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기가 차는 대화
너무 중요한 말투 하지만 고치기 어려운 말투
나는 경상도 출신이다. 경상도의 말투는 많은 분들이 아시듯 꽤 투박하고 퉁명스럽다.
하지만 그 퉁명스러움 안에 경상도 특유의 '정'이 표현될때도 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이 한국사람들 보다 'Sorry', 'Thanks'의 좋은 문화가 있듯이, 걍상도 보다 타 지역 사람들이 더 친절한 말투를 가지고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말투로 지적을 당해 본 적은 없어서 네 말투가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내 말투가 상처라는 광주출신 남편과 치열하게 다투면서 내 말투에 대해 조금씩 자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결혼 초기에는 나는 정말 많이 양보하고 남편에게 맞춰 이야기해준다 생각했고 남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까지 이 말투로 친구들 회사분들과 모두 잘 지내왔고 나보다 더 거칠게 말하 횟수가 더 많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 말투를 돌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알고는 있지만 교정하고 싶은 맘이 없었던 게 더 솔직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유독 엄마와의 전화통화가 어렵다. 금쪽 상담소를 보아도 그렇고 성인 자녀 중에 자신의 부모와 긴 전화통화가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는 내 감정이 이상한 게 아니구나를 알았다.
엄마는 다소 부정적인 답변을 자주 하셨다.
예를 들면,
나 : 오늘애들이랑 밖에서 놀고 왔어.
엄마 : 밖에 추운데 뭐 하러 데리고 나갔어.
나 : 애들이 답답해하니까.
그냥 재밌었니, 밥은 뭐 먹었니 정도로 대화가 이어지면 좋겠는데 잘 놀다 온 사람에게 왜 나갔냐는 답변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벽을 만든다. 한마디로 기가차는 대화가 된다.
잘 입혀서 잘 놀고 왔니 정도쯤의 중간 질문이었어도 좋았을 텐데, 많은 대화 속에서 비슷한 상황을 계속 겪다 보니 시어머님보다 친정엄마와의 전화통화가 더 힘들다.
우리 시어머니는 사실 세상에 없는 정말 모범적인 시어머님이시다. 어떻게 저런 시어머님, 시아버님 밑에서 우리 남편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시부모님의 정석 같은 분들이시다.
그래서 결혼하고 나서 더 친정 엄마의 대화방식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른과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무력감, 회피하고 싶은 감정들 없이도 담백한 대화가 되는구나를 알게 해 주셨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외할머니와 엄마의 대화를 떠올려본다. 외할머니는 수용적인 대화를 하셨기 때문에 외할아버지와 엄마의 대화가 그랬을까 짐작해 본다.
우리 친정엄마는 사실 아빠와 두 딸 밖에 모르는 사랑이 넘치게 많으신 분이다. 두 딸이 그렇게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 않았지만 엄마 아빠에게 둘도 없는 딸이라는 사랑을 매번 느끼게 해 주셨다. 엄마의 사랑은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오히려 넘쳐서 부담스럽다 느낄 때는 있었지만. 그 부담스럽다 느낄 때는 대부분 위의 예와 같이 단번에 무력하게 만드는 답변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 결혼 전에는 엄마의 말에 설득이 되었던 것인지 반감이 들 때가 많이 없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그런 순간이 꽤 많이 캐치되었다. 그동안 내가 성숙해진 것인지, 시부모님으로부터 다른 경험을 하면서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 보게 된 것인지 시작은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는 엄마의 대화법을 조금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엄마로부터 말로 상처받을 때가 있지만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정도로 키워주심에 많이 감사하다. 그런데 이런 엄마의 말투를 고스란히 듣고 자라온 나 또한 그 범위 안에 있다.
남편이 가끔 너무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는 내 말투에 힘들어할 때, 아 내가 또 그렇게 답변했구나 자각을 한다. 이런 대화는 조심하다가도 화가 나거나 그 사람에게 내 불편한 감정을 던지고 싶을 때 툭하고 뛰어나온다. 내 단점 중 아주 큰 단점이다.
그런데 이런 단점을 고치고 싶은 이유가 남편이 아닌 우리 딸들이 내 말투를 닮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엄마에게 배웠던 것처럼 그렇게 일상에서 스며들까 봐.
내가 50살에는 많은 자각을 통해 좀 수련되기를. 우리 이쁜 딸들은 나중에 참 이쁘게 말한다는 성인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