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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Apr 19.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22)

- 프린시페 피오역(Estacion de Principe Pio) -

 아침 식사로 스파게티를 먹은 것이 탈을 일으킨다. 그야말로 꼭꼭 씹어 천천히 먹었는데 어데서 또 말썽이 났을까? 조금 있으니 뒷머리가 무거우면서 당기는 느낌과 함께 머리가 띵하며 아프다. 소화기에 답답함이 없는데 이런 증상이 나타나 숙소 공기가 탁해서 그러나 싶어 창문을 열고 환기도 시켜보았는데 효과가 없다. 타이레놀 두 알과 소화제 한 알을 복용했으나 뚜렷한 개선 조짐이 없다. 가벼운 어지럼증까지 느껴져서 몹시 불쾌하고 불편하다. 어제 오후 살라망카에서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내일 아침에는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고 말해 준비한 식사이므로 자업자득이다.  


 12시가 넘어서 어지럼증이 개선되어서 조금 움직여 보는 것이 소화에 도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단 숙소를 나선다. 스페인 광장(Plaza Espana)에서 10호선을 타고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프린시페 피오역(Estacion de Principio Pio)으로 간다. 이 역은 어제 살라망카에서 돌아올 때 마드리드 종점으로 내린 역이다. 출발은 차마르틴역에서 했는데 도착은 프린시페 피오역으로 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내려서 보니 생각보다 큰 역이어서 놀랐다.


 나가서 외부 건물을 보니 오래된 역사 건물 꼭대기 쪽에 북부역(Estacion de Norte)라고 쓰여 있다. 지금은 프린시페 피오역으로 알려지고 사용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북부역으로 불렸나 보다. 그러니까 이제 정리해 보면 마드리드 남쪽에는 차마르틴역, 북쪽에는 프린시페 피오역 그리고 그 중간지점에 아토차역, 이렇게 구성되는가 보다. 우리나라의 용산역, 서울역, 청량리역인가?



 프린시페 피오 기차역이 지하철역(Metro Principe Pio)과 바로 붙어 있어 이동이 편하다. 차마르틴 기차역도 지하통로를 통해 지하철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프린시페 피오역이 훨씬 편하게 되어 있다. 프린시페 피오 쇼핑센터(Principe Pio Shopping Center)와 연동되어 있고 차마르틴역과 비교해 볼 때 더 정돈되어 있고 청결하다. 그래서 오늘 한 번 들러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역의 외부 규모가 한눈에 가늠되지 않는다. 지상 건물이 넓게 자리 잡고 있고 내부는 지상과 지하로 나뉘어 기차역, 전철역, 쇼핑센터가 함께 연계되었기 때문이다. 어제 살라망카에서 돌아올 때 기차역에서 지하철역으로 안내표지판을 보며 왔기 때문에 오늘은 쇼핑센터만 둘러보기로 했다. 이 쇼핑센터가 ‘Principe Pio Shopping Center’ 란 것은 오늘 알았다. 어제는 ‘기차역 상가가 매우 크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외부와 내부에 상가 명칭이 크게 쓰여 있다.


 상가는 3개 층으로 각 층이 길다.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국내외 주요 브랜드 제품 가게가 거의 들어온 것 같다. 다만 엘 코르테 잉글레스(El Corte Ingles)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명품 매장은 없다.  



 3층은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 있다. 미국의 맥도널드, 버거킹, KFC도 매장을 넓게 차지하고 있다. 아내가 갑자기 점심으로 KFC를 먹자고 한다. 나는 전혀 먹을 상황이 아니어서 아내만 주문해 주고 음료수 심부름만 해주었다. 음료수는 무한 셀프서비스다. 펩시콜라를 충분하게 마셨더니 조금 있다가 식도가 움직이며 뭔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막힌 것이 내려가는 것일까? 하여튼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무엇을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저녁에는 과거 직장의 마드리드 근무 직원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는데 걱정이 된다. 일단 숙소로 돌아와 휴식했다. 이런 상황도 여행의 일부이다. 한국에서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닌가? 다만 움직이는 곳이 내가 살아온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더 관리하고 조심해야 될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그란 비아 대로에 바로 이어지는 30 미터 정도 되는 골목길에 이발소 겸 미장원이 두 곳 있다. 유리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중국 젊은이들이 이발을 하고 있는데 손놀림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그렇지 안 해도 지금 머리가 길어 이발을 해야 하는데 잘 됐다 싶어 들어가서 이발을 했다. 여리고 나이가 어리게 보이는 청년이 ‘어떻게 할까요?’하고 물어보는데 스페인에서 나고 자란 것 같다. 스페인어 발음이 어색하지가 않다. ‘같은 스타일로 , 조금 짧게 해 줘(el mismo estilo, mas corto)’라고 대답했더니 아무 말하지 않고 가위질 소리가 경쾌하게 들릴 정도로 빠른 손놀림으로 이발을 한다. 잘한다. 나는 이발을 동네 이발소에서 하는데 이발사가 나와 거의 동갑이다. 이발의 속도가 느리다. 그리고 동네에서 오래 살다 보니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낸 지가 오래되어서 손놀림 보다 입놀림이 더 빠르다. 세상 일 모르는 것 없고 특히 정치 시사에 밝아 듣다 보면 이발 끝난다. 그런데 젊은이가 이발을 하니 그 속도감과 경쾌함 그리고 활력이 느껴진다. 문득 깨달아진다. 아 ~ 그래서 미래의 세상은 항상 늙은이들이 볼 때 무엇인가 부족해 위태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젊은이들의 활력으로 이끌려 가는구나.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이미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잊어버리고 살았던 진실이다.  



 그란 비아 거리에 있는 엘 가우초(El Gaucho)란 아르헨티나 식당에서 과거 직장 마드리드 근무자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세 직원 중 두 직원은 전에는 알지 못했고 책임자는 24년 전 내가 마드리드 책임자로 근무 나올 때 함께 나왔던 직원이다. 그런데 이 번에는 책임자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 직장을 그만 둔지도 만 19년이 넘는다. 젊은 후배들의 나이를 볼 때 사심 없이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할 때이다. 세월이 지나 회고해 보면 인생에서 ‘일이 많아 힘들다. 힘들다’ 하고 불평할 때가 ‘가장 활기차고 행복한 때’이었다. 나이가 들면 이제 그런 기회조차 없다. 세상의 이치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즐거운 이야기를 하다 보니 4시간이 흘렀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라떼는...’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꼰대는 역시 할 수 없어’ 하고 스스로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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