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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음향 소설

[클래식 에세이] 이든 콰르텟 리사이틀_리뷰

by 유진

9호선 환승을 기다리며

1100690.JPEG ⓒ 유진

익숙하게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를 눌렀다. 멘델스존 현악 4중주 2번의 1악장이 시작된다. 어, 나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갑자기— 들려오는 것의 선명도가 높아졌다.


뭘까? 어제 밤 12시까지 들리지 않던 곡이 오늘 갑자기 들렸다.


‘들린다’는 게 뭘까? 그냥, 뭔가— 원래 방금까지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나만 관심 있어서 몇 번이나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던 존재가 어느 순간, 툭— “안녕” 대답 해주는 것이다.


어, 뭐지? 하는 사이에 음악은 계속되고, 내게 주어지지 않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어사즈 아니었어? 분명 하나였는데, 네 겹의 갈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좋은 징조였다. 이 변화가 찾아온 때가 딱— 이든 콰르텟 리사이틀이 시작하기 정확히 1시간 전이었으니. 공연 직전, 나홀로 런스루가 가능한 순간이 선물처럼 찾아왔다.


이 느낌이 얼마나 얻기 어려운 건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보다 집중했다. 지하철을 어떻게 타고 왔는지 기억도 없다. 새롭게 인사한 멘델스존은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이렇게 여러 갈래였어? 이만큼 소리 높여 아리아하는구나. 공연 직전에 귀가 열린 나는 한껏 귀를 쫑긋 세우고 예습했고, 소리 없이 기대했다.


“아—대단히 잘하기를.”

멘델스존 현악 4중주 2번 a단조 Op.13

1100693.JPEG ⓒ 유진

I. Adagio – Allegro vivace — 느리게 — 매우 빠르게


무게감, 네 사람의 간격, 응축, 두께감. 집중해서, 신중하게, 선명하게, 일렬로, 수평으로. 끝은 둥글고 거대하게. 강하게! 제 위치에서, 흐느끼지 않고, 텐션 있게, 네 개의 수직선상, 이렇게 하나씩 다?


음색이 지나치게 좋고, 예의 바르며, 휘몰아치는데도 중심에는 늘 일직선이 있으니. 제1바이올린을 맹렬하게 둘러싸고 있는 소리들. 성격 좋은 사람들이 대단히 냉정하다. 빠른 춤을 추며 내리꽂을 때의 시작과 끝이 모두 강한데 그 정도가 이렇게까지 일치될 수 있나?


서로 잡아먹는 건 아닌데, 뒤돌아보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완전 밀착은 아니지만, 이렇게 같은 방향으로 0.5 정도의 간격만 두고 똑바른 길을 갈 수 있나?


악기 사이의 간격이 분명히 있으니 높은 소리, 낮은 소리, 그 아래의 것, 바닥에 붙은 것까지 모두 분리되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잘 들린다. 들려오는 것의 선명도가 평소보다 훨씬 높다.


제1바이올린이 상승선을 그릴 때 그 아래에서 보여내는 갈래가 구체적으로 분리되어 다가온다. 들려오는 것의 해상도가 지나치게 높아 낯설었다. 음표 하나하나를 어디까지 분명히 짚어내려는 건지 감도 안 온다.


마이크를 각자 하나씩 달고 있는 건가? 현악 4중주를 듣고 있지만, 네 악기가 뭉쳤다가 흩어지는 형상 자체가 현장에서 고스란히 전달된다.


오랜만에 열린 리사이틀이라 이렇게 진중한 걸까? 예술의전당 홀 자체가 이런 음을 담아내는 공간인가? 비올라의 색이 달라서일까? 오늘은 톤 자체를 분명하게 내딛기로 결정한 것일까?


맑갛던 초록빛이 청록색이 되어 있다.


II. Adagio non lento — 느리게, 그러나 늘어지지 않게


1악장보다는 가볍게, 공기의 결을 담아 여유의 숨을 불어넣는 시작이다. 오늘의 흐름은 이렇게 가겠구나— 어렵지 않게 확신했다. 멘델스존보다, 이든 콰르텟보다, 저 연주하고 있는 장면보다 먼저 오는 것이 있다. ‘인영’이다. 소리의 인영이 가장 크게 눈 안에 담긴다.


연주 무대의 가장 앞쪽, 제1바이올린과 첼리스트 바로 앞에 호숫가 같은 표면이 생긴다는 것을 아시는가? 조명을 받은 첼로와 바이올린 위에 드리워진 넓은 하얀 빛이 무대 위로 반사된다. 그 빛이 서로 달리 움직일 때마다 얼마나 반투명하게 일렁이던지.


