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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하숙생 Jan 26. 2022

내 친구는 번영회장

쥐구멍에 볕들날

그와 처음 만난건 너무 어려서 기억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부모님들끼리도 안면이 없는 사이라 아마도 특별한 계기도 없이 그야말로 시나브로 단짝이 된걸로 짐작한다. 그저 유치원 갈 나이가 되었고 강원도의 작은 시골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교회에서 선생님 두어분이 유치원 간판을 올리고 어린 아이들 수십명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것이 유치원을 누릴수 있는 유일한 옵션이었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그와 나는 점심을 먹고나면-그래도 점심은 거르지 않고 함께 땡땡이를 치는 몹쓸 단짝이 되었고 지금도 왜 그랬는지 이유가 생각나진 않는다. 점심을 먹고나면 밖으로 나와서 작은 개울을 건너 각종 장애물을 헤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어린 나이에 마치 전쟁터의 전우처럼 서로가 옷을 다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게 철조망을 들어주는 등 꽤 훌륭한 팀웍으로 비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우리를 수상히 여긴 유치원 선생님이 뒤를 밟아 덜미를 잡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땡땡이가 발각되었지만 우리는 전력을 다해 도망치려 했으나 마침 맞은 편에서 우리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무서운 경찰관까지 피해나가기엔 너무 어린 소년들이었다. 그 후로 국민학교때도 그와 나는 6년동안 땡땡이를 치지 않는 단짝이었고 중학교도 같은 중학교로 갔지만 각자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그야말로 불알친구라고 할만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각자 다른 지역에 있었기에 매일같이 함께하진 못했지만 방학 또는 명절에는 그야말로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함께 하려니 밤을 새기 일쑤였다. 다혈질인 편인 그는 어릴때부터 여러가지 크고 작은 사고들에 자주 휘말렸지만 다행이도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중고차딜러로 조금 불규칙적이라는 점만 빼면 꽤 괜찮은 벌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다혈질적이고 단무지적 성격은 그를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만들었고 만날때마다 그의 직장은 바뀌어 있었고 상황도 바뀌는 일이 잦았다. 내가 양복을 입은 현대판 보부상으로 10여년을 지내는 동안 그의 20대, 30대도 그렇게 흘러갔다. 가장 최근 몇 년 동안 그의 직업은 자동차 세차를 겸한 디테일링샵이었다. 중고자동차 딜러를 꽤 오래 했으니 이미 세차는 그에게 매우 익숙한 작업이었고 간간히 취미로 광택같은 디테일링도 해봤으니 어찌보면 동종 또는 유사업종에 종사하게 된것이다. 그동안 쌓아둔 중고자동차 계통의 인맥으로 혼자서는 벅차서 사람을 써야할 정도로 그의 세차장 앞에는 대기하는 차가 있었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그는 땀흘려 버는 돈의 가치를 배우고 있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그의 소식에 멀리 있었지만 그를 건투를 빌었고 응원하고 있었다. 시골동네다보니 모두들 좋은게 좋은거라는 식의 마인드라 세차장 임대계약서도 없이 구두로 계약을 대신하고 월세를 내면서 3-4년을 지낸 그에게 어느 날 자신이 이 가게의 주인이라며 낯선 이가 나타났다. 그렇게 그는 또다른 이유로 세차장 문을 닫게 되었다.


그렇게 세차장을 접고 놀기를 몇 개월. 그는 예전에 즐기던 낚시를 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뭘하고 지낼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인지 연락을 하면 그저 좀 쉬고싶다는 얘기로 말을 아끼고 또 아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만나러 다니면서 자신이 할 일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세차장을 하기 전에 동네 청년회에서 사무장으로 4년 정도 일했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라 작은 마을이지만 누가 어디 사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꽤 신임을 받으면서 청년회의 일원으로 일했었지만 마치 정권이 바뀌면 참모진이 바뀌듯 오래 일하진 못했고 어느덧 세월은 청년이었던 그를 장년층으로 만들었다. 요즘 말로는 아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사람좋은 홍반장같은 그는 더이상 참모가 아니라 본인이 뜻을 펼치고 주체적으로 작지만 정책을 펼수 있는 번영회장에 출마했고 당당히 선출되었다. 멀리 있어서 전화통화로 넘어오는 목소리 톤으로만 판단할수 밖에 없지만 계속된 실패로 한동안 사는 기쁨을 찾지 못하는듯 보였는데 역시 그는 내 생각보다 강한 생활력을 갖고 있었다. 규모가 작을지언정 한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일하는 번영회장이 된 그가 자랑스럽기 짝이 없다. 다시 한번 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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