 환희가 보였다. 눈빛이 반짝였다.
알고보니 내가 생각없이 넣었던 이 도시는 순례지로 유명한 도시였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프랑스 생장부터 800km를 걸어온 순례자들이었다. 그제서야 그들의 몰골이 왜 그렇게 초라했는지, 왜 그들이 대성당 앞에서 그렇게 드러눕고 춤을 췄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도 성인이 되면 꼭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겠노라고.
이때부터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지도 못한 주제에, 순례길 빠순이(?)가 된 것이. 고등학교 수업에서 자유주제로 발표를 하라고 하면 무조건 “저는 성인이 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습니다.”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주제로 삼았다. 늘 품에 안고 있었던 버킷리스트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가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016년, 드디어 처음으로 순례길에 오르게 되었다. 기간은 3주, 거리는 480km.
첫 순례길은 실수 투성이었다. 우선 배낭의 무게가 적당하지 않았다. 배낭은 몸무게의 1/10 정도로 준비하는 게 국룰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중요한 것을 몰랐다. 필요한 것들을 싸다보니 무려 15kg가 되었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대로 들고 갔다! 그 안에는 노트북(!), 고데기, 원피스 등이 있었다. 첫 날 20km를 걷고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속으로 천 번 외쳤다. 인간적으로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다음 날 우체국으로 짐의 일부를 산티아고로 보내고, 3kg 정도를 줄였다.
택시도 많이 탔다. 20살의 나는 근성이 없었나보다. 한 5-6번 정도 탄 것 같은데, 3주 동안 그만큼 탔다는 것은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탔다는 소리다. 심지어 사아군~레온 구간은 기차를 타고 패스했다. 고작 480km밖에 안 걸었으면서, 그 중 상당 부분을 바퀴의 힘을 빌려 이동했다니. 순례자로서 수치다.(ㅎㅎ..) 마지막으로, 일기와 사진의 부재가 참 아쉬웠다. 걷는 중간 중간 사진 찍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사진을 몇 장 남기지 않았다. 사실 일기는 하루도 빠짐 없이 꼬박꼬박 썼지만, 귀국 후 아이폰이 벽돌이 되면서 다 날라갔다. 백업 안해둔 내 잘못이지만 정말 속상했다.
그래서 2019년 여름, 다시 떠났다! 이번엔 순례길을 ‘유럽여행의 일부’로 넣지 않고, 순례길 자체를 여행의 목적지로 삼아서 말이다. 부르고스가 아닌 프랑스 생장부터 시작해 프랑스길 800km를 다 걸을 계획을 세웠다. 배낭의 무게는 9kg로, 3년 전과 비교해서 많이 줄였다. 미러리스 카메라도 챙겼고, 순례길 전용 다이어리도 ‘직접’ 만들었다. 절대 3년 전처럼 후회를 남기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준비했지만, 역시나 아쉬운 점들이 또 생기긴 했다.
이제부터 두 번째 순례길에서 겪고 느꼈던 것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브런치에 올려볼까 한다. 목적은 ‘개인적인 추억팔이’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날 하나의 동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