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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꽃다발을 안겨줄까요?

[클래식 에세이] 2025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첼로 부문

by 유진
결국 유빈님께는 같은 말을 두 번이나 했다.
“어쩜 그렇게 소리가 새카맣고, 밤하늘 같으세요.”
그리고 당신의 눈에 빛이 나는 걸 본인은 아시냐고, 그 말만은 잊지 않고 전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2025년 9월 25일
[Opinion] 우리는 소리로 만나 소리로 이어지지 - 제1132회 더하우스콘서트
- 아트인사이트


2025년 11월 8일, 2025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대한민국의 이유빈이 1위를 수상했다. 결선은 레오시 스바로프스키 지휘의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유빈은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해 심사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또한 관객 투표로 선정되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특별상을 함께 수상했다.


1. 들어가며

이유빈 첼리스트 ⓒ 유진


밤하늘이 통영의 하늘을 가득 메웠단다.


얼마나 기뻤을까. 이름이 호명되고, 그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와 꽃다발과 상장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다는 걸 이미 아는 사람처럼, 카메라 너머 관중석을 향해 눈을 두 번 깜빡였다.


그 눈맞춤을 보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냥, 마음이 담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드는 알 수 없는 기분이 있지 않은가? 딱 그것이다.


아쉬웠다. 손을 잡고 방방 뛰면서 축하해줘야 하는데! 몇 마디라도 적힌 편지라도 드려야 하는데. 당장 전달해줄 것이 없는데 어떡하나 고민하던 찰나, 문득— 하얀 이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맞다, 내 선물은 여기 있었지.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가장 염원하는 꽃송이를 이곳에 한 번 나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꽃이 좋으려나. 음, 1라운드부터 마지막 결선 무대까지 봐왔던 무대를 톺아보다 슈베르트 한 송이, 그리고 우리의 쇼스타코비치 한 송이로 결정했다. 에게게, 겨우 두 송이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흐흐, 그냥, 내 기쁨이 그곳에 많이도 몰려 있어서 그렇다.


어떻게, 같이 영상을 살펴보면서 꽃포장 해보실까요?



2. 밤하늘에 꽃다발을 안겨줄까요?

첫 송이, 2nd Round

프란츠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단조, D.821

II. Adagio — 느리게, 고요하게


시작부터 좀 반칙이네, 싶었다. 피아노가 참 따뜻했거든. 그다음 줄기는 어떤 모습일까? 아, 이건 아니다. 밤하늘이 이만큼 따뜻하면 안 되는데. 잠이 오다가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애써 잠결을 밀어내려 들겠다.


조금씩 얹어주는 마음이 있고, 되돌아오는 선이 있다. 처음보다 선명도를 높여오니, 밤별이 맑게도 반짝인다. 파들거리는 게 아니라, 흩날려주어 소리 없이 기쁘다.


14:08, 듣기 좋은 소리다. 14:17, 첼로만이 전할 수 있는 목소리 뒤로 피아노가 짧은 박동이 되었다. 귀 기울여 보시라.


저 두 악기가 이렇게 슈베르트 안에 놓이니, 이만큼 애틋해지는구나. 아직도 그가 누군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냥 어떻게든 위안이 되려는 사람 같다. 그렇게 노래하고 있기도 하고.


시간을 내어주어 좋다. 자주 말하지 않았던가. 이만큼 여분을 남겨주는 음악은 늘 고맙다. 붙잡을 시간이 이렇게 길어서 더없이 기쁘다. 16:09, 말없이 천천히 올라가다 멀지 않은 영역에서 다정한 춤을 추기 시작할 것이다.


III. Allegretto — 조금 빠르게, 부드럽게


왜 이렇게 발맞춰 웃어주는지 모르겠다. 속절없이 따뜻해버리는 사람이 있다니까. 마음을 나약하게 만드는 소리들이 있다.


