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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슈 Aug 08. 2020

언제나 가장 위대한 영감, why(2)

세상을 관찰하는 것의 적극성

  '테러는 왜 일어나는가? → 세상은 좀 평화로워 질 수 없을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내 인생을 세상의 평화를 위해 투자 할 수 있을까, 투자한다면 세상이 진짜 달라질 수 있을까? 외부자의 시각에서 내부 문제를 혼란없이 해결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때 대학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 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가지고 있었던 고민이었고 이런 고민과 질문이 내가 가졌던 큰 목표를 흔들기도 하였다. 방향이 사라지니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혼란의 와중에 만난 두번째 영감님은 존경하는 교수님 중 한 분이셨다. 교수님은 우리학교 교수님도 아니셨고 출강을 오셨는데, 처음 뵈었을 때 부터 이런분께는 내 생각을 나누고 싶다고 느꼈다. 

  접시닦는 아르바이트 부터 하시며 캐나다 유학을 끝내시고 이란에서 박사까지 이란에서 하셨다는 교수님의 고생스토리 만큼이나 현실적이면서도 학생의 눈을 맞춰주시는 분이셨다. 그전까지 학문과 일상 생활에 경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공 이야기 삶의 경험 이야기를 하나의 틀로 묶어 전달해주실 수 있는 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문제에 부딪혔는 때 이분이라면 답을 주실 것 같아 염치없는 상담을 시작했다. 나의 고민들을 이메일로 적었고 배경부터 시작해 세상의 평화라는 목표없이 내가 왜 공부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도 덧붙이니 장문의 보고서가 되어버렸다.

  영감님께서는, 대학생의 길고 쓸데없는 질문에 스스로도 그 고민을 많이 하셨다며 진솔한 공감을 해주셨고 고민 끝에 찾은 답을 공유해주셨다. 


"사려깊은 편지 고마워요. 저도 늘 고민하는 것인데요...저보다 훨씬 더 성숙한 대학생활입니다. 언제든지 커피 마시면서 얘기해요. 현문우답이라 미안해요"


  교수님께 질문을 드리는 것은 참 어렵다. 바보 같은 질문이 아닐까, 바쁘신데 귀찮으시진 않을까 싶었고 특히나 이 고민은 '왜 공부해야해요?' 같은 문제로 비춰질까 걱정을 하며 질문드렸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 이전에 교수님의 겸허한 말씀까지도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교수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또한, 답을 주셔서가 아니라 함께 고민해주셔서 감사했다.


"결국 변화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끌어야지 외부인이 해서는 효과가 반감되고 혼란이 더 크지요. 그렇지않으면 계몽주의, 식민주의식이 되어버리고 늘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생각이 남아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냉혹한 힌실이지만 그걸 바꾸고자 하기란 참 어렵죠. 공부하면서 세상의 모순보다는 내 자신 안에 상존하는 모순을 더 느낍니다. 학생이 지금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그러한 목적의식없이 다 내려놓고 현상을 보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스려보세요." 


  세상을 일단 관찰하고, 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는 교수님의 말씀. 그 말씀을 듣고 내 생각들을 반추해보았다. 나는 이전까지 눈앞에서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것이라 생각했다. 학교는 새로운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중요성으 갖지만 그게 행동의 주체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 점에서 교수님의 학문에 대한 시각은 새로웠다. 알고 이해하는 것, 자기 시각을 가지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 또한 눈에 보이지 않게 겸손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어 멋있었다. 세상의 모순, 무엇을 바꿀까 같이 결과를 만들어야한다는 부담 이전에 더 많이 세상을 알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말씀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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