IMG_3629.JPG ⓒ 유진

비올라는 어떤가? 오늘의 연주가는 한 번씩 기분 좋게 웃어주지만, 가장 내밀한 이야기는 오히려 진중하게 드러냈다.


“아, 비올라가 현악 4중주의 색감 담당인가?”


임지환 비올리스트가 계셨을 때는 소리 곡선이 높고 생동감 있게 흘렀다면, 신경식 비올리스트와 함께할 때는 거대한 동굴처럼 울림을 만든다. 아—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구나.


네 개의 점이 수직선상에 너무 완벽하게 찍히니 할 말이 없다. 빨려들게 만드는 집중력인데도 나긋하다. 음 하나하나의 시작과 끝이 대단히 정성스럽다.


비올라와 첼로가 낮고 더 낮은 소리로 공명을 만들 때는, 순간 귀가 안쪽으로 깊게 가라앉았다. 오늘 나는 멘델스존을 들으러 온 게 아니라, 거대한 입체 음향 체험소에 들어온 것만 같다. 귀로 이런 층위를 느낄 수 있나?


이들은 온 힘을 그 소리 안에 응축하고 있었다. 비음 따위 없는, 두성과 진성을 모두 몰아세우는 그 밀도감으로.


정주은의 소리는 늘 세찬 기색 속에도 부드러움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 기색을 줄여놓고 조금 더 시리게 흐름선을 그어가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III. Intermezzo: Allegretto con moto – Allegro di molto — 간주곡, 조금 움직이며 — 매우 빠르게


자잘히 떨기보다, 세밀하게 비브라토를 주기보다 이들은 붓선을 크게 그리는 일이다. 함께 걷는 피치카토도 잔걸음을 묘사하기보다 한 걸음씩 정직하게 내딛는다. 잔재주를 부리기보다는 획의 중간을 넓혀 놓는다.


세밀하고 속도감 있게 점을 찍어 나가는 구간이 도래하면 어떻겠는가. 귀가 완전히 ‘웨하스 당한다.’ 네 겹이다. 착—착—착 점을 찍어 나가는 간격이 어찌나 유사한지, 정말 자로 잴 수도 있을 것 같다.


첼로가 기다란 웅웅거리는 선을 그려 넣을 때마다 귀가 아려울 지경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사람들은 지금 활로 웨하스를 만들고 있다. 현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진하고, 날카롭지 않으며, 장중한 음향이 여기 드리워져 있다.


IV. Presto – Adagio non lento — 매우 빠르게 — 느리게, 그러나 늘어지지 않게


이러니 내가 지하층까지 내려가는 계단에서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다. 소리를 얼마나 깊게 파내던지, 정말 깜짝 놀랐다. 원래 내가 아는 이 사람들 이렇게까지 인간미 없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날을 제대로 잡았다.


현악기로 ‘살생 없는 사냥’을 나가는 기분이랄까. 이렇게까지 프로페셔널하게 무표정할 수도 있구나. 이 시려운 해석 뭐야. 너무 색달랐다. 끝없는 질문의 대답이 죄다 파국으로 향하는 것 같다. 오늘 그들이 그려내는 결말은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새드 엔딩인가 보다.


조소도 없고, 맑게 웃는 사람도 없다. 바이올린이 길게 선을 긋는 순간은 거의 이명 같다. 끝에서 모양이 달라질 땐 간드러짐이 아니라 애처로움이 된다.


공기의 결도, 자잘한 기교도 없는 첫 선이 되돌아온다. 조금의 공기를 담아 약간 가벼워진 두 번째 선이 뒤따른다. 투명도와 세기를 얇게 한 것들이 일렬로 서 있으니, 가만히 지켜보게 된다.


오늘의 색감은 이런가 보다.

시리도록 파랗고, 차분히 이별했다.


멘델스존 현악 4중주 4번 e단조 Op.44

IMG_3577.JPEG ⓒ 유진


I. Allegro assai appassionato — 아주 빠르고, 열정적으로


어떤 어른일까. 불안정한 어른이라기엔, 오늘의 이든은 내달리는 길이 너무 명확해 흔들림이 하나도 없다. 올라갔다 내려올 때도, 옆에서 자잘히 파동쳐줄 때도 왜 이렇게 속도감이 있고, 왜 이렇게 거대한가?


내려가 있는 것은 더 아래로 파고, 올라가 있는 것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한다. 오늘 혹시 소리를 쏟아내려고 작정한 건가? 바이올린이 노래할 때 첼로가 뒤에서 왜 이렇게 넓고 안정적인 길을 그려주는 건데?


