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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기반성 Dec 21. 2023

폭주 기관차 같은 한국

한국 방문기

나는 한국을 너무 떠나고 싶어 해외이주를 한 케이스는 아니다. 

남편의 회사가 글로벌 회사라 각 나라마다 사이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40대가 되어 다른 나라에서 살아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더 컸다. 

때마침 18년 차가 되어가던 늘 똑같은 일상의 맞벌이 부부는 도전을 좋아하는 성향이었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정망에 대한 미련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앞만 보는 성향이 빠른 결정을 했고 실행을 할 수 있었다.

해외생활 4년 차, 아이들 겨울 방학이 되어 부모님들을 뵈러 올해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도착한 첫날, 배민에서 비싼 디저트를 3만 원 치나 시키고 배보다 배꼽이 큰 식사를 마쳤다. 배민라이프는 주문도 거의 빛의 속도로 들어가고 뚝딱 만들어져 순식간에 배달이 온다. 주문금액을 못 채워 무료배송 중간에 배달금액을 조금 더 채워 무료배송으로 변경하려던 찰나 이미 취소를 할 수 없는 '만들고 있습니다'상태로 변경되었다. 

참 뭐든 빠른 한국이다. 

그 속도는 잠시 방문한 방문자에게도 느껴질 정도이다. 오랜만에 네이버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뉴스 한 면이 다 '억' 돈에 대한 내용이었다. '억'이 우수운 나라. 하지만 내 수중엔 없는 '억' 단위의 돈들. 그렇게 한국은 수백억씩 가진 사람들이 온라인에 그득했다. 그랬다. 내가 떠나기 전 한국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한국방문 3일째만에 다시 상기되었다. 


한국은 좁은 면적에, 특히 서울에 인구 밀집도가 굉장히 높다. 서비스도 진화하고 더 경쟁적으로 변하면서 편의에 치중된 시스템에 사람들도 덩달아 신기해하며 그 경험에 젖어들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줄이 길어질 경우나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늦어질 때 한국에서 경험을 가진 한국사람이라 바로 비교가 된다. 한국이었으면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불만을 표하고, 점원들도 불만을 듣지 않으려 아주 신속히 움직였을 것이다. 

말레이시아 이미그레이션에서 3시간 수속절차를 거칠 때에도 한국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을 수십 번 되뇌었다. 빠른 처리로 인해 편의성은 정말 다른 나라에서 경험할 수 없는 한국만의 문화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느낀 빠른 시스템은 뭔가 불안을 느낄 만큼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뺏아간 마녀 같이, 편의를 얻고 여유를 빼앗겨버린 인어공주가 된 느낌이었다. 

한국의 장점이 몇몇 소시민들이 더 살기 어려운 더 팍팍한 요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이면 다 되고 돈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4계절의 풍경을 맘껏 즐길 수 있고 경쟁보다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장치들이 많은 정이 살아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해외살이를 많이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꼽는 '여유로운 삶',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는' 한국사람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그 속에 있을 땐, 나는 답답함은 있었지만 빠른 한국의 시스템에 순응하며 답답한 건 뒤로하고 다른 것들에 의미를 두며 살아갔었다. 무엇보다 먹고살려면 그 답답한 건 참아야 했다. 

며칠 전 싱가포르에 돌아와 유튜브를 검색하며 또 한 번 슬펐다. 

아이들이 받는 공부 스트레스의 문제는 엄마의 잘못된 모성애라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무슨 죄인가. 한국에 사는 죄로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제도건 안에서 안정성을 보장하는 평범한 그룹에라도 들어서 자기 밥벌이라도 해야 하는 한국이기 때문이지, 사회적인 문제를 엄마들의 잘못된 모성이라 포장하다니,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그 영상을 보고 별생각 없이 '그렇게 지독한 엄마들이 있지', '맞아 문제야'정도로 넘기겠지. 그런 인식이 또 한국을 각팍하게 만들겠지. 폭주 기관차에 타지 못하면 영영 목적지 근처에도 못 갈 것 같은 불안감. 나는 지금 힘들게 살지만 우리 아이는 조금 더 힘내주기를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맛있는 밥해주는 일, 공부말고는 다른 건 내가하고 시간이라도 벌어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뒷바라지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은 모든 엄마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한국의 그런 빠름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도 했다. 그러나 우리 뒷 세대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며 삶을 지속해 나갈 일자리도 찾기 어렵고, 자신의 월급만으로 장만할 수 없는 부동산의 벽들과 가난하면 돌아오지 않는 교육의 기회마저 빼앗기면서 이건 아닌데, 급속하게 흘러가는 이 흐름을 과연 멈출 수 있을까? 방향을 틀 수 있을까? 많이 우려되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 청년들은 한 해 한 해 더 큰 박탈과 상실감으로 결혼포기, 취업포기, 출산포기, 포기, 포기. 너무 슬픈 단어 '포기'.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는 한국 실정이 참으로 안타깝다. 

비단 청년들뿐만이겠나, 돈 없이 나이 먹고 있는 우리 세대도 점점 빈곤의 범주로 내몰리는 우리 윗 세대 평범한 분들도 참 살아가기 힘든 나라사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큰 곳, 내가 가진 것을 뺏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갑팍해지는 곳, 나는 갖지 못했는데 이미 너무 많이 가진 부자들이 살기 좋은 그곳.

서울의 봄을 보면서도 참 착잡했다. 영화를 시청하는 우리 부모님 세대는 얼마나 가슴 앓으며 보셨을까, 막 태어나던 우리 때 세대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사수하게 된 것인지, 무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고작 그 역사가 얼마 되지 않은 때라는 것을 우리 모두 잊지 않기 위한 영화리뷰들을 많이 본다. 지금 국가 요직에 있거나 세상을 바꿀만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나 같은 시민들 의식도 고양되어서 급변하지는 않겠지만 정의로움이 살아있는 한국이 되기를. 

우리가 노인이 되어 국가의 보살핌이 더 많이 필요할 때, 우리 아이들이 목소리 내며 살아갈 앞으로의 40년 후에는 그래도 살기 좋은 한국이 될 수 있기를 너무나 바란다. 

잊지 말자. 우리의 아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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