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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 Oct 03. 2022

히프코 할아버지

오늘은 여기까지 걸을게요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던데, 어제 프랑스 아주머니가 주신 선물을 받아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평안해진 것 같았다. 침대로 돌아가 조금 휴식을 취한 후 갈리시아 스프를 먹고 푹 잠들었다. 오늘은 레온으로 가는 날.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대도시의 아침은 내가 나고 자란 그 여느 도시들처럼 자동차도 많고 사람들도 많았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해가 떠올랐다. 오늘은 등산화가 아닌 쪼리를 신고 걷는다. 발이 한결 더 가볍게 느껴진다.



구글 지도를 켠 채 걸으니 버스정류장이 금방 보였다. 이른 아침이라 창구는 모두 닫혀 있었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큰 덩치에 하얀 머리칼. 그리고 체크무늬 남방과 초록 배낭. 히프코 할아버지였다. 







내가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나헤라 마을이었다. 아직도 나는 나헤라 생각만 하면 다리 근육통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삼십키로가 넘는 아주 힘든 길이기도 했고 몸이 적응하기 전 단계라 그런지 육체적 고통으로 정신까지 고통받았던 하루였다. 그때 녹초가 된 나를 보며 할아버지는 호탕하게 껄껄 웃으셨다. 사실 할아버지 뿐만아니라 같은 숙소에 있던 이탈리아 아저씨도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너는 절대적으로 이 길을 즐겨야 하고 또 아주 잘 먹어야 한다. 이 길은 곧 인생이다.' 라고 말해주었는데 조금 어설픈 영어였지만 아마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휴식을 취한 후 겨우 식당으로 걸어가서 와인 한 잔과 메뉴 델 디아로 그날의 힘듬을 잊어버렸다. 히프코 할아버지도 알코올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듯 했다. 밥을 먹다보니 내가 언제 힘들고 아팠냐는 듯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리 힘든 고통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혀졌다. 대개 육체적인 것들은 그러했다. 다만 마음과 정신의 치유가 속도가 느릴 뿐이었다. 



할아버지도 나를 보고 놀랐는지 아주 큰 목소리로 'hello!' 라고 외쳤다. 어디가요? 나는 물었고 할아버지는 레온에 간다고 하셨다. 그리고 레온에서 폰페라다까지 또 버스로 이동해서 거기서부터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나도 레온으로 간다고, 나는 레온에서부터 걸을 것이라 말했다. 여태 할아버지랑 짧은 대화는 나눴어도 일정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할아버지도 버스를 탈 계획이었구나. 그리고 한 날 한 시에 같은 버스를 타게 됐다. 나는 버스 티켓을 사기위해 승차권 구입 기계 앞에 섰다. 날짜와 시간, 목적지를 누르고, 여권 번호를 누르고, 휴대폰 번호를 누르고..... 그런데 카드 승인이 안되는거다. 여러번 시도 끝에 결국 현금으로 티켓을 샀다. 버스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넘게 남아있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터미널 안에 있는 베이커리 집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말이 베이커리지 빵 몇 개와 커피, 과자, 담배 등을 파는 곳이었다. 나는 크로아상과 라떼를, 할아버지는 초코빵과 라떼를 주문했다. 제가 살게요, 나는 할아버지 대신에 50유로짜리를 건넸다. 거스름으로 받은 동전과 지폐를 잘 넣어두고 자리를 잡았다. 텔레비전에는 알 수 없는 스페인어가 흐르고 작은 테이블에 할아버지와 내가 앉아 있었다. 이 모습은 남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동양인 여자와 서양인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모습. 나는 할아버지에게 남아프리카 공화국 어느 지역에 사는지 물어봤다. 아프리카는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였고 이십대 동안 가슴에만 품어왔던 신비의 대륙이었다. 할아버지는 지도를 보여주며 이곳이 집이고 다음달 두 딸과 가게 될 여행지까지 보여주었다. 킬리만자로 산에 가봤어요? 탄자니아 국립공원도요? 나는 눈이 동그래져 이런 저런 질문을 하였다. 할아버지는 킬리만자로 산도 가보았고 국립공원도 가보았다고 했다. 킬리만자로 산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고 말하면서. 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사는 제주 사진도 보여주고, 지도도 보여주었다. 작아 보이지만 엄청 큰 섬이고 그 중간에 아주 높은 산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배낭을 짐칸에 싣고 버스에 올랐다. 순례길 출발 이래로 늘 걸어왔던 터라 버스 이동이 너무 어색했다. 심지어 창밖에 순례자들이나 표지판이 보일 때마다 반갑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원래 걸어야 하는게 맞는데,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어야 하는게 맞는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버스가 마을을 떠나 큰 도로에 진입하니 표지판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메세타 고원을 아주 빠르게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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