“기대어도 좋다”고 세 번이나 반복해오는데, 넘어가지 않을 자가 있는가. 재미나게 놀아주기까지 하네. 흐름이 재빨라지는 순간도 있다. 정신을 쏙 빼놓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매사에 너무 진지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웃을 수 있을 땐 충분히 입꼬리를 올리고, 찢어질 땐 마음껏 넘어져야 한다. 그 오며 가며를 충분한 높낮이로 표현해주니 듣는 재미가 있다.


아니, 진짜 반칙이라니까. 19:08, 저렇게 명상적인 숨소리를 가져다 놓고서는 19:13에 또 다정해져. 플러팅도 이렇게 하면 욕먹겠다.


이 다정함의 밀고당김이 원망스러운데, 놓을 수가 없다. 같은 음표도 다르게 표현해주는데, 어떻게 질려. 진짜— 애플민트 향기가 가득하다. 왜 애달픈데, 이만큼 짙은 초록빛으로 살아 있을까.


우리 하프도 구경해볼까? 21:50을 주목해보시라. 금세 빠른 흐름을 쟁취해내겠지만, 23:46의 소리에서는 마음이 한들거리는 자가 불안정을 다독여야겠다. 살짝 가라앉아서 거리감을 유지한 채 다가와 줄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용기가 필요한 자는 24:24를 목격하시라. 드높여주는 소리가 있다. 고민을 줄이고 나아갈 것을 새초롬하게 권하고는, 네 번이나 토닥여준 뒤에 떠난다. 음— 좋은 사람.



두 번째 송이, Final Round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 E♭장조, 작품 107

I. Allegretto — 조금 빠르게, 경쾌하게


시작부터 정이 안 가는 게 이 작곡가의 매력이다. 정말로 이 뒤뚱거리고 끼깅거리는 소리들이 매력이라 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일단 그렇다고밖에 답할 수 없다. 우리가 매일 아름답고 고즈넉한 선율만 들을 수는 없지 않나.


가끔은 일부러 나보다 훨씬 삐걱거리는 춤을 추는 노래를 고르지 않던가.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 작곡가만의 위협적이지만 위험해 보이지 않는, 장난기 넘치는 액션이 제법 재미가 있다.


더군다나 첼로라는 악기로 이렇게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처음엔 ‘아, 또 시작이네~’ 싶었지만, 듣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속으로 ‘하나, 둘, 셋, 넷’을 세고 있다.


이 기묘한 선율을 듣고 있자면 머리가 빙글거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제대로 앞으로 향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이러니하다.


첼로는 이상한 춤을 추고, 오케스트라는 넓은 웅덩이로 받쳐준다. 이게 도대체 뭐가 좋냐고? 괴이한 웃음을 짓는 광대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일과 같다. 신기하지 않은가.


1:30, 첼리스트가 하나의 현 위에서 손가락만 달리하고 있을 뿐인데, 기울어진 서사가 그려진다. 안정감이라곤 하나도 없고, 절로 외줄 위에 오른 듯하다. 이렇게까지 선의 색깔이 새침하고 분명한 연주가였던가.


쇼스타코비치 위에서 만난 이유빈은 꽤 색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소리의 중심이 분명히 땅을 딛고 있어서 마냥 위태롭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 곡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자가 타오르는, 조금 빠르고 경쾌한 걸음걸이가 맞다.


관악은 2:19에서 첼로보다 네 칸 위에서 포인트가 되어 준다. 첼로랑 만나니까 재미있다. 2:39, 잠깐 안정된 척하더니 2:43에서 바로 뒷통수를 친다.


누가 이렇게 박박 긋냐니까? (쇼스타코비치요) 잠시 편안한 소리를 주었다가 금세 청중을 긁어버리는 게 이 사람이다. 이 재미를 알면 답도 없다.


괴상한 흐름 안에서 뭘 들어야 하나 싶겠지만, 들어야 할 건 없다. 첼리스트가 긋는 대로 그대로 따라가라. 이상한 소리들에 집중하다 보면, 불친절한데 듣기 좋은 화음이 3:36쯤 끼어들기 시작한다.


