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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Feb 24. 2024

인도 여행

3. 호텔에 도착했다.



그는 내게 인도의 첫인상을 강하게 남겨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여정의 첫 목적지가 타밀나두 주가 되었다.

인도의 최남단 타밀나두(Tamil Nadu), 타물(tamoul)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산스크리트어보다 더 오래된 타밀어를 사용하며, 인도북쪽 사람들보다 피부색이 더 까맣다. 역사상 인도에서도 타 종교와의 혼합이 적었던 관계로 힌두문화가 생활 속 깊숙이 젖어 있는 오리지널 힌두교의 성지다.

그가 인도를 두루 다녀본 결과 가장 좋아하던 곳이며, 나 역시 아주 일부의 인도땅이지만 4개 주를 다닌 뒤 인상이 가장 깊게 새겨진 곳이다.


그 가운데 우리가 도착한 이곳, 타밀어로 마두라이(Madurai) 시는 타밀나두 주에서 첸나이(마드라스) 다음으로 두 번째 큰 도시이며,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기도, 세계에서도 사람이 지속적으로 거주하는 가장 오래된 땅 중 하나다. 약 2,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마두라이 시는 고대 판디아(Pândya) 왕조의 수도로써, 10세기까지 번성하다가 라이벌인 촐라(Chola) 왕조에 의해 정복당했다. 충적토의 비옥한 농업지역으로 쌀농사가 풍부하다. 또한 타밀 여성들의 머리에 꽂아 장식하는 재스민 꽃은 라벨이 붙을 정도로 유명하단다.

마두라이 시에서 버스를 타고 탄자부르 시를 가는 동안 적당히 물에 잠겨 드넓게 펼쳐진 수전들을 보면서 덕분에 고대로부터 풍족한 삶으로 이어져 문화가 꽃피웠고 번창했던 도시를 그려보면서 동양의 아테네를 연상케 했다.

연중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3-7월 사이에는 기온이 40도를 웃돌아 매우 덥고, 11-2월은 20도-30도 안팎을 유지하여 대체로 시원한 계절에 속한다. 그러나 10월-12월에는 몬순 영향을 받아 비가 잦은 탓으로 습도가 굉장히 높은 반면 몬순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1-2월에는 많은 여행객들을 끌어들이는 성수기에 든다. 따라서 이때는 항공료를 포함해 호텔 가격이 올라가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는 성수기를 비껴 난 덕분인지 아주 착한 가격으로 아침은 물론 저녁식사까지 포함된 고급호텔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곰팡내 나는 습한 기온으로 모든 옷가지가 눅눅함은 물론 사람의 기운까지 좀먹는 것 같았다.


머리에 장식한 재스민 꽃
수전들이 펼쳐진 시골풍경


마두라이 시 작은 공항을 빠져나오자 모두 흰 옷을 차려 입은 까만 피부의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먼저 띄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와 릭샤 운전사들로 보였다. 이처럼 손님보다 운전기사가 더 많이 보이는 광경은 인도 어디를 가나 곳곳에서 자주 보는 그림이다.

이 낯선 풍경에 살짝 긴장감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곧장 택시를 타고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솔직히 처음 얼마간은 경계심을 놓지도 않았다. 인도 특유의 세습적 신분 계급인 카스트제도와 여성을 경시하는 문화가 여성 여행객들에게 거칠고 잔인한 행동이 있었다는 한국의 뉴스를 들었던 것도 생각났고, 불평등한 사회라는 점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 그러한 일은 전혀 없었다. 보지도, 목격하지도 않았다. 워낙 많은 인구가 밀집해 사는 나라인 만큼 다양한 사건사고야 끊이지 않겠지만, 오히려 내가 선입견을 가진 것에 대한 미안함이 들 정도로 순박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여행 중간즈음에 다 다았을 때는 미약한 생각을 했던 나 스스로가 부끄럽게도 느껴졌다.

그렇지만 앞서 남편이 마지막 방문했었던 2000년대까지만 해도 카스트 계급을 상징하는, 어깨에서 대각선으로 줄을 걸친 남성들이 매우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악독스런 모습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외적으로나마 그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다만 인도의 카스트제도 탓인지, 동양의 일반적인 문화에서 온 것인지는 몰라도,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주문했음에도 요리 접시가 늘 남편 앞에 먼저 놓인다는 것을 느꼈다. 프랑스문화는 언제나 여성에게 먼저 서비스를 하는 게 예의다. 어쩜 그 사람과 상황에 따라, 우연히, 무심코 생긴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와 피부색은 달라도 심적 또는 문화적으로 역시 동양의 나라라는 점에 진한 공감을 느꼈다.


