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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guxxi Mar 19. 2023

봄과 걷기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다가 뻣뻣해진 몸을 달래기 위해 나왔다. 


'어라? 왜 아직 밝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아직 많이 안 지났구나 싶어 재빠르게 시간을 확인했는데 저녁 6시다. 


'드디어 봄이 고개를 들었구나!'


아직 남아있는 빛이 그동안 잘 지냈냐고 묻길래 환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분이 들뜬 나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또 매우 느려졌다. 조금씩 얼굴을 내밀며 힘내고 있는 꽃들이 뿜어내는 봄, 한 발자국 먼저 나와 이미 저마다의 색으로 미(美)를 뽐내고 있는 꽃들이 그들을 응원하는 봄. 좋아하는 빵과 쿠키를 가득 든 두 손은 무거워도 발걸음은 여전히 가벼웠다. 나를 열렬히 응원하는 봄 안에서, 춥고 어두운 시간에서 오래 멈추어 있었던 나를 넌지시 바라본다. 모든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경계하지 못해 글을 쓰지 못한 지 벌써 5개월이나 되었다. 쓰고 싶지 않았고, 겨우 적어내려간 검정 글들은 또 못생겨서 견디지 못한 나는 백스페이스만 눌렀다. 손에 힘을 잔뜩 주고 누르고 있어서 그 어느 것도 감히 침범할 수 없었다. 텅 비어버린 마음은 오랜 기간 두 눈앞에 순진하게 펼쳐진 깨끗한 종이를 두려워했다. 외로웠다. 


잘한다는 건 사실 끝이 없는 일이다. 잘해서, 그래서 완벽해지기 위해서 오랜 시간 스스로를 외롭게 한 나는 온갖 난관과 허탈함을 무릅쓰고 나에게 인사하는 봄에게 고맙고, 겨울에게는 그 이상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봄을 환하게 맞이하기 위해서 이제는 딱딱해진 근육을 풀어야만 한다. 강박으로 꽁꽁 싸매 여진 결심이 아닌, 벌거벗고 자유로워진 두 발의 근육들이 무심하게 뻗어나가는 한 걸음으로. 그 걸음들은 차곡차곡 쌓여 나를 만들 것이니 일단 나아가고 본다. 완벽한 준비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 봄에게 감사하며. 


마침내 한 걸음을 걸어내어 참 다행이다.


응봉산 개나리, @eyes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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