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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기반성 Nov 04. 2023

이모님, 싱가포르 헬퍼제도

한국도 싱가포르 헬퍼제도처럼 워킹맘을 지원한다고?

싱가포르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헬퍼 에이전시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내가 구할 때 즈음 그분이 오랜 싱가포르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사실 2023년 싱가포르 물가와 렌트비는 감당이 버거울 정도로 치솟고 있어서 주변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시는 분이 많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뒤 한국에서 싱가포르 헬퍼 제도를 한국형으로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뉴스가 있었고, 그 한인 에이전시 운영하시던 분이 그것 관련해 일을 하게 되어 떠나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 회사에서 내가 싱가포르에 산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다.

어떤 점이 좋은지 한국과는 뭐가 다르지.

여기 분들은 과연 한국 문화 상 싱가포르 헬퍼제도가 잘 먹힐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80%는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싱가포르에서 헬퍼에게 크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기에 싱가포르의 제도 속에 존재하는 구멍을 몸소 체험했다. 싱가포르 정책 중에 헬퍼 제도에서 내가 느낀 점은 참 국가 편에서는 손해가 없는 선에서 고용주에게 많은 것을 떠 넘겼구나. 에이전시의 개념은 한국에서 처럼 모든 일을 처리해 주고 업에 대한 책임이 한국이 생각하는 선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한국은 모를 것이다. 여기서도 내가 직접 당하지 않는 이상(처음 구한 헬퍼, 적당히 배신을 하지 않은 헬퍼만 고용해 온 가정이라면 모를) 구멍들을 미리 알 수 없다.

오랜 싱가포르 생활을 하며 헬퍼를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외국인에게 제한되는 여러 제도들이 있지만, 헬퍼는 외국인이고 남편만 일하는 외벌이도 고용할 수 있으니 주재원으로 일하러 오거나 엄마가 직장으로 아이만 데리고 와서도 헬퍼 제도를 통해 기본적인 가사, 육아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는 건 맞다.

그리고 한국보다 금액으로만 비교하면 더 저렴한 것도 사실이다. 싱가포르에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주하는 헬퍼가 전반적인 가사를 도맡아주도록 고용주가 세팅한다면 헬퍼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곳이다. (헬퍼의 위생상태를 못 미더워 많이 관여하거나 오롯이 못 맡기는 분들이 있으나, 나와 같이 많은 걸 이미 내려놓은 상태에 일임하는 경우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입주이모님으로는 조선족 이모님과 등하원 한국 이모님을 썼었다. 한국에서 5년 정도 입주 이모님을 고용했기 때문에 한국 이모님과 싱가포르 헬퍼의 비교를 내 입장에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공간. 보통 한 공간에 누군가 같이 사는 게 불편해서 고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불편해하던, 아내가 불편해하던 집에 사람이 늘 같이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으나, 워킹맘은 내 불편보다 아이케어가 우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

한국은 싱가포르와 달리 헬퍼룸이 없었기에 그리고 나는 잠에 민감해서 첫째를 데리고 잠을 자면 다음날 일이 지장이 있었기에 첫째와 이모님이 함께 잠을 잤다. 확실히 한국에서 공간 분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불편함이 있고, 싱가포르는 보통 부엌문을 닫고 들어가면 부엌과 가까이 있는 헬퍼의 공간이 독립적으로 보장도 되고 고용주의 주 생활반경에서 분리되어 서로 편하다.


두 번째는 고용주라는 개념이 한국과 다르다. 나는 처음 헬퍼를 트랜스퍼로 구했다. 헬퍼를 구하는 종류는 뉴와 트랜스퍼로 구분할 수 있다. 뉴는 다른 나라에서 싱가포르로 처음 헬퍼일을 하기 위해 들어오는 신입을 에이전트를 통해 헬퍼와 고용주 모두 에이전트 비용을 부담하고 싱가포르 입국을 위한 서류들을 함께 만들어 나라에 제출하는 절차를 걸쳐 데려오는데, 트랜스퍼에 비해 헬퍼비는 저렴하나, 헬퍼를 데려오기 위한 비행기 표나 서류절차 등을 위한 비용이 한꺼번에 목돈이 든다. 200~500만 원이 그달에 나간다. 그리고 신입이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가르쳐야 한다.

살림을 잘 살아보지 못한 내가 살림을 가르치는 부담도 있고, 한국 문화와 음식을 모르는 헬퍼가 일을 할 때 매번 간장 2숟가락 과 같이 굉장히 세세한 부분까지 교육을 반복해야 하는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트렌스퍼의 좋은 점은 미리 교육이 되어있다. 한국가정에서 이미 있었던 헬퍼라면 내 기대이상의 음식을 하기도 하고 위생에 대해서도 한국 기준으로 어느 정도 세팅되어 있다.

