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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Jul 19. 2022

[서평, 리뷰] 클래식 감상 수업

잠들어 있는 뮤즈를 찾아서

잠들어 있는 뮤즈를 찾아서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는 음악을 인류 공통의 언어라 했다.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미션’이다. 가브리엘 신부는 자신을 위협하는 원주민들에게 잔잔한 선율의 오보에를 연주한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평안하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음악을 통해 얼마든지 정서적인 교감이 가능함을 이해시킨다.

 

  눈을 감으니 천국이 펼쳐지는듯 평온하고 아름답게 이어지는 오보에 선율은 리듬, 화성과 함께 음악의 3 요소 중 하나다. 록밴드를 예로 들겠다. 리듬은 비트를 담당하는 드럼, 보칼이 선율이고 기타와 키보드가 화성이다. 소리에 일정하게 질서를 부여한 리듬은 선율과 화성에 영향을 준다. 음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소리가 연속되어 결합한 선율은 리듬을 내포한다. 또한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소리가 동시에 결합된 화성에 종속되는 한편 화성을 한정시킨다. 리듬, 선율, 화성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짜임새와 형식을 통해 구성되 여기에 빠르기, 셈여림, 음색이 덧붙여져 작곡가의 의도가 명확하게 표현된다. 문학작품을 쓰기 위해서 단어와 문법, 서사가 필요하듯 음악작품은 음악의 3요소가 적절하게 구성하고 표현되어야 한다. 나무 막대로 만들어진 물통은 가장 짧은 막대에 의해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이 정해진다. 이와 유사하게 클래식 명작이라면 수준 높은 여러 요소들 중에서도 유달리 두드러진 요소가 있을지언정 특정 요소가 유독 형편없이 뒤떨어져서는 안된다.


  나와 같은 대개의 아마추어들은 클래식을 감상할 때 상기한 여러 요소를 구분하여 듣지 않는다. 마치 시디 래핑 할때 이미지 파일로 구워내는 것처럼 작품을 뭉뚱그려 감상한다. 그저 흘러나오는 연주가 자신의 취향이거나 아니면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삶의 동기를 자극해주니 애청하게 된다. 한 마디로 듣기 편하고 가끔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다 여겨 자주 듣는 것이다.


  ‘클래식 감상 수업’은 그동안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음악의 3대 요소와 논리적 흐름, 표현 방법, 그리고 작곡가와 연주자의 테크닉이란 관점에서 클래식을 감상하게끔 길잡이 해준다. 다른 클래식 서적들과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보통의 클래식 서적들은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 작품이 지닌 의의, 저자의 감상 포인트, 꼭 들어야 할 연주자와 명반 등을 언급한다. 그러나 ‘클래식 감상 수업’은 작곡을 전공한 저자들이 작곡가의 시선에서 곡의 주요 흐름을 아주 간결하게 설명한다. 게다가 선곡된 100 곡을 단순하게 나열해 풀어 내지 않는다. 선정된 작품들을 음악의 3대 요소(리듬, 선율, 화음)와 음악적 논리(구성)와 표현(음색, 테크닉)이란 6 가지 요인으로 분류한다. 분류된 곡들은 저자들이 선정한 해당 요인에 입각해 감상 포인트를 밝힌다. QR 코드로 선곡된 작품들을 시청하면서 저자들이 언급한 곡의 흐름과 전개에 몸을 맡길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를 두루 활용하는 것인데도 여태 접해 보지 못한 서술 방식이어서 독창적이면서 신선하다.


  작곡을 전공해서인지 저자들은 곡이 연주되는 흐름을 핵심적으로 짚고 전개되는 양상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해준다. 여기서 이 책이 지니는 두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 저자들이 쉽게 해설 했다해도 막상 작품을 감상하면 해설 포인트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은근히 어렵다. 이미 익숙한 곡들은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그러나 생소한 곡에서는 의외로 만만치가 않았다. 아마도 나 같은 입문자들이라면 수차례 반복해 들어야 귀가 트일 것이다. 둘째, 작품에 어느 정도 익숙하거나 저자가 제시한 포인트를 숙지한 독자들은 그간 무의식적으로 넘겨 들었던 작품에 숨겨진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입문자는 다소 까다로우나 곡의 특성을 이해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중급자 이상은 혹시 간과했던 여러 요인들을 새롭게 경험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구성 순서상 선율이 먼저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내가 클래식에 익숙해진 계기는 물 흐르듯 아름다운 멜로디에 있었다. 그래서 리듬이 첫 운을 떼는 게 왠지 피팅이 덜 된 옷을 입은 느낌이다. 더군다나 평소 현대 클래식은 거의 접하지 않았던 터라 서장을 장식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나름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리듬에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책에서 소개된 현대 클래식 작품들을 들으며 그동안 가졌던 현대 클래식은 난해하고 불편하다다는 편견을 접게 되었다.


  오늘날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첼로로 연주된다. 당시의 아르페지오네가 실전된 탓이다. 저자가 얘기한 대로 슈베르트가 건강을 잃고 매독에 걸렸을 때 지어서일까? 멜로디가 몹시 처연하다. 소나타의 구성진 주제 가락을 피아노보다 첼로가 훨씬 잘 표현한다. 그런데 연주자에 따라 테크닉이 상이하다. 누구나 인정할 터인데 이 작품을 전형적으로 연주한 대표적인 연주자는 로스트로포비치이다. 그런데 바흐의 무반주 첼로 전곡을 최초로 시연한 카잘스의 연주도 꽤나 재미있다. 1 악장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주제 선율을 스타카토 주법으로 툭툭 끊어 연주하는 부분에서 아이들의 장난처럼 앙증맞아 실소가 절로 나온다. 슬프나 슬프지 않은 애이불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더욱 재미난 건 첼로가 아닌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로 연주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듣는 것이다. 유리 바슈메트가 연주하는 비올라의 어둡고 따뜻한 음색이 또 다른 애잔함을 불러 일으킨다. 게리카의 콘트라 베이스로 들을 때는 묵직하면서도 심연을 울리는 저음에 마음이 한층 시리다. 책에서는 맑고 유려한 선율을 위주로 소개했지만 한 걸음 나아가자면 연주자와 악기에 따라 테크닉과 음색을 맛볼 수 있고 소나타의 구성을 체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저자들이 제시한 6 가지의 주제별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내가 간과했거나 몰랐던 음이나 악기소리가 자연스레 들린다.  숨겨진 보물이 발견되고 잠들었던 뮤즈가 깨어나는 순간이다.


  영화 ‘해리포터’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는 음악이야말로 호그와트에서 이루어진 모든 마법을 뛰어 넘는 가장 위대한 마법이라 하였다. 이 책은 음악을 이루는 8 가지 요소인 리듬, 선율, 화성, 구성(형식과 성부 조직), 음색, 테크닉(빠르기와 셈여림) 별로 짧게는 2~3분 길게는 10분 이상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다룬다. 너무나 많이 들은 최애곡들도 있고 지금까지 듣지 않았던 곡들도 꽤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 안에 잠자는 공주처럼 나 몰래 잠들어 있던 8 개의 뮤즈를 일깨울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선율에 가려진 리듬과 화성, 흥얼거리다 놓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곡의 흐름과 구성, 작곡가가 주제를 드러내고자 사용했던 다채로운 표현 방법 등 부분적으로 이해했을 클래식 소품들을 이 책을 하나씩 되짚어서 내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작품 속에 잠든 음악의 뮤즈들을 일깨우고 싶다.


Yes 24 블로그 서평단 자격으로 리뷰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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