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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Mar 01. 2024

인도 여행

4. 스리 미낙시 사원



음식이야기를 조금만 더 이어가자면 마두라이 시내 방문 첫날, 우리는 중심가 스리 미낙시 사원 근처에 있는 채식주의 식당으로 갔다. 인도음식에 기대가 잔뜩 부푼 나를 위해 남편이 신중을 기해 고른 곳이다. 식당은 실타래처럼 엉킨 전신줄과 먼지로 뒤덮인 허름한 건물에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이층에 있었다. 맛집으로 알려져 인도 중상층들이 찾아오는 음식점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안으로 들어서자 시끌벅적하니 손님들이 많았다. 거의 식사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분위기는 더욱 난잡했다.

순간 식당에 있던 모든 시선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달려오더니 화살처럼 내려 꽂힌다. 마치 외국인을 처음 보기라도 하듯이, 아니면 다중문화 부부라서? 아무튼 우리는 그들의 눈길을 모른 척 외면하며 한쪽 벽에 조용히 붙여놓은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편은 딸리 스페셜, 난 타물 딸리를 시켰다. 값도 좋았다.

사실 인도음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힌두 채식주의자들이 먹는 딸리다. 고기대신 눈알콩을 비롯한 각종 영양가 높은 콩 종류를 으깨고 갈아서 만든 소스 같은 수프와 야채, 요구르트 등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룬 음식.

나는 이 옹기종기 잘 구성된 작고 탐스런 종지그릇 안에 먹음직스럽고도 소담스레 담긴 화려한 색깔의 음식에 매료되어 마침내 그 속에 푹 빠져버렸다. 그래서 감질나게 열심히 먹었다. 좀 더 솔직이 말하면 식당 안의 왁자지껄한 소음 때문에 혼이 나가 맵고 아니고는 미처 따져볼 겨를도 없이 코를 박고 먹었다. 실은 배도 고팠었다.

그리고는 미낙시 사원으로 갔었는데, 그때부터 미세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조용히 그러나 음습하게 시위하던 위장이 자끈거리며 멈출 줄을 모르는 것이다. 결국엔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나와야만 했었다. 아무리 훌륭한 유물이라도 온전한 정신에서 감상은커녕 집중력이 떨어져 깊이 있게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뭄바이에서 또 한 번 유명한 채식음식집을 찾았다. 그런데 마두라이 시에서 먹었던 것과는 맛과 색이 완전히 달랐다. 다행히 많이 맵지도 않았다. 외국 관광객의 입맛을 고려한 결과인지, 지역적 기호 탓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내 추측으로 지역적 차이가 크다고 생각됐다. 그러니 타밀나두 주의 소도시 길거리나 시골 또는 서민음식점은 어떠하겠는가? 어쩌면 입에서부터 불꽃이 튀지 않았을까?

뭄바이 시내 이 채식전문집은 중심가에서 맛집의 표상답게 가짓수도 많았지만 가격도 거의 두 배 가까이 비쌌다. 참고로 딸리는 어느 식당을 막론하고 한, 두 종류가 무한 리필된다. 먹는 중에도 계속해서 용기에 채워주거나 더 원하는지 귀찮을 정도로 물어본다. 사실 나처럼 먹는 양이 많지 않을 경우엔 별 도움이 안 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한 끼 식사로 두 끼가 해결될 정도 충분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마두라이 시에서 먹은 딸리 / 뭄바이 시에서 먹은 딸리


그런데 시골 소도시 바다미에서는 외국 여행객이라고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니 사실상 선택조차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매 끼니 같은 메뉴만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 호텔식당직원은 주문도 전에 우리 메뉴를 줄줄 외워 나열할 정도였다. 우리 역시 처음 한두 번은 미리 물어보며 시키기도 했지만 입맛에 차이만을 확인할 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양한 인도음식을 풍성하게 실컷 먹어 보겠다던 내 희망은 북풍처럼 사라지고 매끼 똑같은 것만 먹어야 한다는 게 고역이었다. 조금 과장하면 끼니때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별 다른 방도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끼만 식당에서 먹기로 하고 점심은 과일과 짜이로 배를 채웠다. 이렇게 시작한 하루 두 끼 식사는 여행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몸무게가 줄었고, 무엇보다 제일 안도감을 느낀 것은 매운 음식에서 해방되었다는 점이다.


밖에서 본 탑(고푸람)
밖에서 본 사원 출입구 내부
사원 주변 풍경


마두라이 시내 중심가에는 인도의 대표적인 힌두사원 중 하나인 스리 미낙시 사원 (Sri Meenakshi Temple)이 있다. 이 사원은 나약 왕조시대 비스와나타 나약( Viswanatha Nayak, 1559-1600)에 이어 티루말라이 나약(Thirumalai Nayak, 1623–1655)의 왕 통치 기간에 추가적으로 확장 건설된 피라미드식으로 쌓아 올린 드라비다 스타일이다.

대부분의 힌두사원은 시바가 주된 것에 반해 이곳은 보기 드물게도 힌두여신 파르바티(Pârvataî)의 화신 미낙시(Mînâkshî)와 그녀 남편 순다레쉬와라(Sundareshwara)에게 헌정된 사원이다.  