악기 튜닝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귀가 아렸다. 짧은 파동을 낼 때도, 치솟는 선을 그릴 때도 이들은 왜 이렇게 몰아세우는가. 네 개의 악기가 중앙의 마이크를 향해 직선주로로 소리를 쏟아낸다.


오늘은 ‘다정하다’보다 ‘그려놓는다’가 맞겠다. 매정하진 않지만, 착한 사람들이 화가 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냉동 콰르텟이다. 물길도 아니고, 샤베트 남극 길이다.


II. Scherzo: Allegro di molto — 스케르초, 매우 빠르게


갑자기 수직선으로 짧막하게 웃어줘도 소용없다니까요. 잠깐— 전처럼 생글거렸던 것도 같지만, 그건 아주 짧은 예고편일 뿐이다. 오늘은 그냥 ‘거대한 날’이다.


소리의 끝이 치닫지 않는 순간에도, 마치 화가 난 듯 치밀하게 모여들었다가 중심점에서 악기별로 확 소리를 뻗치고는 순식간에 되돌아간다. 혹시 오늘 컨셉이 ‘진노의 날’인가? 정말 푸르게 화났다.


11자가 100번 나올 게 1000번으로 갈라져 있고, 세기는 ‘강함’과 ‘매우 강함’ 사이를 쉼 없이 오간다. 이렇게 평화롭게 너풀거리는데, 눈은 하나도 웃지 않고 입꼬리만 활짝 올라가 있으니— 무섭잖아요.


III. Andante — 느리게, 노래하듯


아까 잠깐 웃어준 게 정말로 예고편이었나 보다. 나풀나풀 거리는 흐름이 마음을 안정시킨다. 악기 하나가 별빛 같은 선을 여러 번 그리면, 그 아래의 악기들이 구름결을 펼친다. 첼로는 맨 뒤에서 하늘색을 짙게 칠한다.


그러다 서서히 고조되는 순간이 찾아오면 금세 새카만 어둠이 드리운다. 시간의 흐름은 1.2배속 같다. 유성우가 스쳐 지나가듯 잠깐 펼쳐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즐기는, 시원한 검푸른 밤이다.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려보라. 별이 빛나는 게 아니라, 하얗게 번뜩이는 밤이다. 한겨울에 롱패딩, 슬리퍼 신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한 밤이다.


IV. Presto agitato — 매우 빠르고, 격정적으로


먹물이 쾅— 하고 끼얹어진다. 오늘 뭐 하나 잡아먹으려는 기세가 맞다니까. 누가 이든 콰르텟을 흑화시켰나. 이들은 예쁜 마음으로 무언가를 추적하고 있다. 어디로? 아래로, 더 아래로 내리꽂으면서.


한곳만 계속 노리듯 파고들다가, 갑자기 긴 리본선처럼 다정해지기도 한다. 어우, 추워! 악기 네 개가 모이면 화음을 어디까지 다채롭게 맞춰갈 수 있는지, 그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기분이다. 소리의 솜털까지 다 보여낸다.


어디까지 줄어들고 어디까지 강해지면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지, 다 보여준다. 제1바이올린이 쿨톤의 흰색만 남기고 날아가 버릴 때도 있다. 아이스 박스, 냉동고, 100일 동안 얼어버린 비비빅 같은 분위기 속에서 누가 집중을 못하겠나.


단언컨대, 오늘 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입 돌아가리라…


멘델스존 현악 4중주 6번 f단조 Op.80

1100723.JPEG ⓒ 유진

I. Allegro vivace assai — 아주 빠르고, 생생하게


새카맣다. 오늘은 그냥 ‘흑조’구나.


블랙스완이 저 첼로 안에 다 담겼다. 속도는 2배속이고, 겉선은 시릴 정도로 차갑지만, 안쪽 흐름은 거대한 웅덩이다. 아이가 위태롭게 고개를 한껏 젖힌 채 그네를 타듯, 당장이라도 넘어질 듯 불안정한 움직임이 계속된다.


어딘가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단단히 갇혀 있으니 원통형 공간에서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회전한다. 통제가 되나? 이건 슬픔도 아우성도 아니고, 그냥 폭주다. 고상하게 미쳐버렸다.


빠져나갈 생각도 못하고, 도망칠 여력도 없어 보인다. 고개를 완전히 하늘로 꺾어버린 채 구슬픈 춤을 추는 깡마른 몸이 있다. 핏기 하나 없다.