약간 속 터지는 내 인생살이 같다. 할 일은 많은데 하기 싫어서 마음만 잔뜩 불편한 그 심경을, 유쾌하게 긁어준다. 언제까지 바람결만 그리겠나. 이렇게 불편한 진자 운동을 하는 소리들에 심취해보는 맛도 있어야 한다.


4:23, 난 저렇게 곡에 몰입한 연주가의 표정이 좋다. 4:37, 첼로가 저렇게 소리치는 거 보셨나. 언제까지 첼로를 품위 있게만 다뤄야 한단 말인가.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그 한계점을 확인해보고 싶지 않나. 매번 듣기 좋은 소리만 들을 것인가. 나도 모르게 권태로워질 테지.


새로운 재미를 찾아 떠나려 하겠지. 여긴 1분도 가만있을 수 없는, 끊임없는 동적인 순간이 가득한 공간이다. 멈추는 자는 절대 챙겨가지 않는다.


II. Moderato — 보통 속도로, 차분하게


진짜 쇼스타코비치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방금 전 1악장의 위험한 춤은 어디 가고, 갑자기 흑백 TV 속 지직이는 화면이 그려진다. 한 악장과 그다음 악장이 이렇게 급변하면, 가끔은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싶어진다. 갑자기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7:05,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이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내려앉을 것이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귓청 한가운데에서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그 소리에 가만히 뒤따라가면 첼로가 긴 노래를 시작한다.


이 순간의 첼로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여러 겹도 아니다. 음색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그 단일한 선이 마음에 든다.


쇼스타코비치가 이유빈의 손 안에 놓이니 아주 약간의 온기를 머금는다. 마냥 삐뚤어진 것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것들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비애를 눌러주는 정도겠다.


깊게 울지도, 마냥 연민하지도 않아서 편안히 그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9:39, 손끝이 하얘지도록 그렇게 깊게 누르고 있다.


10:23, 현악의 바람은 저렇게 서서히 다가온다. 저 소리를 실제 공연장에서 만나면 정말 ‘회색빛 바람이 내 앞에 불어오고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10:55, 연주가는 가장 가까이서 불어오는 것을 등 뒤로 느끼고 있다.


11:25, 세밀하게 눌러지는 얇은 선의 서로 다른 굵기가 듣기 좋다. 단순히 첼로가 연주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첼로가 뱉고 있는 실제 모양새를 귀로 따라가 보라. 12:25, 반드시 이 부분이 귀에 담길 것이다.


신중하다. 그런데 신중하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12:58에서 뒤편에 장난감 병정이 둥땅인다. 마냥 무거워지지 않으려는 이 알다가도 모를 다채로움은 참, 뭘까 싶다.


첼로 소리만 들으면 아우성인데, 뒤에서 발맞춰 콩쾅콩쾅하니까 마냥 진지해져버리는 내가 이상해진다.


마음 놓고 뛰며 악을 질러보는 데에는 그만의 재미가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운가? 어차피 다 죽을 텐데, 뭐가 그리 눈치가 보인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 가만히 있으니 미친 사람처럼 깨갱거리는 편이 차라리 낫다. 산송장이 되느니, 발버둥쳐야 한다.


15:26, 크게 동의해주는 바람이 여기 있다. 내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발생하는 결과물이 궁금한가? 16:05부터 목격하시라. 걸어다니는 유령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겠다.


첼로와 첼레스타(작은 피아노처럼 생긴, 맑고 반짝이는 소리를 내는 악기)가 이명과 두드림으로 서로를 응시한다. 아주 얇은 선을 그어내며 건반에게 묻는다.


‘내가 죽은 것이냐?’

천연덕스럽게 긍정하는 예쁜 소리들이 마음에 회오리를 그린다. 17:37, 믿을 수 없는 것을 향해 도망쳐보는 이가 여기 있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쉽겠는가. 18:05, 그래, 이렇게 수긍할 줄도 알아야지.


