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그리지 Jan 31. 2023

일과 부러움

괴로운 감정의 근원지를 찾아서


스무 살 후반이 되면 꽤나 깊은 주제의 대화가 오간다.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서 치열한 광고인의 삶을 살고 있는 서울 친구와 각자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상대방이 하는 일을 보면 온갖 부러움 투성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지만 인간은 본래 시기와 질투를 타고난 종족이라 부러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부러움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면 이게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알고 싶다. ‘내가 지금 내 삶을 만족을 못해서?’ 또는 ‘내가 없는 것을 상대방이 갖고 있어서?’ 등등. 어쨌든 부러움의 근원지를 직면하고 나면 그나마 가려움이 덜하니까.


남의 일이 부러워지는 이유 첫 번째, 사회가 평가하는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할 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하고 연봉과 복지가 빵빵한 서울의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에 비해 나의 직장은 평범한 연봉에 별다른 복지가 없는 어느 지역의 중소기업.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과 복지, 네임밸류에서 박탈감이 올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조직문화와 근무환경 등 회사의 내부적 요인에서 오는 비교. 지금 근무환경은 혼자서 조용히 일할 수 있고 직장 내 상사가 없는 만큼 스트레스가 적지만 그만큼 나를 다그쳐 줄 사람도, 그 속에서 움트는 발전의 기회도 없다. 오직 내가 가진 능력으로 단련해나가야만 하니까. 그래서 나와 정반대의 근무환경을 가진 이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것 같다. '역시 기반이 갖춰진 곳은 다르구나, 나도 좀 더 회사다운 회사를 다녔다면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하며.


세 번째, 내가 하고 있는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의문이 들 때. 이때 가치 있는 일의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내게 가치는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한 때 나도 친구처럼 멋진 광고인을 꿈꿨으나,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좋아하고 지역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지역에 남았다. 그러나 모니터 앞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고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는 무의미한 삶을 반복하는 것은 똑같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삶을 살면서 안정과 권태를 동시에 느끼는 중이다.


긴 대화 끝에 우리는 결국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내가 왜 나의 지역을 알리고 싶은지, 우리 지역에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으며 난 그 일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며 다시 한번 되새겼다.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말은 한편으론 안일함으로 남겠단 말이기도 했다. '발전은 고생 속에서 움튼다'는 말처럼, 때론 각박한 환경에서의 경험이 나를 더 성장시켜 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궁금증에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지역보다 서울이 일할 곳도, 일할 사람도 많은 건 맞아. 근데 그 말은 그만큼 흔하다는 말이기도 해. 오히려 서울사람들은 지역 청년들이 무얼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까? 확실히 네가 가진 능력을 활용할 수 있고 너만의 이야기가 있다는게 오히려 난 부러운데.”


이어 지역에서는 능력 있는 청년을 발굴하려 노력할 테고 그만큼 청년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테지만, 자신의 일은 기회는 커녕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따라가기 바쁘다고 말했다. 나는 상대를 부러워하고, 상대는 나를 부러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친구의 눈에 나는 또다른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것을 부러워하는 마음에 가려져 내가 가진 역량과 내 일의 진짜 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


그 친구는 원래 자신은 여러가지의 색깔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고된 회사생활로 점차 회빛으로 물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애매한 색. 듣고 보니 암담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횟빛인생이라도 색안경으로 바라본다면 그건 유의미해 보일 수밖에 없다. 나는 그친구를 마냥 부러워하며 유의미한 삶으로만 바라봤던 거다. 누구나 들여다보면 각자의 고충이 있지만 결코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그만큼 보이는 것이 전부라 믿기 쉽다.


<부러움에 대하여> © 2023. mogurizi All rights reserved.


‘부러움은 아쉬움에서 비롯된다.’


부러움. 할 수 있던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 감당해야하는 감정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일에 임했는지, 얼마나 계획적이고 진심이었는지 나와는 달랐다. 사실 그 친구가 부러웠던 건 높은 연봉도 좋은 근무환경도 아닌, 같은 광고인의 꿈을 품었던 사람으로서 발조차 담가볼 시도 조차 하지 않은, 그래서 깨져보지도 못한 지난날의 삶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었을까.


누구든 내 일을 하다 보면 남의 일이 부럽고, 현재 내가 하는 일이 발전이 없고 이게 맞나 싶은 의문이 끊임없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상대가 나를 보는 시선으로 내가 나를 바라봐준다면 나는 이미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 그토록 선망하는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조금은 아니 조금 더 내 일을 사랑해도 되겠다란 결론에 도달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불쌍히 여기는 건 아무래도 나 자신뿐인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내 일,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아쉬움을 더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회색은 결코 애매하거나 극단적이지 않으며 어느색과도 어울리는 조화로운 색이라고. 너는 그런 사람이라고.

작가의 이전글 20년 전 초등학생이 기억하는 2002 월드컵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