선을 다정하게 그릴수록 오히려 더 불편해진다. 차라리 아까처럼 바닥을 긁어버리지.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간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스스로를 광기 안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절대 꿈에서 깨지 않으려는 사람 같았다. 무섭도록 갉아놓고 찢어낸다. 무섭다.


II. Allegro assai — 매우 빠르게


1악장에서 찔러놓던 비수가 2악장에서는 회오리가 되었다. 첼로가 병정처럼 걸어갈 때도, 두 악기가 중간 음역에서 노래할 때도,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검은 와류 한가운데에서 어찌 들뜰 수 있나. 네 개의 현악기가 노래하는 크기가, 거대한 트럼펫을 성량 높여 불어대는 것처럼 들려오니 사위가 번쩍인다.


III. Adagio — 아주 느리게


길게 울어주는 시간이 찾아오고서야 그들의 선에 안식이 놓였다. 앞으로 울렁이며 나아가는 움직임도, 뒤로 서서히 물러나는 선도 이제는 연약함이 드리워져 있으니 잠시라도 안심할 수 있겠다.


기세를 잠시 줄여두고 음표 사방에 얇은 결을 들여놓는다. 애초에 평화로운 악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눈을 잠깐 감고 머물 수 있는 여분을 내어준다.


혼자선 다독일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의 소리가 앞으로, 더 앞으로 다가왔다가 알아서 물러나주니 차라리 좋았다. 짓눌린 마음 안에서 썩어내리느니, 이만큼 일렁여주는 것이 오히려 기회다. 다시 되돌아갈 선 하나를 붙잡을 기회가 여기 있다.


이 악장의 처음 연약함이 얄팍하게 돌아왔다. 음표마다 얇은 결을 들여놓으며 조금씩 조도를 낮춘다. 이제 조금은 돌아온 것이 있을까. 잦아드는 울음이 여기에 있을까.


마음에 작은 빛이라도 들이칠 수 있도록 길을 그려준다.

아— 있나 보다. 아까의 것들이 아주 낮게, 웅—웅— 대며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IV. Finale: Allegro molto — 피날레, 매우 빠르게


잠깐 평화를 맛봤다고 해서 당장 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니다. 발생한 것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만, 처음의 독기는 확실히 사그라들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지언정,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은 포기할 수 있는 법이다.


지금 연주는 그동안 지나온 그 어떤 악장보다 기세가 온정어리다. 그렇다고 1악장의 무서운 기색이 사라졌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순식간의 대각선처럼 귓청을 내리꽂을 테니 긴장을 놓을 수는 없다.


다만 3악장을 지나왔으니 이제는 마냥 잡아삼켜지지는 않는다. 눈이 질끈 감길지언정, 두려울 것은 없다. 물러날 곳도, 사라질 수도 없다면— 그냥 폭풍 안에서 다리를 붙이고 살아야지.


다리를 한 번도 떼지 않고 그대로 버텨내면,

휘몰아치던 것도 어느 순간 한 방에 사라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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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파니 헨젤 ― 현악 4중주 E♭장조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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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선으로 네 개의 화음을 그려내는 길일까? 서서히 세밀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려나. 사방을 좌우하려 하기보다, 거대하게 감싸 안아준다.


시작은 내려앉더라도 끝은 짧게라도 짙게 머무르는 법을 알고 있다. 제자리에서도 그려낼 수 있는 파동이 있으니 굳이 무섭게 노래할 필요도 없다. 보채지 않아도 괜찮다.


높은 곳까지 닿지 않아도 상관없다. 둥근 원을 감싸 안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멀리 나갈 필요도, 긴 선으로 치닫을 필요도 없다.


이만큼만 갔다가, 그 나아간 만큼만 천천히 되돌아오는 마음이면 된다. 머무른 자리에서 작은 빛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충분한 시간이었을 터. 더 내어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그냥 여기 있었음에 안식을 얻은 자는, 고요히 사라진다.



공연이 끝나고

IMG_3429.JPEG ⓒ 유진

파니 헨젤의 1악장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 얼얼한 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지금 멘델스존을 들은 건가, 아니면 거대한 차력쇼를 소리로 맞고 온 건가 싶었다. 입체음향의 직사각형 틀 안에서 1시간 넘게 행복한(?) 괴롭힘을 당하고 나온 기분이다.


곡마다 이렇게 스타일이 달라질 수 있다니. 비올라 연주자에 따라 콰르텟의 분위기가 이토록 달라지다니. 오늘의 이든은 흑화 버전인가? 몇 개의 물음표를 머리 위에 띄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대단히 잘했냐고?

오늘 연주— “대단히 손 시렸다. 대단히!” (무서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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