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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Apr 21.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23)

- 여행 중의 아내 -

 오늘은 늦게 일어나 11시가 다되어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어슬렁거리며 그란 비아 대로로 나갔다. 열려있는 카페-레스토랑이 거의 모두 스페인 식 아침을 제공하기 때문에 별다른 선택이 없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은 좀 더 정성을 다해 먹을 곳을 결정했다. 오후 1시에 지인과 점심약속이 있고 아내는 가지 않겠다고 했으니 아침 겸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불만이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잘 먹었다.


 오후 1시 지인과 그란 비아 역 출구 옆에 있는 맥도널드 점 앞에서 만난 후 내가 가본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3시가 좀 넘어서 숙소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골이 잔뜩 나있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들어오면서 전화연락도 안 하고 조금 기다렸다가 저녁 먹으러 나가자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불평을 하며 화를 낸다.


 아내는 배가 고프면 화를 낸다. 45년 동안 같이 살아왔으니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먹을 것을 잘 챙겨주는데 오늘 이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내가 억울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겨우 달랜 뒤 늦은 점심을 먹게 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지만 금요일 오후의 그란 비아 거리는 인파가 넘쳐 걷기도 힘들고 식당마다 사람이 넘쳐 자리도 없다. 할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와서 내가 점식을 먹었던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에 가서 아내가 좋아하는 메뉴(등심구이와 오징어 튀김)를 주문해서 가져왔다. 아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식탁에 놓아두라고 한다. 이제 먹고 마는 문제는 아내에게 달렸다.


 생각해 보면 억울하고 기막히지만 이제 칠순이 된 아내를 이겨먹으면 무엇할 것인가? 이런 일 없었던 척 모른 척 지나가는 수밖에...


아내가 찍은 셀카 사진(참고로 나는 내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 잘 생긴 얼굴도 아니고 표정도 항상 굳어 있어서)
나 모르게 아내가 식당에서 찍은 사진

 특히 내일은 마드리드 교외에 있는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을 가는데 오늘 일이 없었던 것처럼 가야 한다. 더구나 남은 여행기간도 결코 짧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종종 반복될 내 삶의 한 사진이다. 그렇게 나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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