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현서 Apr 16.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18)

= 레티로 공원의 신록 그리고  휴일의 그란비아 거리 풍경 소묘 -

 일요일인데 특별한 계획이 없다. 아내와 함께 마드리드 일상으로 레티로 공원에서  운동 겸 산책을 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마드리드에서 2년 넘게 거주하기도 했는데 무엇을 더 관광하겠다고 쏘다닐 일도 사실상 없다. 


 아침부터 햇살이 강해서 다소 더운 느낌이 있는 날씨이다. 다만 습기가 없어 그늘이 있는 쪽으로 걸으면 상쾌한 기분도 든다. 


 그란 비아 거리와 카스테야나 대로가 교차하는 곳이 통제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니폼을 입고 모여들고 있다. 유니폼에는 ‘Madrid en marcha contra el Cancer’ 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암 퇴치 마드리드 걷기’란 뜻이다. 그러니까 걷기대회 때문에 길이 통제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마라톤 대회 때문에 통제되더니만 이번에는 걷기 대회이다. 



 레티로 공원에 도착하기 전에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알칼라 문은 볼 때마다 그 모습이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 따라 그 밝음이 눈부시다. 요물이다. 사진으로 남겨놓지 않을 수가 없다.



 4월도 중순이라 레티로 공원의 신록이 더욱 짙어졌다. 오늘은 숲길을 걷기로 했다. 숲길 쪽이 사람이 적고 조용하다. 아침 햇살의 역광 속에서 보는 숲길은 햇살이 만들어낸 맑은 푸름으로 가득하다. 그 푸름에 취해 오늘은 핸드폰이 아닌 DSLR 카메라를 휘둘러 댔다.



 레티로 공원의 공공 화장실은 지하에 설치되어 있다. 공원 내 개인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카페들이 있는데 이들의 고객인 경우는 카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런데 지하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모르면 화장실 찾을 때 애를 먹는다. 화장실은 입구가 남녀로 구분되어 있고 계단을 따라 지하로 들어간다. 화장실은 매우 청결하다. 참고로 적어둔다.



 공원의 그늘진 벤치에 앉아 멍 때리는 시간을 충분하게 보낸 뒤 점심을 먹기 위해 공원을 나섰다. 마드리드 시청 건널목을 건너오자 그란 비아 쪽으로 시위대가 깃발을 들고 마이크로 구호를 외치며 북을 치고 있다. 조금 서서 구경을 하는 사이 시위 군중이 많이 늘었다. 프랑카드를 보니 ‘Por La III Republica’라고 쓰여 있다. ‘제3공화국을 위하여’의 뜻인데 구호도 ‘Espana Manana(내일의 스페인)’, ‘Viva la Republica(공화국 만세)’ 이다. 정치집회인 것은 맞는데 제3공화국에 대한 이해가 없어 잘 모르겠다.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경찰차가 대로 중앙에서 감시하는 것인지 시위행렬을 인도하자는 것인지 모르지만 대기하고 있다.



 점심을 먹기위해 며칠 전에 봐두었던 카야오(Callao) 역 부근의 사천성중국음식점에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가 먹고자하는 음식이 없다. 익숙한 음식만 간단하게 주문해 먹었다. 그런데 서빙하는 중국 청년들의 태도가 위협적인 느낌이 있어 무척 거슬린다. 몸에 문신을 드러내고 체격도 큰 청년들이 친절하지 않게 주문을 받는데 왠지 거북하고 불편하다. 음식 나오는 시간도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 때까지 조용하게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내는 음식 맛이 그런대로 좋다면서 잘 먹었다. 다만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입맛도 별로였고. 음식 값을 서둘러 지불하고 나와 버렸다. ‘이런 식당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것도 마드리드에서.


 일요일 대낮의 그란 비아 거리는 어제보다는 아니지만 사람들로 넘쳐난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관광객일까 아니면 현지에서 사는 사람들일까? 하여튼 사람들로 붐빈다. 하긴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우리 부부도 그란 비아 거리에서 해매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란 비아 거리에 있는 대형 서점인 ‘Casa del Libro(책의 집)’에 들어갔다. 전에 부터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내가 자기는 벤치에 앉아 있을 테니 마음껏 구경하고 나오라고 한다. 아량도 넓다. 서적의 진열 모습이 우리와 꽤 다르다. 그래서  호기심도 나고 재미가 있다. 구매하고 싶은 서적도 있었지만 여행자이기 때문에 용기가 나지 않아 구경만 했다. 



 그런데 서점이 있는 그 곳에서 시작해 그란 비아 길에 노상 중고서점 판매대가 보인다. 중고서적을 일요일에 가지고 나와 판매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재미있게 구경했다. 아가다 크리스티 추리소설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이것도 역시 여행자라 참았다.



 다시 아내와 길거리 벤치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와 함께 며느리가 카톡으로 보내준 손자의 커가는 동영상을 보면서 즐거워하다가 오후 5시 경 숙소로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스페인 3개월 살이(1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