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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장례비를 준비하는 할머니

평균 장례비용은 11,100,000원

by 도담


나는 은행원이다.

대학교 졸업하고 입사했다. 그리고 마흔둘이 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중간에 한번 퇴사했다. 결혼과 함께 퇴사.

나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과 함께 그만뒀을 때 '잘됐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5개월쯤 됐을 때.. 다시 일하러 오라고 해서

나는 또 다른 의미로 '잘됐다'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해보니 돈이 필요했다. 돈이.

아기 분유도 사야 했고 기저귀도 사야 했다.








'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17년 동안 많은 고객들과 만났다.

은행에 오는 대부분의 고객은 고령층의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만기가 되어 방문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면 반가웠다.

'잘 지내셨죠?' 서로 안부를 묻는다.

손님들과 나는 같이 나이를 먹고 있다.

여름엔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도 꺼내서 드리고 겨울엔 따뜻한 믹스커피를 드린다.

마음 따뜻했던 일도 많았고 슬픈 일도.. 예금 상속을 하기 위해서 자녀들이 방문했을 때.. 같이 울기도 했다.





어제 오신 할머니 손님. 옆창구에 앉았다.

오랫동안 거래하고 자주 오는 편이지만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진 않으셨다.
무채색의 옷을 입으시고 머리는 염색하지 않아서 검은 머리와 흰머리가 섞여있다.
그리고 얼굴이 항상 어두웠다.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보통 조용하게 일만 보시고 가셨는데.. 특이점은 입금을 하거나 예금을 하고 나면 종종 찾았다.
(대부분 고령층 고객들은 예금을 하고 나면 만기까지 찾지 않는다..)
딸이 같이 와서 찾는 날도 있었다.
한 날은 공과금 용지를 많이 들고 왔는데.. 할머니는 재산세를 많이 내는 분이었다.


가족관계증명서와 신분증, 도장을 주시며.. 딸 명의로 예금을 해달라며 천삼백만 원을 주셨다.




'통장에 '장례비용'이라고 적어주세요.. 내 장례식 때 쓸 돈이야.'




평소에는 이야기도 잘 안 하는 분이었는데..

요구 조건은 통장에 '장례비용'이라고 적어달라는 것.

옆 창구의 직원이 목소리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 여기에 적어 달라는 말씀이세요?'..


할머니가 가고 나서 옆창구 언니는

'차마 적어드리기가.. 그래서 말이 안 나오더라'



'언니.. 우리가 어떻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부모님께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나도 그게 잘 안돼..

전화를 끊고 나면 조금 더 반갑게 받을걸 퉁명스러운 내 목소리에 후회해요..

저희 부모님도 묫자리를 사두셨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남은 자식들이 부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닐까요..

사실 나는.. 애랑 둘이 살잖아요.. 내가 죽고 나면 저 애가 혼자서 잘하겠나.. 어떤 장례가 저 애한테 편하게 할까?..라는 생각을 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들은 예금을 하시면서 종종 묻는다.

조심스럽게 이야길 꺼내신다.

'내가 이 세상 떠나고 나면..'

'내가 죽었을 때..'

'이 돈을.. 우리 애들이 돈이 여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찾을 수 있을까요?'

'돈을 찾는 게 힘들지 않을까요?'

'우리 애는 멀리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죽고 나면 가족 중의 이 사람이 와서 찾게 해 줘요.. 되나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돈이란?

언젠가는 있을.. 본인의 죽음에 대한 준비금이다..

그리고 그 돈을 가족들이 무사히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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