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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모스 Nov 18. 2019

대학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요?

그런 대학조차 못 가면 기분이 안조크든요

대학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수능 철에 들을 수 있는 이 문장. 그래서 나는 수능 철만 되면 아득한 충격을 받았던 그때가 떠오른다.


대학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런데 인생의 전부가 아닌 대학조차 잘 가지 못하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래?


고3 수험생 생활이 막 시작됐을 무렵이었다. 수험생들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수험생 교실의 분위기가 전에 없이 불타는 시기. 그때 누군가가 괴담 들려주듯 내게 저 문장을 읊어줬다. 케케묵은 문장을 비틀어 만든 교훈이 얼마나 신선했던지 나는 그 이후로 나태해질 때마다 저 문장을 되내며 공포를 학습했다. 대학 못 가면 내 인생은 시작부터 망하는 거라고. 그조차 못했는데 뭘 할 수 있겠냐고.


물론 지금이라면 그 문장을 말해준 사람의 코를 때리거나 (그게 친한 친구였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냥 안아줬을 것 같다. 차라리 인생은 갈수록 고되기 때문에 대학을 잘 가지 못한 실패 정도는 실패 축에도 못 낀다고 말해주는 게 낫겠다. 오우 이것도 너무 꼰대 같다. 그냥 말을 말아야겠다.


1년 내내 학습했던 사고방식이니 그걸 떨쳐내는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수능을 치르고 한동안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시작부터 실패했다는 생각이 내 세계를 지배해서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기분이 이렇게 진창인데 무슨 여행을 가고 무슨 수험생 할인을 받나. 부모님과 선생님이 가채점 결과와 성적이 맞는 여러 학교를 추천해주셨는데, 대개의 수험생이 그렇듯 내 욕심만큼 때깔 나는 학교가 아니라서 그냥 될 대로 돼라, 아무 데나 가서 아무렇게나 공부하지 뭐,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나태한 생각을 하는 나의 코를 때리는 다른 문장을 만나고서야 나는 그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게 이미 되는대로 학교도 가고 난장판의 새내기 생활을 보낸 이후의 깨달음이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암튼 그 문장은 이렇다.


공부도 능력이다


언뜻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의 급훈 같은 이 문장의 핵심은 딱 한 글자에 있다. 공부'도' 능력이라는 것. 다시 말하면 공부를 잘하는 능력은 달리기나 먹성, 재치 등등의 인간의 수많은 능력 중 하나의 능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 꼭 반에 한두 명씩 얘는 뭘 먹고 자랐길래 이런가, 싶을 정도로 계산이 빠른 친구가 있지 않나. 혹은 한 자리에 아무리 오래 앉아있어도 꿈쩍 않는 친구도 있고, 기억력이 좋거나 분석력이 좋은 친구도 있다. 그런 친구들은 수능형 인재다. 대한민국의 교육환경과 평가기준에 적절하게 태어나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 건 실은 우연이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것. 거기다 그걸 잘 발전시켜 줄 가정에서 태어나서, 운도 어느 정도 힘을 써줘서 대학을 잘 간다면 그건 대학과의 운명이다. 과장하자면 우사인 볼트로 태어나느냐, 100미터를 20초에 뛰는 나처럼 태어나느냐처럼 복불복의 문제다.


물론 모든 성공에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나라에서 '대학'이 필요 이상의 인정을 받는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쉽게 개인의 노력과 지적 소양의 척도가 된다. 한두 문제 차이로  대학이 바뀌는 그 우연과 운명의 장난을 모두가 경험해놓고 그 모든 게 개인의 노력의 결과인양, 서열을 매긴다.


입시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거의 모두가 대학을 가는 사회인만큼 각자의 환경과 능력이 천차만별일 텐데도 평가 방법은 획일화되어있다. 내 기준에서 그 평가 방법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은 우사인 볼트가 되는 것만큼 어렵고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유독 공부는 노력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나아가 대학은 그 노력의 결과라는 생각이 통용되는 것 같다.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더니 수능 만점자더라는 류의 신화가 공부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SKY나 중경외시 같은 서열은 또 얼마나 당연하게 존재하는지. 그게 매년 수험생들을  비슷한 공포로 몰아넣는다. 수능이라는 단계를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면 인생이 망할 거라 믿었던 나처럼.


나는 우사인 볼트가 달리기를 잘하는 것이 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듯이 공부 역시 노력만으로 잘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대학을 잘 가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운칠기삼,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 않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다. 어른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것은, 타고난 환경과 운의 작용을 제일 조금 받는 게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세상이 치는 장난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학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풍토가 이상하지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수능이 끝났다. 하지만 수험생들은 여전히 각 대학의 논술과 실기를 거치며 온 몸으로 경쟁을 체감하고, 성적을 재고 따지며 불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걸 안다. 나에겐 수험생 생활보다도 더 외롭고 불안한 자유였다.


어떤 성적과 결과를 받아 들든 전국의 수험생들 모두 그것이 결코 개인이 혼자 짊어져야 할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당신을 시험에 들게 했던 세상을 적당히 욕해가며, 그렇게 부담을 덜어가며 앞으로는 당신을 등급 매기는 모든 것들에서 자유롭길. 진짜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하나만 더 당부하자면, 수험생 할인 꼭 챙겨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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