사원에는 동서남북에 세워진 4개의 탑이 마두라이 시내를 지휘하듯 우뚝 솟아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높이가 45~50m 되는 고푸람(gopulam, 탑)들이 총 11개 있다.

남쪽 가장 높은 고푸람은 1559년에 지어져 그 높이가 60미터에 달하여 수세기 동안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이 되었고, 가장 오래된 것은 동쪽 고푸람으로 1216년에서 1238년 사이에 마라바르만 순다라 판디아(Maravarman Sundara Pandya)가 지은 것이다.

그중에서 높이가 더 낮은 두 개의 비나마(vimana) 탑은 꼭대기에 황금색으로 덮여 두 신의 성소를 보호하고 있으며 서로가 통합되어 있다. 어두운 색의 돌로 된 여신상이 있는 미낙시 성소를 비롯해 탑마다는 수많은 성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낙시는 <물고기의 눈>을 의미한다.

이 피라미드형 구조의 탑은 밝은 색깔로 칠해진 신, 악마, 동물 등 무려 33,000개의 치장 벽토 조각상들이 덮여 층층을 이루며 쌓여있다. 동서남북 4개의 거대한 탑을 기점으로 둘레가 254x237미터 외곽 울타리로 이루어진 탑은 사원으로 들어가는 긴 통로의 출입구다. 이는 드라비다 건축양식의 특징이다.

탑의 칠은 약 15년마다 반복된단다. 이 사원은 현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최고 30개 후보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다.

하루에도 약 15,000명의 방문객이 사원을 찾아오고, 축제일에는 25,000명에 이른다. 그리고 매년 4월부터 5월까지 10일간 열리는 티루칼리아남 축제 때는 무려 100만 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온다고도 한다. 이 미낙시 티루칼리아남(Mînâkshî Thirukalyanam, 미낙시의 신성한 결혼) 축제는 신성한 부부의 결혼으로 남부 인도의 모계 결혼의 전형적인 사례로 간주되며, 특히 결혼이나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인도에서도 가장 중요한 활동을 하는,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성지 중 하나다.  


사원 안으로 들어갈 때는 모두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들어간다. 그만큼 신성시 여기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입장에 앞서 옆에 있는 물품관리소에다 휴대폰과 신발을 맡겨두고 출구 검열대를 거친다. 물론 양말도 벗어야 했다. 사진촬영을 위한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소지할 경우 추가요금이 붙는다.

나는 썩 내키지 않아 모두 맡겨버렸다. 그런데 지금 여기 올릴 사진이 없다는 사실에 약간은 아쉽다.

입구에는 순례자들이 성소에 받치는 과일과 재스민을 포함한 빨간, 노란색의 꽃 파는 노점들도 보였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 공간은 굉장히 넓다. 거대한 기둥들이 수없이 펼쳐져 여러 공간으로 분류시켜 그 각각의 공간마다 신들이 모셔져 있다.

개별적인 의미는 모르겠으나, 어두운 내부공간에 온갖 장식을 한 시바와 파르바티, 코끼리와 원숭이, 황소, 남성의 성기 등은 분명 신성시 여기는 중요한 신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 거대한 까만 돌 석상들은 하얗고 빨간 빈디와 천과 꽃목걸이를 둘러 치장한, 그 앞에 꽃과 음식들을 받친 모습에서 어떤 신비롭고도 성스러움을 풍기는 장엄함에 자연히 숙연해졌다. 한마디로 웅장하다.

이 어마어마한 조각상들을 보면서 감히 그 예술적 극치에 감탄사와 함께 눈과 입이 벌어져 다물줄 몰랐으며, 과연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졌다고 하기에 도저히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큰 연못이 나온다. 포르타마라이 쿨람(황금 연꽃 연못)이다. 가로 50미터, 세로 37미터 크기의 직사각형 연못은 갤러리로 둘러싸여 있다. 그 안의 물은 신성한 것으로 간주된다.

전설에 따르면 시바는 황새에게 이 연못에 물고기나 강의 다른 동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실제 그것들을 찾아볼 수 없었단다. 또 타밀어 전설에는 책의 가치를 판단하는 연못으로,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연못에 넣으면 잘못 쓰인 책은 가라앉고 좋은 작품은 떠오른단다. 참 간단하고 편리한 평가 기준?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는 연못가의 갤러리를 걸었다. 사원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엄청난 수의 석상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나온다. 입장료는 별도다. 우리는 사람의 발길이 적은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올 때까지 몇몇 외국인 출입금지 구역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수많은 인도 순례자들과 의식을 치르는 승려들 모습이 보인다. 승려의 비대한 몸집을 보면서 내 속의 반감이 슬쩍 비친다.

아무튼 이곳에는 매우 찬란히 숭배되는 힌두교 신들과 함께 다채롭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있다. 이처럼 스리 미낙시 사원은 매일같이 열렬한 신자들의 침입을 받는 도시 속의 도시다.



마두라이 시내 중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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