III. Cadenza (attacca) — 카덴차 (연결하여)


수긍이 아니었다, 더 아래에 있는 마음이었다. 첼로가 울적하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아주 새까만 밤이다. 적막보다 더한 것이 여기 있다.


어디까지 내려가려나 싶을 때, 19:27에 어떻게든 튕겨내려는 사람이 있다. 아래로 침잠하기보다 어떻게든 넓게, 사방으로 펼쳐 나간다.


속이 터져라 소리쳐본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가느다란 연민이 20:23에 있다. 잊지 말자. 쇼스타코비치는 마냥 가라앉은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20:36, 두드림이 되돌아온다. 더 크고 둥글게, 그러나 연약하게. 그래야 21:10만큼 내려앉을 수 있다.


21:48, 정말 새카맣게도 운다. 검은 물감을 아래로, 또 안쪽으로 계속 내려보내는 길이다. 22:38,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다섯 개의 넋이 있다. 더 안쪽으로 파고들자고 신호를 주는 것 같다가도, 서서히 상승 곡선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다시 휘청거릴 시간이 도래하고 있음을 예고하는가. 송장이 될 뻔한 시절을 언제까지 회상하고만 있을 것인가. 현실을 살아야지. 끊임없이 지직이고 각기로 되어 요동치면서.


IV. Allegro con moto — 빠르고 움직임 있게


크게 삐걱일 줄 아는 이가 승기를 잡을 수 있겠지. 24:51, 아주 짧은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도입부로 삼아보면 어떨까. 새카맣게 온몸이 적셔진 이 시점에 무엇을 더 그려낼 것인가.


아—25:14, 중심을 바로잡고 농도를 짙게 가져간다. 이런 당참이 꽤 마음에 든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소리라면 이 정도의 기개는 갖추고 있어야지.


25:30, 어떻게 도망쳐낼 것인가. 음색은 새침한데 첼로의 소리니 이만큼 두텁구나. 치밀하되 두께감을 잃지 말 것. 어찌 되었든 첼로 협주곡이 아니던가.


이 악기를 전면에 앞세워 까만 빛이 나도록 유도하라. 26:20, 오케스트라가 치밀하게 저 앞선 악기를 잡아삼켜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서로 맞부딪혀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안정된 밑바탕에서 첼로가 분명하게 나아가길 택했으니, 이를 지탱해주기로 한 것일까.


극적인 서사를 묘사함에 27:48, 조금의 아낌도 있어선 안 되겠다. 이 정도는 빗겨쳐내야지. 소리는 참 짙게 가져간다. 28:33, 아—아까 26분에서 기대했던 티격거림이 이곳에 밀집되어 있다. 반갑네.


거칠게 맞붙어줘야 싸움을 구경하는 맛이 나지 않겠는가. 크게 아웅다웅하기보다는 보다 치밀하게 한곳으로 모여들며 끝을 향해간다. 그러다 보면 내가 예상한 순간보다 조금 이르게 확—이별이 찾아온다. 그래, 끝이 이렇다. 쇼스타코비치가 그렇지 뭐.


3. 끝내며

ⓒ 유진

예쁜 송이들이 이리 모여들었다.


무슨 색의 꽃들 같으신가? 내 눈엔 일단 연두빛과 흑색의 장미지만, 뭐가 중요하겠나. 보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시선을 담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클래식인데.


이곳은 정말 기쁘게도 정답이 없는 공간이다. 내가 택한 소리가 우선시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없이 투덜거릴 수 있는 나만의 다락방이겠다.


그러니, 내가 선물을 준비한 게 아니겠나. 좋은 소리를 들었으면 응당 좋은 답변을 줄 수 있는 클래식 사랑파가 되어야지. 아니 그런가?


두 송이의 꽃이 준비되었으니 우린 무엇을 해야겠는가. 작은 메모지에 편지를 써야지. 당신에게 펜을 건네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나에게 양보해주셔야겠다.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요. 뭘까?


어쩜 그렇게 소리가 새카맣고,
밤하늘 같으세요?

결국 유빈님께는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하게 되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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