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이 있다
제목은 정확히 조준되어 나를 겨냥했다
주인공의 결심은, 이제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내 식의 처방은 이랬다
책을 끊어보자
책에 파묻혀 세상이 안 보이거나, 깨우쳐도 쉬이 못 펼치니
바보는 싫으니까
책을 내버려 뒀다
마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만족은 점차 지연되었다
공급 없는 아웃풋은 하향평준화,
내 머릿속엔 별 볼일 없는 생각들이 늘어갔다
세상이 이토록 갈등국면인 건
바보들의 천국이기 때문이 아닐까
많고 많은 지식인들은 배를 산으로 보내고
드물고 드문 지성인들은 바다를 항해하는 바
뉴스를 보니 오늘도 분명 육지행이었다
책 속을 거니는 일은 재미가 맞다
움직임 없이 글을 그냥 바라만 봐도 사고는 이동하는 법
그래도 활자를 책 밖 창밖으로 꺼내보면
문장은 사람을, 사람은 세상을 바꿀 것이니
우리들의 천국은 언젠가 그 수식어를 바꿀 수 있을 테다
책이 내게 다시 신호를 주었다
나는 종이 사이 책 내음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