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을 것들에 대하여
스페인- 바르셀로나(Barcelona)
십여 년 전 직장 선배 한 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에서 결혼을 했어요.
여자 나이 서른이 넘으면 큰 일 나는 줄 알던 사람이라
식을 서둘렀던 것으로 기억해요.
신랑신부 둘 다 무교인데 남편분이 식장으로 여길 골랐대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그대로일 장소가 어디일까'에 대한 답이었다네요.
성당 결혼식은 부부 중 한 명만 세례를 받아도 된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남편분만 세례를 받았고
결혼식 후엔 발길을 끊었답니다.
남편분의 바람대로 그들의 '결혼식장'은 무궁토록 그 자리에 있겠지요.
그 선배와는 결혼식 얼마 후부터 연락이 끊겨 지금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어요.
사라지지 않을 것에 의지했던 그들.
자신들의 결혼서약을 잘 지켜나가는 중이면 좋겠군요.
저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마드리드로 넘어와
세비야, 그라나다를 거쳐 바르셀로나로 갔습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긴 일정이었고 기대만큼 좋았습니다.
가장 흥분됐던 건 FC 바르셀로나 경기 관람이었어요.
처음엔 티켓값에 포기했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경기 당일 아침 일찍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캄프 누(Camp Nou)로 갔어요.
거의 매진이고 가장 싼 좌석 몇 개가 남아있었어요.
저는 3층 꼭대기 좌석을 한 개 샀습니다. 6만 원이 넘었어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였는데
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가 각각 한 골씩 넣어
홈팀이 3대 1로 이겼어요.
홈관중들에 동화되어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유럽에서 제일 큰 축구장, 수용인원 십만.
그럼에도 경기장 입출입에 아무 불편이 없고 밀물과 썰물처럼 부드럽더군요.
그날 저는 그게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스페인이 축구로 유명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재 그 슈퍼스타들은 모두 다른 클럽으로 갔지만
바르셀로나 관중들의 열정과 질서는 변치 않았겠지요.
그게 곧 그들도 자부심 아니겠어요?
때론 GDP보다 시민의식이 국가의 지표로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많은 여행자들을 카탈루냐로 불러들인 건 아마 그분일 거예요.
저 또한 저항 없이 이끌려왔죠.
도시 전체가 예술이라 느낀 건 파리 이후 10년 만인 것 같군요.
걸음걸음 공기 중의 영감을 흡수하는 느낌이랄까요.
책에서만 보던 건물들이 길에 주욱 서 있어요.
시내를 걷거나 버스 타고 지나다 보면
산파우병원, 구엘공원, 카사밀라, 카사바트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이
그냥 거기 있는 거예요.
제 고향의 상징이 된 건축가.
자신의 유물들이 영원토록 고향을 빛내겠지요.
제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다고 하니
십 년 넘게 봬온 치과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언젠가는 고향이 그리울 날이 있을 거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현재, 요새 부쩍 그 말이 떠올라요.
제 고향에도 누구누구 이름을 딴 장소들이 있는데 자랑스럽다기보다는
굳이 이름을 저렇게 넣어서 꼭 표시를 해야 되나, 했거든요.
근데 그들이 열심히 살아온 트로피인 것도 같군요.
저도 언젠간 고향에 더 당당해지고 싶네요.
지금으로선 요원하지만요.
가우디는 미사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노면전차에 치여 3일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볼품없는 행색 때문에 노숙자로 오해받아 무시받는 사이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거예요.
허망한 귀로네요.
그의 사후 곧 100년이 되어갑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41년째(2023.1월 현재) 공사 중이에요.
애초에 공사기간을 200년으로 잡았었기에 계속 여유롭게 바라봐주면 되겠군요.
그래도 원래 계획보다 수십 년 빨리 완공될 거라고 하니 그때 꼭 보러 가려고요.
그의 헌신과 예술세계는 사라지지 않고 지구멸망 때까지 회자될 거예요.
'나의 후손들이, 다음 건축가가 이 건축물을 완성시키고 이곳에 빛을 내려주리라'했던 그의 말처럼
여기 관광객 한 명 마저도 지켜보고 가꿔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려 합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군요.
Ars longa, vita brev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