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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유진 May 07. 2021

작은 것에 흔들리는 결심

태국의 해충 이야기

내 MBTI는 INFP, 일명 '잔다르크형', 명실공히 모든 성격 유형 중 가장 이상주의자인 유형이라고 한다. 

회사원 시절, 비행기까지 타고 날아가 받은 귀한 트레이닝 중 인사부 주도로 난생처음 유료 성격 진단을 받았는데, 인사부 직원이 가장 이상적인 직원은 ESTJ이고, 살면서 우리가 받는 모든 교육은 ESTJ를 닮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구나... 응? 내 유형은 ESTJ의 정 반대잖아. 그 말인즉슨, 나는 최악의 직원 - 그리고 사회의 상냥하고 지속적인 지도에도 불과하고 개선되지 못한 존재라는 말이 아닌가. 

제길. 인사부 앞인데, 망했다. 설마 이런 걸 인사기록에 남겨두거나 참작하진 않겠지.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데.


결국 타고난 성격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남의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비현실적인 꿈을 안고 퇴사했다. 국적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삶을 시작한 지 어느새 일 년, 나와는 달리 이상적인 직원상과 사회 일원 상인 아버지와는 애초 일 년 내에 이런 삶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해 보이겠다 약조했었다. 약조한 일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다. 가끔 흉측한 머리를 드는 불안 - 현실을 자각하고 있는 이성인가? - 을 매일 잠재우며. 옛 말도 있지 않은가. 첫 술에 배부르랴. 그리고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데. 어쨌든 매일매일 남을 도우며 살고 있다. 속도는 느릴지언정, 방향은 틀리지 않아.


그렇지만 이 원대한 대의는, 의외로 작은 것에 마모된다. 예컨대, 벌레 같은 것 말이다.

태국 생활에는 당연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나쁜 점 중에 하나는 날이 따뜻한 만큼 해충이 많다는 것이다.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예전에는 초저녁에 왕성하게 생활하는 모기떼에 물리는 것이 최대 고충이었는데, 이제는 모기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게 되었다. 현지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전보다 덜 물리는 것도 있지만, 일상이 되었기도 하고 더 센 놈들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 불개미. (못댕)

너 붉은 고통의 화신이여!

작아서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주로 군집해서 있는 녀석들인데, 혹시라도 지나다가 밟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보기와는 다르게 육식이므로 실수로 녀석들이 모여있는 곳을 샌들을 신은 채로 밟기라도 하면... 수 초만에 셀 수 없는 연타 공격의 대상이 된다. 털어내기도 어려우니 발 빠르게 물로 씻어낼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침실에도 자주 숨어드는 녀석들에게 물리면 처음엔 극심한 가려움증이 들다가 곧 환부가 빨갛게 부어오르며 압통이 느껴지는데, 이 후로 잔잔한 간지럼증과 통증이 사나흘 정도 지속된다. 독한 녀석들...


둘, 또께이.


똥만 좀 안 쌌으면...

"또께! 또께!" 라는 우렁찬 소리로 울어대는 이 녀석은 극한의 위협을 느끼는 때가 아니면 사람을 해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소리가 워낙 우렁차고 집 지붕이나 처마 밑에 서식하는 탓에 소음공해의 원인이 된다. (처음 태국을 방문했을 때는 밤에 우는 새로 착각한 채 수 년을 보냈다.) 나야 워낙 아무데서나 잘 자는 편이니 녀석들의 울음소리는 견딜 만 하지만, 또께이 가족이 화장실 지붕에 서식하기로 한 뒤로 매일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녀석들의 대변을 처리하게 되었다. 이놈들의 대변은 생각보다 많고 크기가 커서, 그때그때 치우지 않으면 악취가 난다. 간혹 밑으로 내려와 휴식하고 있는 녀석과 대면하기도 하는데, 개코와는 다르게 몸집이 큰 녀석이므로 마주칠 때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셋, 맹봉 (독 애벌레).


심지어 저 털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린다.

이 글을 탄생하게 만든 녀석이다. 계절을 따라 창궐하는데, 작년에는 보육원 주변의 한 동네 전체에 녀석들이 창궐해서 어언 한 달을 동네 주민들이 북북 긁으며 잠을 설치게 한 전적이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난 녀석에게 어제 쏘인 나는 항히스타민제를 먹고도 오늘까지 꼬박 등 뒤를 긁고 있다. 옆구리께에 쏘이면 수 시간 내에 목까지 올라와 다른 쪽 팔까지 두드러기를 번지게 하는 무서운 녀석이다. 그뿐이랴, 긁은 손으로 다른 이를 잡으면 털이 옮겨가 그쪽으로 두드러기가 번지게 하는 무서운 능력이 있다. 일단 쏘이면 야몽이라는 화한 약으로 간지러움을 잡고, 물에 소금을 개어 발라 독을 뺀다. 그래도 두드러기가 나아지지 않으면 빠른 한 방을 위해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면 된다.


매일같이 이런 녀석들과 교전하며 몸에 생긴 상처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지 하는 매우 인간적인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 먹던 맛있는 빵이나 음료 같은 것도 생각나고. 작은 빗물이 돌을 뚫듯, 큰 결심 역시 작은 역경들의 합으로 마모된다. 의외로 큰 역경들은 이쪽에서도 작심하고 대치하기 때문에 마음의 중심을 흩뜨려 트리 지는 않는다. 무방비 상태에서 노출되는 작은 어려움들. 그것이 진짜 적이다.


그렇게 마모되어 가는 자신을 보면 강력한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도전했는데, 겨우 이런 일로 링크드인 구직란은 왜 보고 있는지. 아직 죽을 만큼 달리지도 않았으면서 왜 돌아온 길을 돌아보는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록 머릿속은 어릴 적 풀려고 할수록 엉켜 버려 홧김에 던져진 실타래다. 


그렇게 뒤죽박죽이 된 머리를 이고 출근하면, 금세 막둥이 녀석들의 놀잇감이 된다. 누나, 누나, 안아줘. 잠깐만 일할 테니 놓아달라고 하면 팔 채로 들어다가 꼭 끌어안으며 응석을 부린다. 상냥한 어른의 손길이 부족한 탓이다. 일전까지 귀찮아했던 것이 짐짓 미안해진다. 나의 반항이 끝나자 흡족해진 녀석이 샐쭉 웃는다. 그 모습에 실타래는 풀린다. 그래, 넌 내가 필요하구나. 외면하고 폭신한 것, 맛있는 것, 쾌적한 생활. 원위치로 돌아가면 나는 일순 기쁘겠지만 너에겐 이렇게 응석 부릴 사람이 하나 줄어들겠지. 애초에 몇 명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 이 작은 기쁨들을 다시 그리워 하게 될 것이다.


작은 것들로 마모된 틈은, 역시 작고 사소한 것들로 메꾸어진다. 그 틈은 작기에, 작은 것들로만 채워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다음 균열 때 두고 보려고 그 순간을 기록했다. 

찰칵


맹봉 따위 별 거 아니야. 꼭 행복하고 좋은 어른으로 자라나렴. 새 힘을 달라고 매일 기도한단다. 

그 작은 순간들, 작은 기도들이 모이고 모이면 꼭 견고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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