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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이시트콤 Jun 28. 2020

가끔 불리는 내 이름이 좋다

당신이 진짜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당신과 나 둘 만의 세계를 마주한다.

살다 보면 제 이름으로 불릴 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름, 외모, 성격 등의 특징에서 파생된 별명으로 불릴 때가 더 많다. 초등학교 때는 아주 단순하게 김상우라는 이름 때문에 김상어대가리로 불리었고, 중학교 때는 외모 때문에 블로라고 불리었다. 당시, 에픽하이가 인기가 좋았고, 타블로가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해준 덕분에 나는 타블로를 등에 업고,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박지성이 맨유에서 활약을 하면서, 박지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별명이었다. 친구들은 ‘박지성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축구 잘하잖아’ 라고 위로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박지성과 나랑 닮은 점이 축구실력이냐. 외모지.

대학교 때는 낮에는 강의실에서 자고, 밤에는 술과 당구에 몰두했던 덕에 망나니라는 별명을 얻었고, 군대에서는 전투적으로 생겼다는 이유로 선임들로부터 김태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태촌은 대한민국 조폭 서방파의 두목이다.) 


나이가 먹음에 따라 외모에서 비롯된 별명으로 불리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었고,
동네 친구들에게는 ‘김쌍’,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는 ‘김상우상우상’, 회사에서는 영어이름을 쓰기 때문에 내 영문이름인 ‘테디’ 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아주 가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상우야’로 부를 때가 있다.
18년 겨울, 퇴근을 하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내 가장 친한 동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우야.”

17년 동안 한결같이 나를 ‘김쌍’으로 불렀던 친구였다. 그냥 ‘상우야’라고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뭔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친구는 흐느끼면서 아버지께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갔고, 친구는 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처음 보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12월 31일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우야.”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친구는 ‘상우야’ 한마디와 함께 나를 부둥켜 안고 울부짖었다. 그의 세계에 있는 ‘상우’ 라는 사람의 무게가 느껴졌다.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고,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지만 그의 세계에 있는 ‘상우’의 몫으로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노력했다.

친구는 나를 언제나처럼 ‘김쌍’이라고 부르지만, 가끔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속 깊은 이야기들을 할 때면 그에게 ‘상우’의 농도가 더 짙어졌음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앞서 말했듯, 우리 회사는 영어로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은 나를 ‘테디’라고 부른다. 그러다 아주 가끔 나를 ‘상우야’ 라고 부를 때가 있다. 회사 사람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말을 건낼 때이다.

최근 팀 사수가 다른 팀 팀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반강제적으로 메인 AE가 되어야 했다. 팀장님과 인턴 친구는 다른 프로젝트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함께 봐 줄 사람이 없었다. 일이 많은 것은 참을만 했지만, 프로젝트의 모든 의사결정을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너무 버겁다. 나 이러다 진짜 사고치겠는데’ 라고 생각이 들던 찰나, 사고가 터져버렸다. 참고 참았던 회사에 대한 원망들이 터져 나왔다. ‘왜 나는 항상 사수 없이 일을 해야 하지? 동기들은 사수랑 같이 일하는데 왜 나만 항상 이렇게 외롭게 일을 시키지? 연차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는 건가?’ 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애정이 식어가던 중, 어느 날 밤 팀장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상우야 너가 우리 팀에 있어서 팀장으로써 고맙고 든든하다. 늘 너무 잘하고 있다. 상우야, 일은 일일 뿐이야. 너의 가치를 일로 증명하는 것도 좋지만, 한 번의 실수로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말렴. 함께 챙기고 함께 성장하자. 잘 버텨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잘 하고 있어. 내일 보자’


‘테디’라는 이름에 부여되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을 때, 불리는 ‘상우’라는 이름이 반가웠다. 회사의 테디가 아닌 사람 김상우에게 해주는 이야기라 더 진솔하게 들렸고, 위로가 되었다. 그 이후로도 팀장님은 가끔씩 나를 ‘상우야’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난 너를 팀원 이상의 동생으로 생각한단다’ 라는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불리는 내 이름이 좋다. 내 진짜 이름이 불릴 때, 그들이 나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가 느껴진다. 나의 어떤 특징도 반영되지 않고, 그 사람과 나 단 둘만의 관계만 남겨진 느낌이랄까? ‘김쌍’ 이라고 불리던 이름이 ‘상우’로 불렸을 때, 그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고, ‘테디’라고 불리던 이름이 ‘상우’라고 불렸을 때, 실패를 딛고 나아갈 힘이 생긴다. 앞으로도 난 ‘김상우’ 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람들의 세계에 입력되고, 다양한 별명으로 표출될 것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그 세계의 ‘김상우’가 호명될 때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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