처음 내 생각은 그래도 신입보다는 경력직이 신입 고용주에게는 더 낫지 않을까였다. 매달 렌트비도 부담인데 목독이 또 들어가고 구하고도 싱가포르로 들어와서 우리 집까지 오는 것도 1달 이상이 걸리는 뉴로 구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구한 필리핀 헬퍼가 우리 집에 온 지 10일 만에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도망갔다.

우리 집에 오기 전부터 그녀는 싱가포르를 남자친구와 떠날 계획이었다. 그걸 모르고 에이전시는 우리에게 그녀를 소개했고 우리는 그녀가 어리지만 착해 보였고 말랐고 야무져 보였다. 실제로 10일 동안 화장실 청소는 깨끗하게 했으나 그런 헬퍼가 일을 잘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떠나기 전 머물 집이 필요했고 혹시나 고용주에게 잘리면 고용주가 필리핀까지 비행기를 끊어줘야 하기 때문에 비행기값 벌어보자 우리 집에 온 것이었다.

싱가포르는 헬퍼를 고용하는 것이 아예 그 헬퍼를 고용하는 고용주가 우리나라의 회사와 직원의 개념으로 회사인 고용주가 그 헬퍼의 보험료, 본국 돌아가는 비행기 값, 그녀의 빛과 같은 돈 문제, 범죄와 같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 해결하고 떠맡아야 하는 개념이다.

필리핀 헬퍼가 도망가고 우리는 그런 헬퍼를 소개해준 에이전트에게 따져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한국이라면 당연하다. 인력을 소개해 준 업체인 에이전시는 인력에 대한 기본적인 상태를 점검하고 기준에 부합되어야 고객에게 소개를 하고 향후 케어 등을 해줘야 하며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면, 싱가포르 에이전시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자기들은 그냥 연결만 하면 끝이고, 그 헬퍼들이 어떤 상태였는지 알아도 모른 척, 그전 집에서  나왔는지 점검은 커녕 거짓 포장해서 에이전시에 30일 이상 머물지 않고 새 주인을 연결시켜 줘야 에이전시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들이민다.

그걸 몰랐다. 에이전시에 남아 있는 헬퍼는 그 전집에서 쫓겨났거나 맘에 들지 않아 더 이상 연장을 하지 못한 헬퍼들만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에이전시는 그녀들이 남아있는 동안 숙식을 제공하는 의무가 30일이 있고 그 이상이 되면 손해를 보게 되고 일부는 그 비용을 헬퍼에게 지운다. 헬퍼는 새집에 고용되기 전에 에이전시에 빚이 있다. 그 빚도 새 고용주가 다 지불을 해주고 이 헬퍼를 데려오는 개념이다.

우리도 그 필리핀 헬퍼가 가지고 있던 빚과 에이전시에 헬퍼가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대신 내주고, 데리고 왔다. 그러나 우리가 공제해 준 빚을 하루하루 일을 해주는 월급으로 다 청산하기도 전에 도망을 갔는데, 자기가 도망갈 것이 들킬까 봐 자기 짐을 다 우리 집에 버리고 젤 중요한 것만 가방 하나에 넣어 그날밤 야반도주를 했다. 꽤심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지나고 틱톡 친구추천이 떴는데 그녀의 기록 속 도망가는 그 날짜에도 '마담, 지금 지하철 타고 가고 있어요." "미안해요 늦을 것 같아요." 이따위 문자로 거짓말을 왓츠앱으로 보내고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렇게 그냥 당한다. 외출을 보장해야 해서 쉬는 일요일에 자기가 자기 발로 나간 것에 대한 책임은 그 헬퍼를 잃어버린 우리가 오히려 에이전시에 보상을 해야 하는 판이고, 그런 헬퍼를 소개해준 에이전시에게 우리는 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 우리가 그 헬퍼를 감시해야 하는 고용주라는 것이다. 그녀는 성인이고 그녀의 쉬는 시간에 외출을 했다. 개인이 무슨 수로 도망가기로 맘먹은 휴가날 나간 헬퍼를 케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에이전시의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너희가 잃어버린 거잖아." "너희가 그런 헬퍼 소개해줬잖아. 내가 우리 집에 온 2일째부터 말했지, 이 헬퍼 이상하다고. 너 관리 제대로 했어? 너희 역할이 뭐야?" 아무리 너희의 업의 도덕적 책임이라는 게 이런 거 아니냐 따져도 소용없다. 한국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소비자 보호원이라도 고발할 내용이다. 내 돈 주고 산 옷 한 벌도 2주 기간 안에 반품 안 해주면 난리가 나는 한국인데, 싱가포르의 헬퍼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헬퍼들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까? 더 황당한 사건도 많다. 대부 업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서 고용주에게 와서 너희 고용인의 빚을 갚을 때까지 우리는 너를 괴롭힐 거다 협박부터 우리 집 아이의 여권을 맡기고 돈을 빌리거나, 비싼 물건과 돈을 야금야금 도둑질하거나, 이미 필리핀에 남편이 있는 헬퍼인데 여기서 임신을 한다던가 별의 별일이 다 벌어진다.