택시가 한적한 시골길을 접어들자 고약한 악취와 함께 돌연이 나타난 쓰레기 더미다. 길 저만치 산처럼 쌓여있고, 길가에도 여기저기 너부러져 더미를 이루었다. '설마 이곳에 호텔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내심 걱정이 앞서는데, 눈치 빠른 남편은 꼭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말한다. "그래 맞아, 지도에서 봤어, 샛길로 지나간다고 했었어"

그리고 택시는 외진 길에서 빠져나가 시내로 접어들었다.


호텔 숙소로 오르는 언덕길 / 호텔에서 내려다본 마두라이 시내 전경
호텔 숙소
호텔 정원


얼마간 큰 도로를 달리던 택시가 다시 오른쪽으로 꺾더니 좌우 숲으로 우거진 한적한 길을 들어선다. 경비원이 서 있는 입구를 통과하여 언덕길을 계속 올라가자 호텔 숙소가 나왔다. 별안간 다른 세상 같다.

소음도 쓰레기도 없다. 웅장하고 멋스럽게 자연이 조각한 나무들, 은은한 재스민 향기가 내 여정의 피로를 풀어준다. 거대한 지붕을 만든 나무들과 떨어진 꽃잎들이 바닥에다 꽃무늬 융단을 깔아놓아 마치 지상의 아름다운 낙원 같았다.

마두라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저 멀리 도심 속에 그 유명한 미낙시(Minâkshî) 사원도 보인다.

천상과 인간세상을 갈라놓은 듯한, 흡사 인도의 빈부격차, 또는 카스트제도를 보는 것도 같다. 우리가 이 길을 나설 때마다 가장 자주 내뱉은 단어가 산스크리트어의 <삼사라>였다.  

호텔에 당도하자 곧이어 가방을 받아주는 직원과 더불어 여성 직원이 우리의 이마에 아니 엄밀히 말해서  두 눈썹사이에 빨간 가루로 <빈디>라고 부르는 점을 찍어 준다. 힌두교적, 인도식의 환영이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제공한 따뜻한 짜이(인도차)를 마시며 짐과 함께 긴 여정으로 쌓인 피로를 풀었다. 휴식 겸 낮잠으로 전날 설친 잠을 보충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 호텔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3박 4일 묵는 동안 아침저녁식사가 제공된다. 사실 모든 호텔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우리가 묵은 호텔 마다도 달랐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경우, 인도에서만큼은 식사가 포함된 호텔에서 묵는 것이 편리했다. 왜냐면 뭄바이 같은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서는 호텔식당이 아니면 오롯이 굶어야 할 판국이었다. 위생적인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일반 식당에서는 음식이름도 낯설어 시키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금시초문에 아무거나 주문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너무나 매워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비록 다는 몰라도 인도의 남쪽지방 음식이 그 어느 지방보다도 더 매운 것 같았다.

인도음식에는 고약한 마법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얀 것이 순하고 부드럽게 보이지만 막상 삼키고 나면 위장을 지독하게 찌른다. 까만 후추마저도 톡톡 찌르고 쏜다. 하물며 벌건 색은 말해서 무엇하랴. 한국음식은 입에서 불을 지피지만, 인도음식은 배속에서 불이 붙는다. 이처럼 음식에도 속임수가 따를 줄 몰랐다. 흡사 인도 상인들처럼.

차라리 한국음식처럼 빨간 고춧가루라도 묻어있었다면 젓가락이 피해 가거나 조심이라도 하겠지만 외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고급호텔 레스토랑답게 차려진 음식은 서양식과 함께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인도음식들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다양하고 가짓수도 많았다. 물론 맛도 고급지게 좋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칭 미식가의 기호를 살려 골고루 맛보기도 했었고 신나게도 먹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위장이 서서히 화를 내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포크가 가는 방향은 점차 좁혀졌고, 자연히 한정된 몇몇 음식만을 먹으면서 여행을 마쳐야 했다.

고급 호텔 뷔페도 이럴진대 일반식당은 오죽하겠는가?

그중에서도 우리가 제일 좋아하며 매일 아침식사로 먹었던 것이 쌀로 만든 하얀 찐빵 같은, 아니면 백설기 같이 쌀을 갈아서 찐 음식과 또 갈아 놓은 쌀에 여러 가지를 넣고 버무려 익힌, 밥도 아니고 떡도 아닌 음식이었다. 부드럽고 맛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풍부한 쌀농사 덕분인지 대체로 쌀로 만든 음식이 많았고, 차를 마시는 문화 때문인지 원두는커녕 커피맛은 최악이었다. 커피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소도시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고, 뭄바이에서 하나, 유명 관광도시 옛 포르투갈 마을에서 딱 한번 보았다. 그마저도 맛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인도에 왔으니 짜이(인도차)를 마셔야지…!


마두라이 시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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