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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모스 Feb 18. 2020

뻑하면 질투하는 사람의 미래

매우 밝음

다들 인생의 라이벌을 만날 때가 있지 않나. 나는 더러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글쓰기 실력이 나와 비슷했던 친구, 중학교 때 옷을 신경 쓰지 않은 듯하면서도 감각적이게 잘 입던 친구, 그런 친구들이 생각난다. 나는 그 친구들을 이기려고 노력했지만 대부분 졌다. 뭐 어때 그런 것도 다 경험이다. 아니다, 실은 지금도 좀 분하다.


나는 '사람은 저마다 고유하다, 그래서 각자의 매력이 다 있다'는 류의 말을 들을 때마다 기운이 빠지는 편이다. 아직 득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그렇다. 나는 그보다는 비교하기와 열등감 느끼기에 재능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이 경쟁과 줄 세우기 같은 걸 즐기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내 존재를 긍정하라는 건 너무 고상한 조언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대회가, 시상식이, 입시와 채용이 줄 세우기를 원리로 하고 심지어는 음악과 영화, 드라마, 문학까지도 줄 세우지 않나. 그게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만의 매력이 있다고 퉁치고 넘어가기에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정도로 참패할 때도 있다는 걸 안다.


나는 특히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을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열등감을 느낀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열등감을 느끼지 못하는 분야도 많다. 나는 수학을 잘한다거나(잘해 본 적 없음), 사회적 기준으로 예쁘다거나 (그 기준으로 예뻐 본 적 없음), 부자라거나 (....) 하는 일에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우리는 결국은 우리와 비슷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괴롭다.


물론 그럴 때, '나는 나만의 매력도 있지'하고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나는 열등감 느끼기에 재주가 좀 있는 편이라, 그런 근거 있는 열등감을 만나면 주로 그 기분을 파고드는 편을 택한다. 굳이 그를 관찰하면서 괴로워하는 나를 보면 그 모멸감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고 때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한데, 그래도 그 편을 택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실 선택한 적 없고,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는 말이 맞는 건지도. 역시나 남다른 재능이다.


‘너는 너만의 매력이 있다는’ 지당한 위로, 그렇지만 어딘가 공허한 이 위로보다 더 필요한 말이 있다면 이것이다. 나는 타인을 다방면으로 부러워하고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럽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 아는 게 많은 사람들이다. 성악에 대해 대충이라도 알기 때문에 파바로티가 얼마나 대단한 지 아는 사람들이고, 영화를 즐기기 때문에 봉준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 사람들이고, 그렇게 자기의 외연에 한계를 짓지 않는 사람이다. 질투도 상대를 알아볼만한 내공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알아본 것 만으로 충분히 대단하다.


다방면으로 질투가 나는 걸로도 모자라 나만의 매력에 만족하지 못하겠고 끊임없이 배가 아프고 주눅 들고 그렇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축복이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 나는 그게 문제가 될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자주 자극을 받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유연하게 살 수 있다. 나아지고 나아갈 수 있다. 지금 느끼는 열등감과 질투도, 내 세계를 넓히기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겁나 멋있다고 생각하면 정당화와 셀프 토닥토닥이 완벽하게 끝난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쓴 글도 완벽하게 그 과정을 따라서... 아무튼, 나름 좋은 방법이다.


꿋꿋해지자. 머지않아, 질투했던 그 탁월함 들을 내 방식대로 터득한 스스로를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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