한국 정서상 상식이라는 선에서는 예상할 수 없고, 이런 피해가 직접 고용주인 나에게 온다는 것이 제도가 잘 되어 있는 게 맞나 이런 구멍들을 오롯이 고용주가 떠안아야 한다는 게 맞는 것인지 따져 물을 곳도 없다.

필리핀 헬퍼가 도망가고 나서 경찰에 바로 신고했다. 그녀가 돌아와야 할 저녁 8시가 넘어 밤 12시가 다 되었기 때문에, 그 헬퍼가 밤늦게 어디서 사고라도 치면 그 사고 자체도 내 책임이라고 하니, 경찰 말고는 해결할 수 없다 생각했다. 결국 다음날 경찰은 그녀가 싱가포르를 떠난 이력을 알려줬고 그녀가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올 때 블랙리스트로 등록하는 것을 처리해 줬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오면서 발생한 비용들은 그냥 다 날렸다. 우리가 따져도 에이전시는 그다음 헬퍼를 위한 서류처리 15만 원 정도만 어찌 처리해 줬지, 그것도 그녀가 싱가포르를 아예 떠나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 아직 싱에 있는데 우리가 단지 잃어버린 거라면 우리는 그녀 보험비를 계속 내야 하며, 그녀가 돌아오기까지 오롯이 내가 살림을 해야 하며 아니라면 대체 가능한 비싼 시간제 헬퍼를 구하거나 그 모든 게 내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 모든 위험부담을 개인인 고용주가 갖도록 되어 있다. 싱가포르 정부 사이트에 너희의 구멍이 뭔지 고용주를 보호하는 장치는 있는지 긴 메일도 보냈다. 답변이 없다.

한국 에이전시라면 고용주인 내가 따져 물을 수도 있고 에이전시에서도 미안하다 사과를 받을 수 있으며 다시 교체하는 비용은 당연히 에이전시가 알아서 처리하고 나는 에이전시 비용을 부담했기에 충분히 다른 사람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나 말고도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고용주들이 당했으면 헬퍼 괴담이라는 게 있다. 정말 어마무시하다.

한국이였다면 그녀들의 범죄가 내가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것이 받아드려 지는가?  


세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

무시할 수 없는 가격. 점점 수요는 많아지고 공급이 제한적이라 그럴까? 한국은 이모님 구하는 비용이 점점하늘을 치솓는다. 엄마가 직장에 나가 벌어오는 수입은 시장물가만 반영한채로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이러면 엄마가 나가서 돈버는 것의 반을 이모님 돈으로 지불하게되는데, 나는 계속해서 회사일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회사에 메인 몸으로 임원이 되지 않고 몇년을 더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 시간을 위해 지금 내 월급을 기꺼이 이모님께 지불하며 아이를 남의 손에, 엄마 손길 닿지 않게 키우는 게 맞는지 여전히 답이 없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수많은 위험과 문화적 차이와 퀄리티 보장이 되지 않는 헬퍼를 받아드리는 것이 우려스럽긴하다.

우리는 새로운 뉴 헬퍼를 목돈을 들이고 시간을 기다려 미얀마에서 데리고 왔다. 더이상 문제있는 헬퍼들을 관리해주지 않는 에이전시를 믿지 못하겠고 에이전시에 고용되지 않고 남아있는 헬퍼들을 인터뷰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데, 우린 그 큰 부담을 오롯이 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다행히 미얀마 뉴 헬퍼는 정말 착하다. 그래서 이전 안 좋은 일은 이미 잊었고 인생공부한 돈이다 생각했는데 다시 쓰면서도 정말 화가 난다. 우리는 고작 1달치 그녀 월급과 에이전시비용이 들었지만 더 심한 고통을 받은 가족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이 모든 것이 보호되지 못하는 싱가포르 헬퍼제도라는 것을 한국 정부도 파악하고 제대로 된 한국 맞춤형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싱가포르 정부처럼 선을 딱 긋고 집회나 불만접수 같은 것은 씨도 안 먹히는 곳이랑 다르게 한국은 많은 소비자 목소리, 헬퍼들의 인권 집회, 고용주/헬퍼들의 불만접수를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사실, 마음으로는 제발 한국은 싱가포르보다 잘했으면 좋겠다. 싱가포르 여성들은 헬퍼제도로 직장으로 부담 없이 돌아간다고 한다. 비록 괜찮은 헬퍼를 걸러내는 게 힘들지만 괜찮은 헬퍼들을 알아차릴 장치들을 통해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가 한국에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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